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구하고 민중 일깨운 한국교회는 가장 가까운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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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구하고 민중 일깨운 한국교회는 가장 가까운 '이웃'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3.01.30 18: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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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기획 / 위기에서 희망으로, 교회가 이웃이다

개화기 한국 역사와 함께 아파하고 고뇌하며 성장해온 한국 교회. 1884년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의 입국으로 본격적인 선교가 시작된 이후 한국 교회는 민족과 함께 또 사회와 함께 영욕의 역사를 이어왔다. 가난한 자의 친구로, 아픈 이의 벗으로 살아온 130년. 그러나 그 공헌은 간 곳 없고 교회는 지금 사회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다.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등한히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교회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을까.

목원대 김흥수 교수는 “교회가 성장하고 대형화 되면서 중산층 성도들이 유입되고 그들의 신앙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기득권을 옹호하는 설교와 선교정책으로 비판을 받게 됐다”고 지적했다. 교회가 역사적으로 지켜온 약자를 위한 선교가 교회성장과 함께 희석된 것. 여기에 신학적 편협성과 문화적 폐쇄성이 사회와의 단절을 초래했고, 교회는 ‘불통’의 이미지를 갖게 됐다고 덧붙였다. ‘교회’와 그 안에 속한 ‘우리’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결과였다.

사회와의 이러한 단절은 안타깝게도 교회가 130년 동안 쌓아온 ‘이웃’의 이미지를 몽땅 허물어 버렸다. 개화기 한국사에서 민족운동으로, 또 사회운동으로 기여한 많은 일들이 그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까지 내몰린 것이다.

그러나 외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가장 가깝고, 가장 친하고, 가장 따뜻한 이웃이었다. 그것도 강자와 약자를 가리지 않고 그들의 영혼을 치유하는데 앞장 서왔다.

본지는 공공성 회복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2013년, ‘위기에서 희망으로, 교회가 이웃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교회사 속에서 나타난 이웃의 발자취를 찾아내고자 한다.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교회들이 여전히 약자의 편에서 섬기고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는 교회가 우리 민족에게, 그리고 부정의한 현실에서 고난받는 이웃들에게 어떠한 힘이 되어주는지 하나씩 찾아내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편집자 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한국교회사 100장면’을 선정했다. 교회가 사회에 기여한 사건을 중심으로 130년 교회사가 압축됐다. 1919년 이전, 1919~1945년, 그리고 해방 이후로 시기를 분류했다. 교육, 의료, 종교, 여성, 문화, 민족 등 6가지 범주로도 구분했다.

교회협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보면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의 접점이 매우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알릴 기회가 없었다”며 “지나온 역사처럼 앞으로도 한국 교회가 사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100장면에는 어떠한 모습들이 담겨 있을까. 배움의 기회조차 없던 여성들을 위해 설립한 야학, 결핵퇴치 활동과 기독교 절제운동, 그리고 농촌을 바로 세우려는 노력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처럼 한국 교회는 나라가 어려울 때 구국의 목소리를 내며 주권을 지켰고, 민중들의 부박한 삶을 걱정해 그들에게 영육의 양식을 주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교회는 절박한 부름에 신속히 응답하는 그들의 ‘이웃’이었던 것이다.

# 민족의 큰 힘 기독교
21세기 들어 기독교의 영향력이 쇠퇴된 것은 국가의 발전과 관련이 깊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고, 나라가 재정적 어려움을 겪느라 하지 못했던 책임을 교회가 감당해왔다. 교육과 의료, 복지에 기독교가 큰 족적을 남긴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지금 국가가 발전한 상황에서 복지와 교육, 문화 전 영역에 전문 시스템이 도입됐고, 교회의 역할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새로운 ‘섬김’의 출구를 찾아야할 시점이 온 것이다.

서울신대 박명수 교수는 “교회가 위기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하고 국가가 부유해지면서 교회가 했던 역할이 줄어드는 것 뿐, 교회의 그간의 공헌까지 무시되어선 안 된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박 교수는 “불교가 수천년 동안 하지 못한 것을 기독교가 해왔고, 특히 19~20세기 기독교는 마치 고려 불교나 조선 유교처럼 나라를 구하는 중대한 역할을 감당해왔다”고 말했다. 민족사적으로 교회가 해온 역할은 축소할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이라는 점이다.

특히 국권 침탈의 역사 속에서 기독교의 역할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다.

목원대 김흥수 교수는 “식민지 역사를 경험한 아시아 어느 나라에서도 한국 교회와 같이 강력하게 지배세력에 저항한 나라가 없었다”며 “교회사에 있어 항일 민족운동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기독교인의 민족의식 형성은 초기 기독교의 수용과 동시에 시작됐다. 가족 중심의 봉건 사회, 먹고 사는 것이 절박했던 당시에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기독교는 신교육방법을 동원해 새로운 인생관과 세계관을 갖게 했다. 기회균등의 원칙에 따라 남녀평등을 실천에 옮겼고, 자주ㆍ자립정신을 심어주었으며, 근대 시민의 소양을 갖추도록 교육했다. 그 결과 가족중심의 사고에 머물던 백성들은 국가와 민족을 생각할 수 있는 근대적 사고력을 갖추게 됐다. 민족의식의 확산은 학교의 설립으로 이어졌고, 언론매체를 창간으로 여론을 형성해 나갔다.

