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495주년]종교개혁 불씨가 교회에 주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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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495주년]종교개혁 불씨가 교회에 주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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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10.23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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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훈 교수 특별기고 / (하) 종교개혁의 후예로서 변혁적 삶의 신학과 신앙 회복하자

▲ 왼쪽부터 존 위클리프, 보헤미아의 요하네스 후스. 이들은 종교개혁의 샛별들로 일컬어지고 있으며, 영국의 황실에서 활동하던 위클리프가 교황청에 던진 개혁의 폭탄은 교황청의 비성경적인 신학사상에 제동이 걸리게 되었으며, 이러한 개혁의지가 후스에게 파급되어 그가 총장으로 몸담고 있던 프라하대학교(Prague) 재직 중 위클리프의 사상을 강조함으로서 1414-1418 콘스탄쯔(Constanz) 종교회의를 통하여 이단으로 지목받아 화형으로 인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위대한 주장은 다음과 같다: “경건한 그리스도인이여! 그대는 진리를 찾아 나서고, 진리를 듣고, 진리를 배우고,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말하고, 진리를 지키고, 죽기까지 진리를 증언하시오. 왜냐하면, 진리는 그대를 죄와 사단으로부터 구원하고 영혼의 죽음과 영원한 죽음에서 해방시키기 때문입니다!”
1517년 독일 비텐베르크 수도사였던 마르틴 루터가 대학교회 정문에 95개조의 반박문을 제시하면서 불화산처럼 타오른 종교개혁(Reformation)이 올해로 495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종교개혁 당시의 정황에 대하여 Peter Gay 교수는 “나무는 잘 말라 있었고, 부싯돌도 준비되어 있었다.

다만 필요한 것은 그것을 불붙일 사람이었다”라고 잘 지적한 바처럼, 종교개혁의 불씨를 마르틴 루터에게서 찾기 보다는 중세 당시 파두아의 마르실리우스(Marsilius of Padua, 1275~1342), 잔두노의 존(John of Janduno, 1285~1323), 영국의 샛별로 불리웠던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1384)와 보헤미아의 요하네스 후스(Johannes Hus, 1369~1415)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 윤종훈 교수(총신대, 교회사)
마르틴 루터가 활동하던 당시 종교개혁의 분위기는 이미 술렁거리고 있었고 개혁을 위한 준비는 이미 완료가 되어 개혁의 점화단계로 진전된 상태였다. 이처럼 중세 로마 가톨릭의 비신학적, 비신앙적 그리고 비성경적인 신학사상과 예전, 의식 중심의 형식에 찬 예배 형태는 마르틴 루터의 개혁의 성냥불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러한 종교개혁은 시대의 요청에 따라 16세기 신성로마제국에서 일어나 이탈리아 반도 이외의 전 유럽에 퍼지게 되었고, 쯔빙글리(W. Zwingli)와 칼빈(John Calvin)으로 이어진 개혁의 흐름은 영국 청교도운동(Puritanism)을 위시한 영국혁명(English Revolution)의 근원적 배경을 마련하게 되었고, 유럽의 정통주의(Orthodoxy Theology)와 경건주의(Pietism), 개혁주의 신학(Reformed Theology)을 위시하여 18세기 부흥운동(Revival Movement)과 19세기 성결운동(Holiness Movement), 그리고 20세기의 복음주의(Evangelicalism)운동의 초석이 되었다.

앞으로 5년이 경과하면 전 세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1517년 종교개혁은 중세 천년의 로마 가톨릭의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신학대전』(Summa Theologicae, 1273)으로 완성된 중세 스콜라주의(Scholasticism) 철학을 신학과 교회에 접목시킨 인본주의적 신학발상과 이에 근거한 형식적인 예배형태에 대한 전면적 도전이자 개혁운동이었다. 종교개혁은 무엇보다도 자국어가 아닌 라틴어로 집전된 예배 즉 예전 중심적 예배에 대한 반동운동이었다.

예배를 집례하는 대부분의 신부들은 예배 시 라틴어의 원문 의미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독법(Reading)에 근거하여 읽었으며, 자국어가 아닌 라틴어 예배에 참여한 신도들은 설교 시간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멘으로 일관하는 소위 “형식에 찬 예배”였다. 청교도 신학자이자 황태자로 불리우는 존 오웬(John Owen)의 말을 빌리자면, “이들의 예배는 성령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과 이끄심, 그리고 임재하심이 상실된, 그야말로 교황청 뒷간 거름더미에서 주워온 성령부재의 예배이자, 사람들만 덩그러니 운집해있는 무의미한 예배“에 불과했던 것이다. 중세의 예배는 성령이 배제되고 떠난 성령 상실 공동체 형태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종교개혁자들은 로마 가톨릭의 교황중심의 계급체제적 교회정치 형태를 전면적으로 거부하였다. 교황을 중심으로 추기경, 대주교, 주교 등은 전 유럽을 움직이는 열쇠였으며, 특히 교황은 하늘의 권세와 땅의 권세를 한 손에 거머쥔 하나님의 ‘전권대언자’였다. 교황은 전혀 오류가 없는 자이며 죄가 없는 자로 군림하였기 때문에, 당시 전 유럽의 국왕들도 교황의 권세 앞에 철저하게 굴복해야 만 하였다. 제 아무리 권세 있는 국왕일지라도 교황의 파문선언에 족쇄가 채워지게 되었다.

