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에서 나온 돌십자가...기독교는 언제 전래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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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에서 나온 돌십자가...기독교는 언제 전래됐을까?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3.02.20 1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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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에서 만난 예수 / 돌베게 / 최상한 지음

그리스도교의 한반도 전래 역사의 흥미진진한 추리
실크로드 타고 들어온 신앙 역사 곳곳에 흔적 남겨

불국사에서 돌십자가가 발견됐다.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석굴암의 건축 양식은 마치 성 어거스틴의 복음서에 나오는 ‘누가의 초상화’를 보는 것 같다. 참 이상한 일이다. 한국 역사에서 천주교와 개신교가 설립된 공식년도는 1784년과 1885년, 즉 18~19세기로 전해진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오래전 ‘그리스도교’의 흔적이 역사 속에서 발견된다. 과연 그리스도교는 언제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까.

경상대 행정학과 최상한 교수의 호기심이 한 권의 책으로 엮였다. 인도에서 기원전 6세기에 시작된 불교가 기원후 4세기 말에 한반도에 전래되었다면, 1세기 중엽에 시작된 그리스도교 또한 고대 한반도에 유입되었을 것이란 가정이 그를 ‘탐독’으로 이끌었다. 수십종의 고전 문헌과 그리스도교 관련 서적들을 읽어낸 그는 ‘불국사에서 만난 예수’(도서출판 돌베게)라는 파격적인 제목의 책을 통해 18세기 전래된 서방그리스도교가 아니라 고대 한반도 땅에서 우리 민족과 함께 숨 쉬었던 동방 그리스도교를 찾아 나섰다.

필자가 고대 한반도에 그리스도교가 전래됐을 것으로 추정하는 이유는 불교, 유교, 이슬람의 전래에 비해 공식 기록이 너무 늦었다는 생각 때문이다. 기원전 6세기 석가모니가 창시한 불교는 1세기 중엽 가야국에 전래됐다. 그 후 4세기 중엽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에 불교가 국가 종교로 번창하기 시작했다.

불교와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유교는 기자조선에 들어왔으며, 7세기 중엽 아라비아 반도에서 일어난 이슬람교는 8세기 말엽 통일신라의 국제무역항이었던 울산에 모습을 드러냈다. 중요한 것은 이들 종교 모두 실크로드를 통해 한반도에 들어왔다는 사실이다. 대륙 실크로드와 해상 실크로드는 기원전부터 아시아의 서쪽 끝과 동쪽 끝의 문물이 상호 교류하는 문명의 대동맥이었던 것. 한반도는 실크로드를 통해 세계와 소통했다. 그렇다면 이슬람교보다 600년 이전에 생겨난 그리스도교는 왜, 이 땅에 그토록 늦게 전래됐을까. 이에 대한 한 가닥 실마리를 저자는 ‘안디옥’에서 찾아냈다. 그래서 이 책은 동방 그리스도교의 유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조선 후기 17세기 무렵부터 중국을 통해 들어온 ‘서학’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저자는 고려와 발해, 신라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리스도교의 전래를 찾아냈다. 조선시대 성호우파를 대표하는 인물인 안정복이 1785년 지은 ‘천학문답’에는 ‘야소’의 세상구원에 대한 이야기와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 등이 기록되어 있다. 천주교가 조선에 전래되기 전부터 조선 지식인들은 서학서를 통해 야소교 신앙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그보다 앞서 1549년 일본에 전래된 그리스도교가 임진왜란을 통해 조선인을 변화시키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일본에서 그리스도교가 한창 번성할 당시 ‘십자가’ 군기를 앞세운 기리시탄 왜군들이 조선을 침공했고 이 과정에서 조선인들은 일본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일본의 대박해 속에 순교한 조선인 ‘성인’들의 기록은 이미 곳곳에 남아 있다.

이보다 더 앞서 일본 고고학 조사단이 중국 안산 일대에 있는 고분에서 흙으로 만든 십자가를 발견했다. 이 무덤은 998년에서 1006년 사이의 것으로 추청됐다. 고려 제6대 왕 목종 재위시절이다. 최 교수는 동방 그리스도교가 고려촌이 있던 만주 일대에 전파된 것으로 보았다. 이후 13세기를 전후해 동방 그리스도교는 중동에서부터 고려 국경 일대까지 동진했다.

불국사 경내에서 발견된 경교의 돌십자가. 숭실대 기독교박물관 소장.
신라시대에서도 그리스도교의 전래가 확인됐다. 신라시대 석굴암에 반영된 헬레니즘 양식을 찾을 수 있고, 불국사 경내에서 경교(네스토리안교)의 돌십자가가 발견됐다. 신라의 그리스도교 유입을 뒷받침하는 유물은 더 있다. 경주에서 발굴된 8~9세기 유물인 성모 마리아상과 남한산성에서 발굴된 8세기 유물 천주문양 대형기와가 그것이다.

최 교수는 “유물과 문헌의 부족으로 유추와 상상력에 의존할 수 없는 한계가 있지만 동방 그리스도교의 신라 유입설을 받아들인다면 불국사에 있던 승려들이 그리스도교를 차용하면서 그리스도교는 불교 속으로 들어갔다는 상상을 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불국사도 예수와 그가 남긴 그리스도교를 1300여 년 전에 이미 만나고 있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또 “고대 한반도에 들어왔던 그리스도교가 비록 교회의 성립 조건을 갖추지는 못했다 해도, 그리스도교가 이 땅에 남긴 신앙은 우리 역사 속에서 민중과 함께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우리 역사에 흐르는 그리스도교의 정신과 교훈을 전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벗 사귐은 예수를 따르는 자는 신분과 직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친구가 되는 것”이라며 “조선 그리스도교인들의 벗 사귐이 오늘날 한국 그리스도교인들의 실천덕목이 되길 소망한다”는 당부도 남겼다.

단, 최상한 교수는 “고전문헌과 자료 참고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며 그로인해 발생하는 오류도 이 책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시인했다. 하지만 “더 많은 연구자들이 이 책의 오류를 바로 잡고 한국 그리스도교의 기원을 체계적으로 복구시키길 바란다”는 말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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