이렇게 형성된 민족의식은 항일운동으로 이어져 3.1운동에서 기독교가 지대한 역할을 감당한다. 외래종교였던 기독교가 단 시간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민족적 성향 때문이기도 했다.

성경의 출애굽 사건을 통해 민족 해방의 중요성을 피력해온 기독교는 항일운동뿐만 아니라 국가 주권 회복을 위한 ‘국채보상운동’과 ‘농촌계몽운동’ 등에 앞장 서왔다.

1945년 해방을 맞이한 후에는 건국에 앞장섰으며, 6.25가 발발한 후 국가재건에도 힘을 모았다. 이처럼 교회는 나라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이웃’을 자처했고, 핍박과 고난을 마다않고 정의를 지켜왔다.

# 고통받는 민중의 ‘이웃’으로
교회사적 측면에서 기독교의 공헌을 두 갈래로 구분한다면 하나는 민족운동이고 또 하나는 사회운동이다. 기독교는 사회 내부로 들어오면서 민중중심의 선교 전통을 마련했다. 여성과 농민,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섬겼다. 도시보다 농촌, 남성보다 여성, 한문보다 한글을 사용한 것도 이런 이유다.

기독교 역사학자들은 ‘성경반포’ 과정에서 이뤄진 ‘한글의 확산’을 기독교가 가장 큰 기여 중 하나로 꼽는다.

서울신대 박명수 교수는 “양반중심의 사회 조선에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빈부와 귀천을 가리지 않고 복음을 전했다.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 바로 한글성경이었다. 당시 불교와 유교는 여전히 식자층의 종교였다. 그러나 기독교는 한글로 성경을 번역하고 한글로 그것을 교육함으로써 민중들을 기독교 중심세력으로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초창기 쪽복음은 단순히 구어체만 사용된 것이 아니다. 지역의 방언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그만큼 민중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것을 목적에 두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그리고 한국전쟁 전후로 교회는 민족을 계몽하고 민중들의 의식을 변화시키는데 힘써왔다. 1960년대 전후 국가를 복구하고 전쟁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일에도 앞장섰다.

1970년대 한국사회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교회는 또 힘겨운 ‘외침’에 귀기울였다.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드는 젊은이들은 집단으로 공장에 취직해 저마다의 꿈을 키웠지만, 저임금과 장시가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 교회는 부당한 처우를 받는 노동자들을 위해 산업선교를 시작했고, 도시산업선교의 중심세력은 기독교 사회운동과 민중운동을 촉발시키기도 했다.

이처럼 교회는 시대별로 주어진 사명을 다해왔다. 목원대 김흥수 교수는 “70년대 산업선교와 인권운동이 주를 이뤘다면, 80년대에는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에 교회가 나섰고, 90년대 이후 NGO활동과 대북지원활동 등은 교회가 내세울만한 중대한 공헌”이라고 설명했다.

민족운동을 시작으로 시대적 예언자 역할을 감당해온 한국 교회. 국가와 사회적으로 위기 때마다 힘을 모아내고 저력을 발휘했다. 1920년대 국채보상운동은 1997년 IMF당시 ‘금모으기 운동’의 모태가 되었고, 항일 민족운동은 억압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의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교회사적 거대한 흐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도시와 농촌 등 사회 곳곳에 놓인 약자들을 위해 지역 교회들이 산발적으로 전개한 ‘사랑’이 그것이다.

나라에서 격리를 명령한 한센병 환자들을 내 몸처럼 돌본 여수 애양원, 교도소 수감자들을 인격적으로 섬긴 새길회, 간질환자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장미회, 수십년 째 이어져 오는 북한 결핵지원 사업, 농촌 부흥을 위한 ‘씨앗은행’과 가나안농군학교, 노숙인들과 장애인, 다문화 이주민과 탈북자 등 지역교회들이 하나씩 맡아온 사역들은 전부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용산 철거민 참사 현장에서 같이 눈물을 흘리고,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과 함께 촛불을 켠 이들도 교회였다.

겉옷을 달라거든 속옷까지 내어주고,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함께 걷는 것이 기독교다. 그렇게 한국 교회는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의 기치로 130년 선교역사를 이어왔다. 매일 새벽 찐빵을 쪄 나르고, 전방을 지키는 군인들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대접하고, 갑작스런 가난에 혹여 밥을 굶을까 교회 한 켠에 쌀독을 세워놓은 교회까지 이웃에게 손 내미는 교회들이 있어 ‘희망’은 남아 있다.

어려운 이웃들의 친구로 따뜻한 손을 내민 교회들의 이야기를 통해 ‘희망’을 나누고 키워나가는 2013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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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사탕 2013-02-05 15:04:41
이제는 ‘수신제가(修身齊家) 후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하라.’ 함과 같이 계시록 21, 22장의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하늘의 문화로 세계 평화·광복을 이룰 때이다. 세계평화광복이 이루어지면세계는 국경도 인종도 종교도 차별 없이 하늘의 빛과 비와 공기같이 불변의 사랑으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한다. 이러한 때 주님의 계명은 아랑곳 없고 내 교회, 내 교단하고 있으니 사회의 질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