이러한 대표적인 일례로, 그레고리우스 7세(Gregorius VII)로 불리우는 힐데브란트(Hildebrand)와 당시 신성로마 제국 황제였던 하인리히 4세(Heinrich IV) 사이에 펼쳐졌던 교권과 속권 논쟁에서 실패한 하인리히 4세는 카놋사의 굴욕(Humiliation at Canossa)을 뼈에 사무칠 정도로 겪어야만 하였다. 당시 그레고리 7세는 “하나님께서 하늘에 두 빛 즉, 해와 달을 달아두심으로써 만물을 비치게 하는 것처럼, 땅에는 두 큰 세력을 세우심으로 만민을 다스려 잘못된 길로 가지 않게 하신다. 이 두 세력은 교황과 국왕이다. 교황은 큰 빛 해이고, 국왕은 작은 빛 달이다” 라고 주장함으로써, 서임권논쟁(Investiturstreit)의 한복판에 교황 제일주의가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종교개혁운동은 성상 및 화상 숭배에 대한 전면적 도전이자, 성인 숭배 및 유물 유적을 숭배하는 의식에 대한 거부 운동이었다. 중세 가톨릭은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성인들 성상 및 성화를 통하여 이들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섬기도록 종용하였다. 예수뿐만 아니라 성인으로 인봉한 자들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신다고 가르친 것이다. 루터 자신도 종교개혁자가 되기 전 친구와 함께 고향 집에 방문했다가 벼락을 맞아 옆 동료가 죽어갈 때, 그는 그 자리에 엎드려 기도하길, “성, 안나시여! 나를 도우소서! 수도사가 되겠나이다!”(St. Anne, help me. I will become a monk !) 라고 기도할 정도였다.

종교개혁 운동은 당시 교황을 위시하여 각국의 추기경, 대주교, 주교 등 고위 성직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성직자들의 성적 타락의 현장에 대한 철저한 비판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고위층 신부들이 여러 여자를 두고 사는 것도 문제였지만, 자꾸 사생아들이 줄줄이 나와서 사회악으로 활동하는 것이 더욱 큰 해결과제였다. 당시 농민들 가운데 즐겨 부르던 노래는 “한번 인생을 즐기려는 자, 일년 내내 단 꿈을 꾸려는 자, 이 인생을 행락하며 보내려는 자는 다름 아닌 수도사 신부가 된다.”라는 내용을 담은 민요였다. 이처럼 당대 성직자는 모든 권세를 누릴 수 있는 신분이었고, 성적으로 문란한 시대였다.

종교개혁운동이 발발하게 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다름 아닌 성직매매와 면죄부 판매였다. 당시 중세는 정교일치 국가(State-church)이기 때문에, 국가와 교회가 하나였다. 결국 모든 신부는 국가공무원으로서 평생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었다. 이 보다 더 좋은 직업이 어디 있었겠는가! 따라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신학적 지식과 소양 훈련을 받지 않고 돈으로 매수하여 성직자가 되었으며, 성직자가 되기 위해 투자한 돈은 성도들을 갈취하여 이를 충당하고자 혈안이 되었다. 특히 몫이 좋은 성당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금액을 치러야만 하였다. 면죄부는 전 유럽의 16세기 초기 당대에만 국한된 사업이 아니었다. 중세 초기 당시에도 여러 교황들이 교황청 확장과 재정마련을 위해 면죄부를 흔하게 발행하였으며 이를 통해 성당을 건축하고 교황청을 운영하는데 활용하였다.

그럼 이러한 종교개혁의 불씨가 오늘날 한국교회에 주는 역사적 의미와 메시지는 무엇일까? 기독교 공동체는 초대교회 공동체의 신학과 신앙적 유산을 통하여 중세의 흑암의 역사의 긴 터널을 뚫고 종교개혁이라는 신학혁명을 통하여 초대교회 신학과 신앙을 회복하게 되었고, 루터와 칼빈 그리고 쯔빙글리 등 개혁사상가들을 통해 신학과 교회의 정체성을 재확립하게 되었으며, 오늘날 개혁주의 와 복음주의 신학을 낳게 되었다. 이처럼 거대한 신학적 물줄기는 부흥운동과 복음운동을 산출하였고 그 유산이 한국에 전달되었다.

