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 활동 전개한 W.A. 비셔트 후프트

쉽게 풀어가는 에큐메니칼 운동 (9) 운영자l승인2013.05.07 22:59:26l12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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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칼 운동의 초창기부터 WCC의 창설까지 헌신을 다해 섬겼던 인물 중 중요한 한명은 네덜란드 신학자 윌렘 아돌프 비셔트 후프트(W. A. Visser't Hooft)다. 그는 WCC의 초대 총무이었고 3차 총회까지 사무총무를 역임하면 WCC가 초창기 자리매김을 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비셔트 후프트는 24세에 YMCA의 사무총무로 봉사하면서 1925년 "삶과 일 운동 세계대회"에도 참여하면서 에큐메니칼 운동에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신학적으로 비셔트 후프트는 칼 바르트(K. Barth)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칼 바르트의 교회론에 입각해서 교회 스스로가 비판적 숙고를 해야한다는 것이 비셔트 후프트가 생각하는 신학의 과제였다.

이런 점에서 비셔트 후프트는 나치가 독일을 장악했을 때, 독일의 고백교회를 지지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나치 독일의 침략으로 폐허가 된 유럽에서 나치 독일에 저항하도록 촉구했다.

비셔트 후프트는 세계교회협의회의 헌법을 초안하고자 모인 1938년 네덜란드 우트레히트(Utrecht)회의에 사무총장을 역임하면서 제1차 세계교회협의회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도록 하는 데 큰 힘을 쏟아 부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 개신교는 나치시대의 경험에 근거해서 전쟁에 대해 자신들도 책임이 있다고 죄를 고백했다. 독일 개신교는 회개를 WCC에 참여하기를 희망했으며 비셔트 후프트가 이를 수용했다.

비셔트 후프트는 올드햄과 더불어 제1차 WCC 총회에서 중요하게 부각된 "책임사회론"을 함께 구상했으며 이 "책임사회론"은 비셔트 후프트가 사무총무를 역임한 제3차 WCC 총회까지 핵심구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최경석 교수 / 남서울대학교
독일 보훔(Ruhr University Bochum) 신학과(Dr. theol)
현재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소속 목사
 

 

운영자  igoodnews@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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