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원주민은 도울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친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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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원주민은 도울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친구’입니다
  • 김동근 기자
  • 승인 2013.04.10 15: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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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차드의 권홍량 선교사와 그의 딸 사진작가 권한나 씨
▲ 권홍량 선교사와 딸 권한나(사진작가) 씨가 아프리카 차드에서 활짝 웃고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권홍량 선교사는 말씀을 전하고 이웃을 돕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된 도리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라고 말한다. 미국에서 한인교회(남가주광성교회) 목사로 오랜 시간 사역했던 권 선교사도 목회를 통해 말씀을 전하는 것과 동시에 늘 이웃을 섬기려 노력했다.

미국의 남쪽에 접경한 멕시코의 난민들을 찾아 돌보고, 주변에 즐비한 홈리스들을 섬기는 사역을 계속한 것. 특히 멕시코 난민 사역은 거의 매달 계속됐다. 지난 2000년 사역을 시작한 후 멕시코를 방문한 횟수만 150여 회. 그만큼 하나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아프리카 차드로 떠났다.

아프리카의 죽은 심장
아프리카, 그것도 내륙으로 한참 들어가면 ‘차드’라는 이름을 가진 나라가 있다. 생소한 이름을 가진 나라. 차드의 별칭은 아프리카의 죽은 심장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사막과 높은 온도, 낮은 습도룰 느끼면 자연스레 그렇게 느끼게 된다고 한다.

권 선교사가 차드로 향하게 된 것은 한 모임이 시작이 됐다. 나이가 차고 은퇴를 준비할 시기라는 판단으로 찾았던 ‘죽음을 준비하는 모임’에서 차드를 소개받은 것이다.

“하나님을 믿으며 평안 속에서 살던 사람들이 보다 의미 있는 죽음을 마주하기 위해 조직된 모임이었습니다. 거기서 아프리카에 우물을 파주자는 한 장로님을 만났습니다.”

처음 접한 차드, 그리고 그 곳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아기가 태어난 후 금방 죽는 일이 빈번해 이름도 바로 지어주지 않는 나라. 그 곳에 우물이 생기고 주변 사람들이 생기를 되찾는 모습은 그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때 처음 차드의 영상을 접했습니다. 사실 그 모임에서 멕시코 선교를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 뻥튀기를 팔 작정이었습니다. 기금을 마련해 구제사역에 나설 심산이었죠. 그런데 그 영상을 보니 이들에게 우물을 파주는 일이 더욱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물을 파는데 필요한 돈은 3백만 원을 조금 웃도는 돈이죠. 그날 바로 헌금했습니다.”

▲ 권홍량 선교사 부부가 차드의 한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났다.
그는 멕시코 사역을 위해 뻥튀기 장사를 했다. 뻥튀기가 터질때마다 사람들을 모여들었고, 뻥튀기의 맛 또한 좋았기에 늘 그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붐볐다.

“두 번째 우물을 파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그런데 처음 우물파기를 제안한 장로님이 차드에 직접 가보자는 겁니다. 비행기 삯이 3천 달러였는데, 우물을 하나 더 팔 수 있는 돈이었죠. 거절을 하고 오는데 모든 비용을 부담할테니 꼭 함께 가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끄심을 느꼈던 그는 차드로 갈 것을 마음먹었다. 그리고 얼마 안가 딸 한나도 차드로 가는 여정에 함께하게 됐다. 그의 달란트, 사진기를 들고서. 권 선교사의 딸 한나 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아버지께서 차드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냥 지나가는 말로 ‘아빠, 나도 카메라 팔아서 같이 아프리카 갈까?’했어요. 근데 아버지가 그 이야기를 함께 가시는 장로님께 하셨나봐요. 며칠 안가 그 분에게 함께 가자는 전화가 걸려왔어요. 얼마 시간이 남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차례차례 진행돼 차드에 갈 수 있게 되었죠. 하나님이 인도하셨던 것 같아요.”

충격, 열악, 먼지. 공항에 내려 권 선교사와 한나 씨가 처음 느낀 것들이다. 전기도 없이 쓰러져가는 공항은 그들이 그런 느낌을 갖기에 충분했다. 평균 기온은 40도를 웃돌아 낮에는 거의 활동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바로 차드 마을을 돌며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그들과 참 가까이 있었죠. 그때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사역을 시작하라’는 부르심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2010년 2월, 권 선교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지금까지 재봉틀 사역, 쿠키공장 사역, 축구팀 사역 등 그들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사역을 계속 해오고 있다.