특히 한국은 하나님의 특별 섭리 가운데 언더우드(H.G. Underwood)와 아펜젤러(H.G. Appenzeller), 마펫(S.A. Moffet), 레이놀즈(W.D. Reynolds) 등과 같은 뛰어난 선교사들이 파송되어 가장 성경적인 복음이 이 땅위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러한 초대교회 공동체 신앙의 선배들은 일제 지배 속에서도 목숨을 걸고 우리 민족의 주체성과 독립심을 고취시켰으며 대사회적 책임을 성실히 감당하였다.

일제의 총칼 앞에서도 신앙의 지조와 절개를 지키기 위해 순교를 각오하고 종말론적인 신앙관을 고수하면서 사회적 지도자로서의 삶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8.15. 해방 후 한국교회는 전 세계의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부흥과 성장을 이룩하였으며, 전 세계에서 미국(연합국가)을 제외한 단일국가로서는 선교사를 가장 많이 파송하는 국가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제2의 예루살렘 성지’로 칭송받았던 한국교회의 작금의 현실은 너무 참담하고 암울한 지경에 놓여있다. 각 교단의 교회들이 사분오열되어 우후죽순처럼 난립하고 있으며, 교회의 대사회적 책임을 감당하기는 커녕 오히려 사회적 문제의 핵심으로 대두되고 있다.

급기야는 안티기독교 단체들로부터 개독교(!)라는 명칭을 받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국민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커녕 냉대와 질시, 모멸 그리고 배척을 받는 공동체로 전락되었다. 세상 사회와 문화를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변혁(Transform) 시켜가야 할 시대적 사명을 부여받은 기독교 공동체는 오히려 세상인들의 염려와 우려 그리고 위로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여기저기에서 ‘오직 개혁! 변화! 회복! 혁신!’이라는 목소리를 높이지만, 한국교회는 더욱 더 죄악을 삼키며 죄를 즐기며 더불어 누리며 살고 있는 실정에 처해있고, 대사회적 책임을 감당하여 맺어질 열매는 말라비틀어진 쭉정이에 불과한 모습으로 땅에 내뒹굴고 있다. 1517년을 통하여 전수되었던 종교개혁의 아름다운 유산들(Heritages)은 산모가 태중에 있는 아이를 10달 동안 잘 키우지 못하여 유산하듯이, 처절하게 유산(Abortions)되어 버리게 되었다.

중세 1000년의 역사에 대한 반기를 들었던 종교개혁의 후예들로 자리매김한 오늘날 한국교회의 실상은 오만과 무지에 찬 모습으로 중세 로마 가톨릭의 달콤했던 죄악상을 간접적으로 연모하는 듯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작금의 한국교회의 교계 지도자들은 영안을 상실하여 중세 성직매매와 면죄부를 대신할 새로운 제도를 꿈꾸고 있으며, 온갖 세속적 권세와 영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세상 정치인들조차도 꺼리는 ‘물량공세’와 ‘봉투의 신’을 섬기고 있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자신들의 배를 가득 채워가는 웃지 못할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는 마치 1572년 성 바돌로매 대축일을 기점으로 프랑스 위그노들(Hugenots)을 대량학살(St. the Bartholomew Massacre)하고, 이 사건을 기념하여 모든 가톨릭교회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Te Deum Laudamus)이라는 성가를 부르도록 지시한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Gregorious XIII)의 처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비추어지고 있다.

개교회주의 일변도와 교인 숫자 늘리기식의 양적 부흥을 추구하고 있는 한국교회는 하나됨의 정체성을 상실하였으며,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과 살이 이리저리 찢겨 주님의 몸된 교회 속에서 진정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형체를 분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장로교 교단만 해도 100여개 이상으로 분열되어 난립하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교계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교회 통합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교회의 하나 됨을 선언하였던 한기총의 추악함은 이미 불신자들의 인구에 회자할 정도가 되었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2012년 9월 25일 감리교 교단에서 ‘세습금지법’을 통과시킴으로서 타 교단에 모범을 보였다는 점이다. 물론 개교회 담임목사 아들이기 때문에 후임 후보자로 지원할 수 없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도 있지만, 현재 교계에서는 객관적이고도 공정한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국회 날치기 법안 통과식(!)으로 우격다짐으로 공동의회를 개최하여 통과시키는 행태는 중세 교황청에서 목회지를 돈을 받고 팔았던 성직매매와 별반 다를 바 없는 한국교회의 치욕이자 죄악된 행위인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 장로교 장자교단이라고 일컫는 대표적인 대형교회에서 비일비재하게 치욕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한국교계의 도덕성과 영성을 책임져야할 한기총의 수뇌부들이 몸담고 있는 교회 속에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중세 가톨릭 신학과 교회정치 형태 그리고 비신앙적 행위에 대하여 날카롭게 비판해왔던 현대 개신교 교회들이 중세 카톨릭교회보다 더 악한 일들을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는 한국 교계의 실상을 바라보면서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에는 짤막한 한국 기독교 역사에 비하여 너무 빨리 쇠하여 버렸고 방향성을 상실해 버렸다. 성령의 기름부으심과 능력이 상실된 형식에 찬 매마른 예배! 청교도 거성 존 오웬(John Owen)이 지적한 바처럼, “성령은 떠나고 인간들의 썩은 육체만 덩그러니 예배장소에 집결하여 육적 욕심과 세속적 열정이 가득 찬 예배형태”와 별반 다를 바 없다.

