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결국 배제된 ‘에큐진영’... WCC상임위와 작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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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결국 배제된 ‘에큐진영’... WCC상임위와 작별하나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3.04.01 1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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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 회원교단 사업은 반영되지 않은 채 분담금 책임만 떠안아

재정창구 역할 감당하는 교회협 유지재단 법인도 ‘발빼기’ 고심

지난 28일 두 차례 연기 끝에 WCC 한국준비위원회 상임위원회가 열렸다. 상임위는 WCC 총회와 관련된 국내 사업에 대한 집행과 결의권을 가지고 있는 최상부 조직. 그만큼 새로운 변화가 결정될 수 있다는 기대도 컸다. 그러나 결과는 같았다. 상임위원회는 에큐메니칼 진영의 요구에 깊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김삼환 목사가 없이는 WCC 총회와 같은 대규모 행사를 치룰 수 없다는 의견이 오가며 상임위원회 결속만 강화됐다. 심지어 상임위원회는 또다시 몸집을 불리며 한국 교회 진보와 보수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는 구조로 변화를 천명했다.

이날 회의에 교계의 관심이 쏠린 것은 4개 교단(통합, 감리교, 기장, 성공회) 총회장과 총무 등 WCC 회원교단이 구상한 ‘총회’의 밑그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상임위원회 구조에는 정작 실무를 담당할 WCC 4개 회원교단 총무들의 참여가 막혀 있었고, 에큐메니칼 저변 확대를 위한 계획보다는 ‘이벤트식의 대형성회’만 국내외 일정에 포함되어 있었다.

에큐메니칼에 대한 이해 부족이 지난 1.13공동선언문 사건을 촉발시켰다는 판단을 내린 에큐메니칼 진영은 김삼환 위원장과의 대화를 요구했고, 4개 회원교단은 “교단이 계획한 사업을 반영하고, 총회 후에 연속성을 갖도록 상임위가 구조를 개편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전달되지 않았다. 이미 상임위원회 내부에서는 “WCC 총회와 같이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행사는 책임있는 인사가 주도하지 않고서는 어렵다”는 회의론만 가득했다. 단, 상임위원 확대조직 과정에서 ‘에큐메니칼 원로’들을 참여시킴으로써 “그들의 요구도 충분히 반영했다”는 해명이 가능하게 했다.

어렵게 열린 상임위원회 회의가 4개 WCC 회원교단의 기대와 달리 끝을 맺자 회원교단 총회장과 총무들은 지난 30일 정동 달개비에서 모임을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교단 실무자들이 철저히 배재된 준비위원회 조직 속에서 과연 어떠한 책임을 감당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었다.

4개 회원교단은 WCC총회를 앞두고 지역 교회들까지 참여하는 에큐메니칼운동의 확대와 총회 후 새로운 인재를 양성하는 훈련원의 개원, 정의 평화 생명 등이 담긴 연속 기도회 등을 계획했다. 그리고 교단에 배정된 부담금이 총 18억 원에 이르는 만큼 총회전후로 이 예산들을 교단이 구상한 사업에 사용하겠다는 꿈도 가능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교단들의 권한은 총회장의 상임위원회 참여와 약속된 재정을 분담하는 것뿐이었다. 4개 교단이 구상한 사업계획은 한국준비위원회의 사업 속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한국준비위 사업은 지난 연말 김삼환 상임위원장이 복귀한 후 구상한 계획들이다. 여기에 이날 상임위원회에서 대규모 성회와 기도회 등을 추가하며 ‘대형집회’로써 WCC 총회를 준비한다는 시나리오를 마무리했다. 에큐메니칼 정신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WCC 총회를 한국 교회에 알리고 그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회로 점철된 것이다.

상황이 이쯤 되자 4개 회원교단은 일단 분담금 납부부터 고민에 빠졌다. 한 회원교단 관계자는 “교단이 구상하는 사업에도 예산이 필요한 상황이다. 전부 준비위원회에 내고나면 정작 교단 사업에는 투자할 예산이 없어진다”고 곤혹감을 드러냈다.

