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칼 운동의 대표성 띤 ‘총회’ 필요성 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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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칼 운동의 대표성 띤 ‘총회’ 필요성 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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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4.16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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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풀어가는 에큐메니칼 운동 (6)

우리는 지금까지 세계교회협의회 총회가 구성되기 전까지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국제선교대회, 삶과 일 운동 그리고 신앙과 직제 운동은 독립적으로 때론 협력하면서 발전해왔다. 각각의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헌신해오던 사람들은 운동이 진행되면서 협력 사업이 많다는 것을 느끼고 깨달았다. 특히 삶과 일 운동과 신앙과 직제 운동 사이에서 이런 협력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두 운동은 1936년에 모임을 통해 상호간의 협의그룹을 만들자고 의견을 모았다. 이들의 구성원들은 교회에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목회자, 평신도, 여성 그리고 청년들을 포함했다.

1937년은 이 두 운동이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제2차 '삶과 일 운동 세계대회'가 영국의 옥스포드에서, 제2차 '신앙과 직제 운동 세계대회'가 역시 영국의 에딘버러에서 열렸기 때문이었다.

그 이전에 이들은 1937년 역시 런던의 웨스트필드대학에서 사전 예비 모임을 가졌다. 이 자리에 모인 대표자들은 삶과 일 운동과 신앙과 직제 운동을 결합시키는 데 합의를 보았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충분히 대표성을 가질 수 있는 총회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총회 이름을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라고 합의를 봤다.

1937년 제2차 신앙과 직제 운동 세계대회에서 위의 의견을 승인하면서 제1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를 준비하게 되었다. 세계교회협의회의 계획이 진행 중일 때 국제선교대회는 자신들의 독립성을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독립적으로 활동했다. 왜냐하면 국제선교대회는 교회의 통제를 받기를 꺼려하는 많은 선교단체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세계교회협의회로부터 독립성을 누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한편에서는 국제선교대회는 세계교회협의회와의 긴밀한 협력의 필요성도 느꼈다. 이런 의미에서 세계교회협의회는 국제선교대회에게 협력을 위해 도움을 요청했고 1948년에는 이 둘 간의 이른바 연합회가 결성됐다. 그리고 1961년에는 통합하기에 이르렀다.

각각의 에큐메니칼 운동이 서로 협력하면서 하나의 협의회를 구성하기로 약속한 후에 1941년 8월을 제1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 날짜로 합의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해서 제1차 총회는 연기되었다. 세계대전이 일어난 이후에도 세계교회협의회를 준비하는 위원들은 노력을 계속해서 결국 194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제1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가 개최됐다.

최경석 교수 / 남서울대학교
독일 보훔(Ruhr University Bochum) 신학과(Dr. theol)
현재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소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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