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한 몸 가누기도 어려운 장애인에게도 사랑은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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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한 몸 가누기도 어려운 장애인에게도 사랑은 축복”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3.03.07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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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 장애인 결혼식 도운 닮복지재단·효촌교회

태어나자마자 시설에 버려진 아이들, 그들이 원한 것은‘ 사랑과 결혼’ 뿐

2월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결혼식이 있는데, 보러 올래요?”

‘예쁜 결혼식?’ 무슨 일일까 궁금했다. 지난 2010년 서울시로부터 사회복지법인 승인을 받았다던 곽광희 목사(닮복지재단 이사장)는 ‘사랑의 찐빵’ 사역을 바탕으로 닮복지재단을 세웠다. 그리고 그곳에 예수님을 닮고 싶다는 마음을 담았다.

처음 시작은 중증장애인 그룹홈이었다. 재단설립을 위해 자신의 사재 25억 원을 털었던 곽 목사는 미아동 4층 빌라 한 동을 복지재단 시설로 사용하고 있다. 1층에는 중증장애인 그룹홈을 2층은 노인들의 생활공간을 만들었다. 3층과 4층은 봉제작업장으로 ‘닮패션’을 운영한다. 장애인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공간이다. 지하에는 ‘닮지퍼’ 공장을 만들었다. 다문화 여성과 탈북여성이 이곳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닮패션은 아직 수익이 없지만 지퍼공장은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장기적으로 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드는 것이 곽 목사의 꿈이다.

가장 용감한, 그리고 예쁜 결혼식

닮재단 장애인 그룹홈에는 현재 3명의 남자 장애인들이 생활하고 있다. 모두 1급 장애를 지니고 있다. 뇌병변으로 홀로 거동하기 어려운 중증 장애인들이다.

지난 1일 열린 결혼식의 주인공도 그 중 한 명이다. 어린 시절, 충청도의 한 장애인 시설 운동장에 버려진 현남일 군이었다. 현남일 군은 부모가 누군지 모른다. 포대기에 쌓인 핏덩이를 발견했을 때, 그를 내려놓은 택시는 이미 떠나버린 후였다. 아기의 이름이나 생일을 알 수 있는 메모도 없었다. 운동장에 버려진 1984년 2월 24일이 현 군의 생일이다.

충청도의 장애인 시설에서 자라난 현 군은 걷지 못한다. 재활을 제대로 받지 못해 앉은 자세로 다리가 굳어 버렸다. 성인이 되면서 충청도를 떠난 그는 경기도 포천 ‘생수의 집’으로 오게 됐고, 그 곳에서 지금의 신부 김복순 양을 만났다. 2005년 1월부터 그들은 8년의 시간을 함께 했다.

복순 양 역시 장애를 안고 태어나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안타까운 것은 그녀의 몸은 현 군보다 더 굳어져 있다는 점이다. 시설에서 그녀는 누워서 생활한다. 홀로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다. 두 사람 모두 전동 휠체어로만 이동할 수 있고,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홀로 생활이 어렵다.

홀로 생활할 수 없는 장애인이라고 해서 독립에 대한 욕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은 시설을 떠나 서울시복지재단에서 위탁 운영하는 장애인자립생활체험홈으로 향했다. 그렇게 현남일 군은 닮재단과 인연을 맺었다.

부부의 연을 맺은 김복순 양과 현남일 군.
“꼭 결혼을 해야겠어?” 복순 양과 결혼을 하고 싶다는 현 군에게 곽광희 목사가 물었다. 너무나 사랑한다던 복순 양도 만나 보았다. 하지만 현 군보다 더 부자유스러운 복순 양을 보면서 곽 목사는 암담했다.

“혼자서는 물도 마실 수 없는데… 지금 그룹홈에서도 복지사들의 도움이 없이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는데 둘이서 살겠다니 눈앞이 캄캄하더라구요. 제 옆에 가까이라도 있으면 어떻게든 도와줄텐데 결혼하면 이곳을 떠나 독립해야 하거든요.”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장애인들에게는 임대주택이 제공된다. 현 군은 복순 양이 살고 있는 독산동 자립홈으로 들어간다. 두 사람 모두 심한 중증 장애를 갖고 있어 다른 사람들처럼 제대로 된 자립교육을 받지 못했다. 지적 능력도 떨어져 결혼을 결정하기까지 주위에서는 오랜 시간 기도로 응답을 구했다. 당장의 결혼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것이 더 중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곽광희 목사는 ‘결혼’을 허락했다. 두 사람의 사랑을 막을 수 이유가 없었다. 장애인들도 똑같이 사랑하고 똑같이 욕망하는 ‘희로애락’의 소유자였으니까.

“나 역시 아이들에게 편견이 있었나 봐요. 사랑을 이뤄줄 생각보다 걱정이 앞서 사랑을 막을 생각만 했었지. 그런데 그 아이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잖아요. 그 사랑을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결혼식을 준비하게 됐죠.”

세상의 짐 나눠지는 닮복지재단 ‘사랑의 찐빵’ 모태로 종합복지 사역

닮패션에서 두 사람이 입기에 불편하지 않은 아름다운 결혼예복을 만들었다. 곽 목사는 신부의 머리에 쓸 면사포와 부케를 직접 만들었다. 곽 목사가 시무하는 효촌교회에서 성도들이 음식을 장만했다. 교회 청소년들이 오케스트라 반주를, 장애인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수학을 가르쳐주던 자원봉사자 학생들이 축가를 맡았다.

