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주신 고난, 그 속에서 그리스도의 뜻 찾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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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주신 고난, 그 속에서 그리스도의 뜻 찾았죠”
  • 김동근 기자
  • 승인 2013.05.07 23: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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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치료제 ‘Cyclo-Z’ 개발중인 재미과학자 송문기 박사

▲ 송문기 박사는 자신이 겪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었다고 말한다.
재미과학자, 체내 아연대사와 관련한 각종 연구성과를 세계적으로 높이 인정받아 세계 3대 100인 인명사전 중 가장 권위 있는 ‘Marquis Who’s who’에 등재된 인물.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논문과 저술을 통해 생화학 분야와 의과학 분야에서 한국인의 위상을 높이 심고, 최근 당뇨치료제 ‘Cyclo-Z’(www.pncmp.com 010-2291-5112)를 미국 FDA에 임상 2상을 진행해 성공적 결과가 나올 경우 노벨의학상을 수상할 기회까지 마련될 것으로 보이는 이 사람. 바로 송문기 박사다. 많은 수식어가 붙어 어떤 사람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실제로 우리나라보다 해외에서 더욱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송 박사. 그의 신앙 이야기를 들어봤다.

생활의 반전
충청도 한 마을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송 박사는 그야말로 부족할 것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충청도에서 가장 큰 양조회사를 소유한 집안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줬기 때문이다. 약 50개의 행랑채를 가진 그의 집에 ‘어려움’, ‘가난’ 등의 말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또 대대로 이어져 온 학자집안으로 당시 초등학교 교육을 받을 만큼 좋은 상황에서 성장했다.

하지만 7살. 그의 눈앞에서 펼쳐진 ‘죽음’은 어쩌면 그의 삶이 누군가를 치료하기 위해 미리 하나님이 보여주신 복선인 듯 했다.

“제가 7살 때 저보다 3살 어린 동생이 태어났습니다. 그 아이는 태어났을 때부터 소아마비였고, 말은 할 수 있었지만 전신이 마비된 상태였습니다. 또 마침 그때 저희 아버지께서 하시던 사업이 실패해 집안 사정은 급속히 어려워졌습니다.”

어려울 것 없이 자라던 그에게 찾아온 가난. 그는 특히 어머니께서 많은 고난을 겪으셨다고 회상했다. 당장 가족들이 먹을 양식이 부족해 다음 날 먹을 것을 어떻게 구할지 매일 밤 고민하던 어머니의 모습은 어렸던 그의 눈에도 안쓰러웠다.

“할머니께서는 자신의 딸이 힘든 삶을 겪으시는 것을 보며 ‘우리 가족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기 때문에 온 가족이 교회에 가서 회개하고, 기도를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어린 동생의 병도 나을 수 있다며 우리 가족을 독려하셨습니다.”

아픈 동생 때문에 더욱 큰 어려움이 찾아오고 있던 찰나, 붙잡을 곳이 없던 그의 가족은 할머니의 말씀에 따라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교회를 찾은 그의 가족들은 아픈 동생이 평안할 수 있도록, 그리고 모든 가족들이 어려움 없이 살 수 있도록 기도했다.

동생의 평안을 구했던 그의 기도.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여동생은 하나님의 품에서 영원한 평안을 누리게 됐다.

살아나신 아버지
초등학교 4학년. 고모님 댁으로 거처를 옮겼다. 집안 사정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은 없었다.

아버지는 기울었던 가세를 다시 세우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노력하셨지만, 매일 저녁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한숨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한 번의 시련이 찾아왔다.

“동생이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안 돼 이번에는 아버지께서 복막염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다행이 고모부께서 서울대학교 이비인후과 과장으로 계셨기 때문에 그의 도움으로 아버지는 일본 외과의사에게 특별한 치료를 받으셨습니다. 충주에 살던 할머니께서는 하나뿐인 아들의 회복을 위해 정성을 다해 돌보며 기도하셨고, 아버지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수술 후 한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한 송 박사의 가족들에게 의사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줬다. 수술 후 아버지의 체내 혈액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 긴급수혈이 필요하지만 아쉽게도 가족이나 친척 중에 일치하는 혈액형이 없다는 것이 의사의 설명이었다.

“당장 수혈을 해야 하는데 혈액형이 맞지 않으니 답답한 마음이 앞섰습니다. 그런데 그 때 수술을 집도하신 일본 외과의사께서 자신의 혈액이 유일하게 일치한다며 직접 혈액을 기증하셔서 아버지는 기적과 같이 살아나실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여러 차례 사람의 건강과 아픔을 눈으로 목격하게 하신 하나님. 그 후 중,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겼지만 대한민국에서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없다는 판단으로 그는 미국행을 택했다.

30달러 그리고 미국
1959년, 30달러를 가지고 하와이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 종조부께서 사신다는 사실과 그 분이 사시는 주소 하나만 들고 떠난 길이었다. 종조부의 집에서 지내며 학교를 다녔다. 미국 교육이 쉽지는 않았지만 꼭 성공해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노력했다. 방학이면 놀 궁리를 하던 주위 친구들과는 달리 학비 걱정이 앞섰던 그는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어 보탰다.

처음 그에게 붙었던 ‘가난’은 끝까지 그를 따라왔다.

“그래도 열심히 공부해 해양학 화학에서 고학력 코스를 마치고, 하와이대학교 식물학 부서에서 초보 조사자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또 이를 위해 의과대학 약리학부에서 박사과정을 등록했습니다. 아픈 이들의 고통을 목전에서 지켜보며 그들의 아픔을 해소해줄 방법을 찾고 싶었습니다.”

인디아나대학교 의학유전학부 박사과정, 세펄비다 재향군인 관리국 병원에서 화학 연구원, UCLA 의과대학에서 연구교수 등으로 그의 경력은 쌓여만 갔고, 소화기내과에서 급성 췌장염을 연구해 임상 증후에 아연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후 그는 알츠하이머 질병 치료에 효과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등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가도에 올랐다.

“어린 시절에 마주했던 많은 절망 속에서 저는 ‘하나님 왜 하필 접니까’라며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감당할 수 있을만한 시련을 주신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이 정말 미울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고통을 모두 감내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한 걸음, 두 걸음 나아갔을 때 그 분께서는 제가 안심하고 걸어갈 수 있는 길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의지하고, 겸손해지며, 나쁘고 좋음을 떠나 다른 이들을 사랑하고, 정직해지고, 성실해지며, 나태하게 지내지 말라는 가르침을 주십니다. 저는 시련을 통해 나의 가족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을 사랑으로 감쌀 수 있게 단련됐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고,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주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랑으로 자신의 연구결과와 그 효력들로 인해 아픔 속에서 고통 받는 한 사람, 온 세계가 이로움을 얻길 바라며 그는 오늘도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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