물론 상임위원회가 교단 총회장들이 참여하지만 총회장들의 임기는 총회가 열리기 한 달 전인 9월까지다. 예산에 문제가 생기거나 했을 경우 그 책임은 총무들의 몫이다. 임기 3~4년의 교단총무들이 사업의 연속성을 고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임위원회의 일방통행에 고민이 깊은 쪽은 교단뿐만이 아니다. 집행위원장 사퇴를 선언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도 앞으로의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 상임위원회는 교회협 김영주 총무의 사표를 반려한다고 이야기 했지만 누구도 적극적으로 집행위원장의 복귀를 권하지 않았다. 이날 상임위원회에서조차 집행위원장 복귀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교회협의 참여 없이 WCC 총회가 가능할 것인가에 있다. 물론 지금 상임위 구조대로라면 별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구조를 넘어 예산의 집행과 결산에 있어서 교회협의 책임은 막중하다. 현재 한국준비위원회 예산은 교회협 유지재단 법인 통장을 사용하고 있다. 정부지원금도, 상임위원들의 후원금도, 교단의 분담금도 모두 교회협 통장을 거치게 되어 있다. 교회협으로써는 요청하는 예산을 집행해줄 수 있지만 약속되지 않은 막대한 예산에 대한 결손을 누가 채우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한국준비위가 세운 전체 예산은 69억 원. 정부지원금을 제외하면 46억 원이다. 이 가운데 WCC 회원교단의 분담금이 18억 원. 나머지 28억 원은 모금에 의존해야 한다. 총회까지는 불과 7개월. 30억 원에 이르는 돈을 미리 모금하기는 쉽지 않다. 교단 분담금 역시 약속된 액수를 채우기 어렵다.

한 회원교단 관계자는 “현장 교회의 체감온도는 더욱 낮다. 한국 준비위원회의 업무가 중단된 사이 반대그룹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면서 지역 교회들이 겪는 곤경이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실질적으로 교회를 대상으로 하는 모금은 어려울 수 있다는 비관론이 나오고 있다. WCC에 동조하는 교단 소속 목회자들의 부흥집회가 취소되는가 하면 지역 교회에서 ‘왕따’를 당하는 일도 일어나고 있다. WCC에 대한 오해가 집단적 이지메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국을 돌며 WCC가 그동안 세계 속에서 감당해온 순기능을 알리고, 정의 평화 생명의 참된 메시지를 전해도 모자를 판에 한국 준비위는 지난 3년간 자리싸움에 시간을 모두 낭비했다. 반대운동에 대한 대응도 ‘법적 소송’으로 정리했을 뿐, WCC에 대해 제대로 이해시키고 현장을 참여시키려는 노력은 전무한 상황이다.

재정에 대한 확실한 계획 없이 대규모 사업을 계획하며 70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예산을 통과시키자, 교회협은 계속 법인을 안고 갈 것인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법인을 포기할 것인가 유지할 것인가 결단의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교회협 유지재단 법인을 그대로 존속할 경우 추후 예산 집행과정에서의 후유증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정부지원금이 23억 원이나 편성된 상황에서 한 치라도 허투루 사용할 경우, 감사를 피하기 어렵다. 또 재정의 누수가 발생할 경우 그 책임을 교회협이 져야 하는 상황. 자칫 누군가는 ‘배임’의 사법적 책임을 져야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교회협이 법인을 내려놓자니, 별도 법인을 행사 7개월을 앞둔 상황에서 새롭게 등록하는 것이 마땅한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교회협 이외에 사용할 수 있는 법인은 회원교단 유지재단이지만 재정의 사용결의를 낼 때마다 이사회를 열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한국준비위가 별도의 법인을 설립할 수 있지만 신생법인의 공신력을 담보할 수 있는 ‘보증’도 필요한 상황이다. 여기에 교회협 법인으로 내정된 정부지원금을 다른 법인에 이관할 수 있는지도 검증할 부분이다.
교회협과 4개 회원교단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놓은 후유증은 이처럼 크게 남았다. 4개 교단 분담금 없이 총회를 치룰 수 있을지, 교회협 법인 없이 새로운 법인을 설립할 수 있을지 한국준비위원회도 경우의 수를 따져보아야 한다.

상임위원회가 결정한 사업들이 ‘에큐메니칼’이라는 큰 틀에서 볼 때 의미가 없다는 판단이 든다면 4개 회원교단과 교회협은 과감히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되면 대형행사와 재정의 책임은 한국준비위원회가 지고, 별도의 에큐메니칼 행사와 후속사업은 교회협과 4개 교단이 감당하는 ‘이원적 구조’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에큐메니칼 진영 역시 아직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못한 가운데 오는 6일 교회협 유지재단 이사회까지 참여하는 확대모임을 열고 앞으로의 향방을 모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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