곽 목사의 주례사는 짧고 간결했다. “남일이는 고집이 센데, 신부에게는 항상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렇게 말하세요. 우리 신부 복순 양은 울보인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울지 말고 잘 참고 행복하게 살아야 해요.” 이미 그녀의 눈가는 붉어져 있었다.

같은 방 동료 유재필 군은 멋진 시를 선사했다.

“오늘 아름다운 축복 속에 꽃다운 청춘 선남선녀가 핑크빛 백년가약을 맺고 한 길을 같이 걷고자 합니다. 서로에게 찾아온 기적같은 운명. 같은 꿈을 꾸고 그 꿈을 사랑하세요. 서로의 버팀목이 되는 사랑, 서로의 믿음이 되는 사랑, 서로의 기적이 되는 사랑, 핑크빛 사랑의 동반자가 되어 누구에게는 작을 수 있지만 당신들의 크고 아름다운 꿈으로 함께 달려가 행복의 길로 골인하세요.”

그가 직접 읽을 수는 없었지만 11살 어린 친구의 목소리를 통해 낭랑하게 전달된 결혼 축시는 하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결혼식을 부러워하는 같은 장애를 가진 친구들과, 힘겨운 삶 속에서도 사랑의 힘으로 장애를 극복한 두 사람의 앞길을 축복하는 이웃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2013년 3월 1일, 그렇게 두 사람은 부부의 연을 맺었다.

노인과 장애인에 이어 청소년 섬기며 이웃의 필요 ‘예수님의 긍휼’로 돌봐

닮복지재단의 사역은 아직 크지 않다. 시행착오 속에서 온전한 길을 찾고 있다. 65세 이상 무주택 저소득 노인을 모시고 있고, 중증장애인과 생활하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곽 목사의 꿈이 청소년 선교에 있었고, 그 일을 위해 하나씩 종합복지의 기틀을 잡아 나가는 중이다.

“정부 지원 없이 운영하는 중인데 복지를 위한 수익모델도 만들어야 하고, 청소년 살리기도 본격적으로 나서야 하고 아직 할 일이 많아요. 올해는 작게나마 ‘청소년 책사보기 운동’으로 장학사업을 시작합니다. 또 청소년들의 정서 순화를 위해 의정부에 있는 학교 한 곳을 선정해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이 함께 하는 ‘빵 나누기 운동’도 펼칠 예정이에요.”

닮복지재단의 모태가 된 ‘사랑의 찐빵’ 사역도 여전하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앞에서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노숙인과 노인들에게 찐빵을 나눈다. 지난 2000년부터 시작한 사랑의 찐빵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단 한 번도 쉰 적이 없다. 영하 10도가 넘는 추운 날씨에도 찐빵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새벽부터 팔을 걷고 나선다.

찐빵은 결식아동과 장애인, 군부대 등에도 나간다. 중증장애인 시설에선 일주일에 한 번씩 복지재단을 찾아와 간식으로 찐빵을 받아가기도 한다. 매달 4만개 가까이 찐빵을 나눈지 10여년 만에 그 개수는 400만 개를 넘어섰다.

지난해에는 부산지부도 생겼다. 전주와 충주에서도 곧 사랑의 찐빵을 만날 수 있다. 곽 목사는 “지부를 중심으로 지역교회연합회와 함께 청소년살리기 운동을 전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장애인과 노인들이 생활하는 닮재단 그룹홈에는 조만간 출소자 2명도 함께 머문다. 곽 목사는 동대문에서 만난 노숙인 청년들을 아들삼아 이곳으로 인도했다. 갈 곳 없는 이들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도록 항상 문을 열어 놓았다.

“애써 데려온 녀석들이 재단을 몽땅 털어갔지 뭐에요. 돈이 될만한 것을 다 들고 나갔는데, 나가서도 이것저것 훔치다가 감옥에 갔어. 이번에 집행유예로 나와서 곧 이리로 온다니까 다들 걱정부터해요. 뭐 또 없어지면 어쩌나 하고.” 소탈하게 웃는 곽 목사는 그들이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뿐이다.

“‘엄마, 우리 곧 그리로 갈게요’ 하고 전화가 왔어요. ‘이 녀석들아 여길 왜 와~’ 이러고 엄살을 부렸더니 ‘우리가 거기 아니면 갈 데가 어디 있다고…’ 이러더라구요. 여기가 그 아이들의 집인거지. 고맙지 뭐.”

누군가에게 인생은 무겁다. 홀로 지고 갈 수 없어 간절한 울음을 토해내기도 한다. 곽광희 목사에겐 이들의 인생이 아프다. ‘내가 함께 나누어준다면 그들의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질까…’ 늘 기도한다. 예수님의 긍휼이 그 안에 있는 까닭이다.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 이것이 그녀가 꿈꾸는 세상이다. 장애인과 노인, 청소년과 다문화, 탈북자와 재소자 등 빈궁한 모든 이웃이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을 따뜻한 찐빵에 담아낸다. 찐빵이 부풀어 오르는 만큼 사랑도 나눔도 더 커진다. 이처럼 곽광희 목사의 사랑은 ‘닮복지재단’을 통해 맛있는 ‘찐빵’처럼 모락모락 익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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