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사회론’ 탄생시킨 올드햄

쉽게 풀어가는 에큐메니칼 운동 (8) 운영자l승인2013.04.30 21:45:23l12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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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에큐메니칼 운동을 이끌어갔던 인물들 중 두 번째로 소개하는 인물은 영국의 평신도 신학자 조셉 H. 올드햄(J. H. Oldham)이다. 올드햄은 1937년 ‘제2차 삶과 일 세계대회’와 1948년 ‘제1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1920년대에 에큐메니칼 운동이 활성화되었지만 1930년대는 디트리히 본회퍼(D. Bonhoeffer)가 지적한 것처럼 ‘교회의 소명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의 표현’인지, 아니면 ‘실제 기구적 성격을 띤 하나의 시도’인지에 대해서 에큐메니칼 운동은 분명한 답변을 내지 못했다. 이 질문은 교회론에 대한 물음이었다. 왜냐하면 1930년대 서구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는 국가와 교회의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독일의 경우 히틀러의 나치정권은 교회를 강력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안으로 종속시키려고 했다.

이런 시기에 그 동안 ‘국제선교대회’에서 활동했던 올드햄은 1934년 파뇌(Fanoe)에서 열린 ‘삶과 일 회의’에서 다음 세계대회의 주제를 ‘교회, 공동체 그리고 국가’라 정하자고 제안했고 이 제안은 채택되었다. 올드햄의 ‘국제선교대회’에서 ‘삶과 일’ 운동으로의 전환은 당시 그가 살고 있었던 세상의 현실에 대해서 교회와 신학자로서의 책임으로 인해서 이루어졌다. 올드햄은 신학자로서 많은 저술과 회의의 토론에 제출한 기고문을 통해서 초기 에큐메니칼 운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올드햄은 스스로가 평신도 신학자인 것처럼 에큐메니칼 운동 속에서 평신도들에게 상당한 지위를 부여하는데 노력했다. 또한 올드햄은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선포하는 대안들이 추상적인 문구나 실현 불가능한 대안에 그치는 것은 사실에 부합한 연구와 조사를 소홀히 했다고 판단하면서 철저한 경험적 자료와 연구를 하도록 에큐메니칼 운동에 촉구했다. 그 결과 1948년 ‘제1차 세계교회협의회’에서 아주 중요하게 평가받고 있는 ‘책임사회론’이 탄생되었다. ‘책임사회론’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올드햄과 함께 했던 비셔트 후프트(W. A. Visser't Hooft)는 ‘책임사회론’이 그렇게 큰 호응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최경석 교수 / 남서울대학교
독일 보훔(Ruhr University Bochum) 신학과(Dr. theol)
현재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소속 목사
 

운영자  igoodnews@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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