게다가 젊은이들의 목마른 감성에만 호소하는 C.C.M. 찬양 집회! 인간의 죄성과 종말론에 대한 외침이 생략된 달콤하고 감미로운 서술적인 강단의 노래로 흘러나오는 강단설교! 이제 막 시작한 조그만한 개척교회를 문닫게 만드는 대형교회들의 문어발식 지교회 확장정책! 버스를 동원하여 전국의 교인들을 실어나르는 대형교회의 횡포! 교회 정치의 핵심인 노회 정치 속에서 문제있는 목회자 봐주기식의 이미 준비된 회의 진행 및 결의 통과! 교계의 정치목사로 전락하여 하나님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정치꾼 목사들의 행태! 교회 예산을 떡주무르듯하며 교계 수장(!)이 되기 위해 코흘리개 어린 아이들의 정성어린 헌금마저 악의 도구로 서슴없이 사용하는 교계 목회자들! 상습적으로 목사 내쫓기를 반복하는 소형교회 터주대감 장로들의 고질병! 교회 내에서 성추행 및 성폭행을 자행하고도 버젓이 자리를 옮겨 교회를 세우고 목회를 시도하고 있는 현대 교회 목회자들의 작태! 그리고 이들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며 동조하여 이들을 부추기며 앞장서는 상식을 초월한 젊은 사역자들과 개념이 상실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청년들! 가장 거룩하고 성숙해야할 성총회 석상에 총기를 소지하고 총기를 꺼내어 시위하는 살벌한 현장들….

이러한 일련의 슬픈 현실은 오늘날 한국교회의 목회자들과 신자들의 현주소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현대 교계의 자화상이 되어 버렸다. 여기저기에서 종교개혁의 의미를 기리며 다양한 종교행사가 진행되고 대형집회가 기획되고 있으며, 오직 개혁(reform)! 개혁주의(Reformed Theology)!를 외치며 부르짖고 있지만, 정작 기독교 공동체 안과 밖에 있는 사람들은 이들의 외침에 전혀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자는 이러한 행사를 주관하고 진행하며 목놓아 부르짖으며 외치는 이들이 오히려 개혁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해가 5년 앞으로 훌쩍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종교개혁의 불씨를 모으고 지폈던 위클리프, 후스, 그리고 루터와 칼빈, 쯔빙글리, 부쩌의 두 빰을 타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은 한국교회를 향한 염려와 걱정 그리고 진리의 수호자로서 목숨을 담보로 불의와 싸워왔던 분노에 찬 모습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들의 눈물이 보이지 않는가! 그대는 느끼지 못하는가 이들의 외침의 메아리를! 도대체 한국교회는 이런 상태로 몇 년을 더 버티다가 현대 유럽의 문화기독교 공동체의 모습으로 전락되어질까?

이 시점에 종교개혁의 후예이자 삶의 신학과 신앙을 주창하였던 존 오웬의 음성은 한국교회의 영적 현주소와 정체성을 밝혀주는데 매우 의미 있을 것으로 사료되는 바이다: 오늘날 사탄은 교회 지도자들을 필두로 부패한 본성을 가슴 한복판에 심어 놓았고, 이 부패한 본성의 잔재가 영적인 시야를 흐리게 하여 합당치 못한 정서와 육신적 감각으로 일관되게 하였고, 영적 무질서와 제어되지 않는 정욕이 득세하게 함으로서 찬란한 그리스도의 빛(요 1: 9, 참 빛)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정말로 많은 이들이 자신을 속이고 있습니다. 들려지는 말씀에 대해 단순히 지적하는 것으로만 인정하고 찬동할 뿐, 정작 그들의 양심은 그 진리의 세력 안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진리들을 통하여 자신들의 영적인 실상과 조건을 돌아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생명과 평안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믿고 있다고 느낄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단 한 음절의 말씀도 믿질 않습니다. 만약 그들이 말씀의 진리를 진정으로 믿는다면, 그 진리에 비추어 자신들을 돌아보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정말 믿는 자라면 마지막 날에 그 진리가 자기들에게 어떻게 작용하며 찾아올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약 1: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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