‘카파마’ 나의 친구
사진작가 권한나 씨도 그렇게 차드로 향했다. 예전 그의 아버지가 사역하는 곳에서 사진을 찍어주는 봉사를 시작한 이례로 그가 선교지에 향하는 것은 늘 있는 일이었다.

“처음 차드를 향할 때는 우울하고 불쌍한 사진만 찍었어요. 그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거죠. 일간지 기자와 동행했는데 그 분도 그런 사진을 요구하기도 했죠. 그래서 첫 방문했을 때 사진은 어두운 느낌이 강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들의 웃음이 참 아름답고 예쁘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들의 삶 속에도 행복은 있었죠.”

마프링이라는 작은 마을, 그 마을을 찾았을 때 한나 씨는 ‘라야(Laya)’라는 원주민을 만났다. 그리고 하루 종일 그녀를 따라다니며 그의 일상을 사진 속에 담았다.

▲ 마프링에서 만난 라야와 그의 큰달 에이다. 아침식사를 한 후 춤을 추고 있다. 사진작가 권한나 씨가 차드를 사랑하는 계기가 된 이들이다.
“라야는 저보다 어린 20대 초반의 여자아이에요. 그런데 벌써 아이가 셋이나 있었죠. 통역도 없이 그녀를 따라다녔어요. 그날 제 삶에 변화가 생겼죠. 그 전에 3~4차례 방문했을 때는 느끼지 못한 것들을 느낄 수 있었어요. 차드의 사람들을 보면 늘 불쌍하다, 안쓰럽다 생각만 했었는데, 그 생각들이 모두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들은 우리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동정할 대상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라는 거에요.”

말도 통하지 않는 이와 하루를 보내며 마음을 나눴다. 서로 말이 없었기에 더욱 따뜻한 진심이 오갔다.

“그날 저녁 라야와 헤어지면서 말은 안 통하지만 ‘너는 나의 친구’라는 말을 전했어요. 정말 그렇게 느껴졌고, 꼭 전하고 싶었거든요. 그때 옆에 있던 라야의 큰딸 에이다(Ada)가 ‘카파마(kapama)’라고 제게 말했죠. 무슨 뜻인지 궁금해서 나중에 통역이 가능한 분께 여쭤봤어요. 그 단어의 뜻은 마을의 언어로 ‘내 친구’라는 단어였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통했던 마음. 그렇게 한나 씨 또한 차드를 사랑하는 한 사람이 되었다.

차드의 여러 마을을 다니며 권 선교사가 들었던 말 중 하나는 학교를 지어달라는 요청이었다. 거의 모든 마을의 추장들은 아이들이 배움의 길을 걷기 원했다. 차드의 문맹률은 UN에 가입한 세계 191개국 중 175위다.

“차드의 아이들은 하루에도 서너 번 물을 길러 갑니다. 멀리 떨어져있는 웅덩이까지 걸어가 물을 길어옵니다. 학교에 다닐 틈이 없죠. 차드에 우물을 파주고, 그 옆에 학교를 세워주며, 그 옆에 교회를 세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사역 계획입니다. 교회 옆에 조그마한 보건소까지 지어지면 그들이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하나의 묶음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아이들에게 학교를 지어주기 위해 사진전도 개최했다. ‘챠드-두 가지 시선’이라는 제목을 단 전시회로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제3특별관에서 10일~16일까지, 서초동 문화카페 뉴 올에서 9일부터 17일까지 열린다.

“두 가지 시선의 첫 번째 의미는 그들이 세상에 바라는, 원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두 번째 의미는 제가 바라본 차드의 모습이죠. 아프리카 사람들의 행복이 드러난 이번 사진전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한나 씨는 차드의 모습을 회상하며,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조금은 비관적이던 제가 차드를 다녀오고 나서는 낙관주의자가 된 것 같아요. 주변 친구들이 뭔가 불평을 하면 저는 다 ‘괜찮다. 괜찮다’ 이렇게 말하곤 하죠. 우리는 주변에 있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잊고 사는 것 같아요. 가진 것을 조금만 나누면 누군가의 꿈을 이뤄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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