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처럼 사는 것은 나의 신앙적 보상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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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처럼 사는 것은 나의 신앙적 보상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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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11.21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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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신학 이야기 (49)

율법은 자기 자신의 완벽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처럼 살아가면 보상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조건관계에서 오는 인간의 죄성에서 출발된 대가를 기대하는 그런 보상이 없습니다.

조건에 의한 목회는 목회가 아닙니다. 목사의 목적달성을 위한 명분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불안은 보상을 목적으로 한 결과일 뿐입니다.

목회자의 불안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목회는 상 받으려고 축복받으려고, 건강하려고, 잘되려고, 성공하려는 이방종교가 말하는 조건에 의한 열성이 아닙니다.

내가 열심히 했더니 지금같은 보상을 누리는 것이다라고 간증한다면 그 즉시 예수님께 내어 쫓김을 당할 사람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31절에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왜 신앙이 좋다고 하는 사람 또 신학적으로 전통이라고 하는 사람들 눈에 왜 지극히 작은 자가 보이지 않을까요. 목회가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지극히 작은 자. 너무 흔한 대상이요 발에 채일 정도로 깔려있는 작은 자인데 보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작은 자를 찾아 헤매는 목회자는 고통입니다. 자기집 추녀에 걸린 파랑새의 노래소리를 듣지 못하고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헤매는 자들의 삶은 어렵습니다. 아주 쉬운 일인데 왜 고통이요 고난이라고 했을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목회에 대한 큰 기대와 기적같은 역사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돈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있지만 가난으로 하시는 일도 있습니다. 똑똑한 사람을 통해서 하시기도 하지만 바보를 통해서도 하십니다.

하나님의 일 중에 세상에서 대접받는 일도 있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일도 있습니다. 목회는 많은 군중 앞에서는 신나게 할 수 있지만 사람의 숫자가 적은 데서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의지할 분이 계시면 나 자신의 계수만이 아니기에 아주 쉬운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쪽팔림’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목회자가 많은 사람에게 신뢰받고 박수갈채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주 작은 가정이나 자녀에게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불신을 받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그래도 그런 실제적이고 가장 문제의 근본임에도 불구하고 관심도 없는 것은 한국적 보이려는 시각중심의 사회 속에서 사는데 아무 부담을 느낄 수 없도록 단련된 모습입니다.

목회성공이란 가치관에 대한 문제가 목회를 더 어렵게 만드는 이유일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주님은 ‘냉수 한 그릇’입니다. 지금도 ‘소자’에게 입니다. 보상 받을 수 없는 아주 시시한 그런 사람입니다. 내 주변에 발로 채일만한 흔한 이름 모를 잡초들일 수 있습니다. 목회자들의 대상들이 명분을 내세우는 고상하고 사치스러운 사람이 아닙니다. 바로 나의 옆에 있는 사람들이 목회대상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 보면 성령의 열매 중에 중요한 사랑의 열매가 나옵니다. 사랑이란 나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게 하는 성령의 증상입니다. 거기서부터 희락과 화평이 가능케 하기 때문입니다. 탈무드에서는 충성이란 의미를 사랑, 희락, 화평과 인내, 자비, 양선과 온유, 절제, 충성으로 표현한다고 합니다.

예수로 인하여 우리 욕구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 ㅇ낳습니다.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다면 행복입니다. 그래서 ‘행복하고 싶으면 사랑하십시요’란 칼럼을 쓰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현장에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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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 2012-11-22 00:51:32
벧전1:22절에 진리를 순종함으로 우리 영혼을 깨끗케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진리의 사랑입니다. 그럼 진리가 뭔지 알아야죠. 요17:17절에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하셨으니 말씀을 알아야 성경에 근거한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목회자가 사랑이 없다면 말씀이 없는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