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색은 달라도 “나는 한국인입니다” 자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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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색은 달라도 “나는 한국인입니다” 자부심
  • 김목화 기자
  • 승인 2013.02.26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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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나라의 고유 의복을 입고 졸업식에 참가한 지구촌학교 어린이들. 피부색은 달라도 한국말은 유창하다.

국내 최초 다문화 대안초등학교 지구촌학교 ‘제1회 졸업식’
태어난 나라, 피부색 다르지만 모국어는 한국어로 동질감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언젠가 난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지난달 15일에 열린 서울 구로구 오류동 ‘지구촌학교’의 첫 졸업식. 합창단이 부르는 ‘거위의 꿈’이 강당에 울려 퍼지자 들떴던 졸업식의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학생도 선생님도 떠나보내는 졸업식의 뭉클함은 어느 학교 졸업식과 비슷하지만 이 학교의 졸업식은 달랐다.

전교생 1백여 명, 졸업생 6명. 서울에서 찾아보기 힘든 미니학교이자 국내 최초 다문화 대안학교의 첫 졸업식이다. 졸업식에 온 부모들도 아프리카 가나, 영국, 필리핀, 중국 등 다양하다.

지구촌학교는 이주민지원 전문기관인 사단법인 지구촌사랑나눔 대표 김해성 목사가 지난 2011년 3월 설립해 같은해 11월 국내 최초 정규 초등 대안학교로 인가받았다. 정규 초등학교 교육과정에 다문화 특성화 교육이 결합된 형태로 다문화어린이, 외국인근로자 자녀, 다문화교육을 원하는 한국어린이에게 전액 무료로 운영되고 있다. 또한 중도 입국자들을 위한 예비학교와 교육청 위탁형 대안학교도 정식 초등과정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중국, 필리핀, 미얀마, 일본, 태국, 과테말라, 우즈벡, 미국 등 16개국 출신 98명이 재학 중이다.

일반 학교를 다니는 다문화 초등학생 자녀 10명 중 4명은 학업을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남들과 다른 피부색, 어눌한 말, 주위의 편견에 일반 학교에서 놀림 받거나 부모의 이혼 등의 가정문제로 불운한 탓이다. 하지만 지구촌학교에서 학교 이탈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번에 졸업한 여섯 명의 학생은 다른 다문화 친구들과 못지않게 가정환경이 매우 어렵다. 부모를 모두 잃은 고아 학생, 가정폭력에 위협받는 불안한 학생, 국적도 없이 떠도는 나그네 학생 등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사정을 갖고 있다. 때문에 이들 또한 학업을 포기할 위기가 많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선생님의 따뜻한 사랑과 학교의 돌봄이 있었기에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 모두 졸업했다.

영화 ‘마이 리틀 히어로’에 출연해 유명세를 얻게 된 황용연(14) 군도 졸업생 중 하나. 다문화 사회에선 이미 인기스타다. 황 군은 졸업식날 강당 단상에 올라 졸업 소감을 전했다.

“일반 중학교로 진학하게 되어 걱정도 되고 설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위의 편견에 휘둘리지 않고 노력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가나 출신 엄마와 한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황 군은 엄마(2007년)와 아빠(2010년)를 잇달아 잃는 비극을 겪었다.

6학년 담임 이윤주(29) 선생은 “하나님이 보우하사 김해성 목사님이 용연이와 동생들을 입양하면서 아이들의 눈물은 서서히 행복한 웃음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용연 군은 다문화 희망의 아이콘으로 주목받고 있다. 또한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황 군은 자신이 한국인이 아니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단다.

▲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은 자신이 한국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단다.
지구촌학교 졸업생 6명 가운데 5명은 지구촌학교가 운영하는 위탁 중학교에 진학한다. 나머지 한 친구는 경기도 다문화학교로 입학이 결정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다문화 가정 자녀수는 지난 2010년 12만 명에서 해마다 2만 명씩 늘고 있다. 숫자는 증가한 반면 이들의 중학교 미진학율은 전체의 59.2%, 고등학교 미진학율은 81.1%에 달한다. 또 학업이 중단된 후에도 별다른 지원도 못받은 채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지구촌학교는 그냥 학교가 아니다. 고아, 이혼, 차별, 왕따, 편모, 가정폭력 등의 다문화 아픔 때문에 학교 설립이 추진됐다. 지구촌학교 관계자는 “눈물도 그냥 눈물이 아니라 피눈물로 세워진 학교다. 때문에 지구촌학교에서 들리는 웃음소리가 얼마나 소중한 지 모른다”고 말했다.

또한 이들이 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선생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구촌학교에 입학해도 폭력 남편을 떠나 쫓겨 다니거나 고달픈 한국 생활 탓에 장기적으로 결석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제자를 찾아 나서며 설득과 도움을 통해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도와줬다. 그리고 마침내 졸업한 제자는 선생님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지구촌학교 이사장 김해성 목사는 “지구촌학교는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 및 가정이 어려운 다문화가정 자녀를 위해 세운 학교이기 때문에 이런 학생들을 보호하고 교육하는 것이 학교의 존재 이유”라며 “지구촌학교 학생들이 여러 난관과 아픔을 견뎌내고 무사히 졸업하게 되어 기쁘다. 졸업생 6명은 평범한 졸업생이 아니라 왕따와 차별 등 갖가지 역경을 이겨낸 영웅들”이라고 격려했다.

지구촌학교 학생들은 서로의 아픔을 잘 알기 때문에 서로 돕는다. 그리고 서로를 위해 기도한다. 때문에 지구촌학교의 졸업생들에게는 졸업장은 눈물의 졸업장이었다.

지구촌학교의 교훈은 사랑이다. 특히 지구촌학교 선생님들의 애틋한 제자 사랑은 남다르다. 이번에 졸업장을 받은 여섯 학생은 “선생님의 기도 덕분에 졸업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지구촌학교 전경.
제자들이 가슴 아픈 사건을 겪을 때마다 혹은 학교가 설립 초기의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선생님은 눈물로 기도했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교육의 큰 능력은 제자를 위해 흘리는 사랑의 눈물이라며 믿음을 갖는다.

“우리 학생들은 한국의 일반 학교 학생들과 많이 다릅니다. 한국 학생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가슴 아픈 일들을 겪거나 겪고 있음에도 너무나 착합니다. 그 아픔과 외로움 속에서도 자기보다 더 어려운 친구나 동생들을 도와주기까지 합니다. 다문화를 차별하고 왕따 시키는 이 세상을 우리 학생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지구촌학교의 선생님들은 제자들을 떠나보내면서 많은 걱정이 들기도 하지만 떠나보내기로 했다. 숱한 아픔 속에서도 건강하게 성장하는 제자들을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시 아픔을 가진 제자들을 맞이하려고 한다. 가난한 다문화 가정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아픔과 상처에 시달릴 또 다른 제자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지구촌학교의 기도는 눈물로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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