이젠 미디어시대 ‘영상설교’에 도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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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미디어시대 ‘영상설교’에 도전하라
  • 승인 2001.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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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의 분위기로 인한 예배에서의 감동은 구별해야
고정관념·신학적 판단이 설교와 미디어 연결 가로막기도

랄프하디(Ralph Hardee)는 개 교회 멀티미디어화를 기능적인 면에서 ▲ 설치단계(embarkation-컴퓨터 응용 소프트웨어화와 하드웨어 구비, 시행착오와 불안수반) ▲ 능률단계(efficiency-초보단계, 시간절약, 행정의 능률, 데이터 축적, 데이터 참고 정도) ▲ 효과단계(effectiveness-중급단계, 생산성 향상, 능률의 강화, 데이터의 정보화, 정보의 비교와 분석) ▲ 강화단계(enhancement-전문단계, 성장목적, 창조적 작업, 실험적 양식, 정보의 해석)의 4단계로 나누고 있는데, 한국 교회의 경우는 설치단계 내지는 능률단계 등 초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영상설교의 본질과 문제점
멀티미디어의 다양한 매체를 설교에 접목시키는 것은 시대적 요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상설교는 현장감과 입체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서라운드 스테레오와 동화상, 그리고 3차원의 문자를 설교 진행에 동원하는 설교이다.

현재 한국 교회의 영상설교는 그 인식이나 시행에 있어 거의 초보적인 단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교는 반드시 구연이어야 한다는 목회자들의 고정관념과 설교에 대한 신학적 판단이 설교와 미디어의 연결을 가로막는 장애로 등장하는가 하면, 회중들의 인식부족과 재정적인 문제, 그리고 동영 상 자료의 확보 등 여러 이유들이 장애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교회에서의 영상설교는 동영상과 드라마, 찬양, 워십댄싱 등으로 이루어진 축제식 프로그램 예배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데 예배 자체의 파격이 영상설교의 생경함을 압도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단순히 스크린을 이용해 설교자의 핵심적 내용, 그리고 찬송의 가사를 문자화 시켜 영상으로 처리한다든지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영상설교라 할 수 없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영상설교는 설교와 동화상, 입체적인 문자, 그리고 서라운드 입체음향이 설교 메시지를 실어 나를 때 비로소 붙여질 수 있다.

영상설교는 그 메시지의 성격에 따라 매우 다양한 구성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설교 메시지와 관련된 동화상을 기존의 영화나 드라마로부터 발췌해 설교 도입부, 설교 중간, 설교 끝부분에 내보내 주는 방식을 취할 수 있으며, 설교자의 설교가 진행되는 동안 설교 내용에 상응하는 정지화면 혹은 동영상을 지속적으로 방영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또 청각적인 면에서는 오디오 기기를 이용해 설교 내용과 관련된 소리나 음악을 내보냄으로써 설교의 내용 전달에 대한 효과를 높이려는 시도도 행해지고 있다. 또한 파워 포인트나 그래픽 문자를 이용해 설교의 핵심 내용이나 관련 성구를 동화상 위에 깔아주기도 한다.

대개의 경우 영상설교를 소위 한국식 열린예배 속에서 행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기계적으로 접근할 필요는 없다. 물론 회중의 중지를 모으는 열린예배 형식과 영상설교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반드시 영상설교가 담기는 맥락을 갱신된 예배에서 찾을 필요는 없다.

화면 집중으로 인해 생각의 여유 빼앗아 영상설교라는 것은 사회의 전달체계의 변화와 발맞추어 ‘듣는 설교’에서 ‘보는 설교’를 지향하는 회중들의 경향성에 대한 정당한 고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를 안고 있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쉼없이 변하는 동영상이 회중들로 하여금 화면에 집중하게 하기 때문에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빼앗아 버린다. 따라서 보는 것과 듣는 것을 동시에 배치하기 보다는 구분해야 하며 보는 것이 아닌 듣는 것에 마지막 목표를 두도록 해야 하다.

또다른 문제는 미디어가 만들어 내는 분위기 때문에 감동되는 것과 메시지 내용 때문에 감동되는 것은 엄연히 구분돼야 한다는 것이다. 동화상을 설교에 접목시키는 것은 설교자의 말이라는 1차원과 시청각적 동화상이라는 3차원의 결합이다. 회중의 수용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1차원적인 구연보다는 3차원적인 동화상이 훨씬 강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그리고 화상을 통해 다양한 화면을 설교시에 띄워줄 경우 과연 이것이 설교의 집중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는가의 문제도 고려돼야 한다. 설교 내용에 따라 수시로 동화상을 띄울 경우 회중들은 설교자와의 시선접촉보다는 화면과의 접촉에 몰두할 것이며, 따라서 설교자를 중심으로 한 회중과 설교자의 대화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미디어가 설교 내용 왜곡·과장할 수도
또 한가지 설교에 동원되는 미디어들은 그 자체로 설교의 메시지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보조수단에 불과할 뿐이며 효과와 관련된 기능만을 가질 뿐이라는 사실을 전제할 때 뉴미디어가 본래의 미디어, 즉 성경을 넘어서서 그 내용을 왜곡 내지는 과장할 수 있다는 위험성이다.

즉 성경에 실린 내용을 전달하는 보조수단으로 기능해야 하는 매체들이 성서의 상황과 메시지를 이미지화 하므로 인간의 다양한 감관을 자극하고 그것을 통해 전달효과를 극대화시킨다는 본래의 기능을 넘어서 왜곡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위험성을 경계해야 한다.

또한 다매체를 설교에 적합시킬 경우 예배가 갖는 거룩한 분위기가 훼손될 수 있다. 매체의 사용은 인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의도에서 시도된 것이다. 즉 기본적인 축이 하나님이 아닌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 의도가 실제적인 방식으로 연결될 경우 예배와 설교가 지금까지 견지해 온 거룩한 분위기가 훼손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한국적 상황에서 영상설교는 여전히 정착을 위한 터고르기 단계에 있다. 해결해야 할 신학적 문제도 많고 풀어야 할 현실적인 과제도 한 둘이 아니다. 영상설교에서는 영상이 메시지 보다 더 강하게 각인된다는 마성(魔性)을 염두에 두면 오히려 더 깊은 말씀과의 씨름 없이는 실패할 확률이 훨씬 크다 할 것이다. 또한 교인들 대부분의 의식이 이런 방식을 수용하겠는가 하는 것도 현 시점에서는 고려해 보아야 할 요소다.

그러나 영상예배는 한국 교회가 새로운 힘을 얻고, 시대에 적합한 적응성을 가지려 할 때 결코 무시할 수도 간과할 수도 없는 것들이다. 중요한 것은 이 두가지는 결국 형식 및 틀과 연관된 것이니 만큼 복음의 본질을 훼손해서는 안되며, 오늘을 사는 현대인에게 가장 효과적이고 올바른 복음의 전달 및 예배의 기쁨을 조성하는 쪽으로 각 교회의 상황에 맞게 개발해야 한다는 과제를 남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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