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과 함께하는 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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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과 함께하는 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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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9.21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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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신학 이야기 (41)

예수님이 보이신 삶이 우리의 모본이 되었다. 누가복음 2장 49절에서 “내가 아버지의 일에 관계하여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했다.

어린 예수, 열 두살의 예수는 벌써 하나님의 소명을 알고 있었고 그는 사도들을 모으고 설교하고 기적을 베푸시고 예수는 고향의 자기 사람들에게 내려가 삶을 배우기도 했다.

섬긴다는 의미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결국 목회자로 부름을 받았다면 제사장으로 엄포나 놓고 소리나 지르고 자만하여 세상 사람과 구별된 지배자로, 해결사로, 심판자인가? 분명히 아니다.

예수님이 하신대로 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집으로 가서 가족들을 사랑하여 본업에 충실한 것이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5장 8절에서는 “네 친족 특히 가족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했다.

목회는 가정과 함께하는 것이다. 골로새서 3장 23절에서“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 듯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했다.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지만 우리의 대상이 하나님의 중요한 선별된 사람들로 내가 마음대로 내버려두고 무시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 모두가 예수님의 얼굴이 될 수 있다. “가장 작은 소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라고 하신 이유가 바로 그런 삶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똑똑한 사람들이 내놓은 금언이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고 했다.

그 귀중한 전문직으로 부름 받은 사람들이 입 밖에 습관과 버릇처럼 남을 비하시키는데 능숙한 것같이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인데 그 일에 가장 숙달되고 능숙한 사람이 목회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욕하고 싸워도 뒤돌아서면 다 미움이 사라지는 이유는 술이란 매개체가 감정을 지워버리게 하는 것이다.

성령 받은 사람들에게 그 당시 세상 사람들이 술취했다고 했는데 성령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라고 자랑하는 사람이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가 술기운이 빠진 세상 사람들의 말대로 악령을 받은 사람이 틀림없는 일이다.

왜 복음주의요 개혁주의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유대인같이 자기의 경계를 지키려고 하는가? 분명히 복음이 세마가 된 이유일 것이다. 자기 자신의 신앙에 집착되어 있는 자일수록 내 코앞에 있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 분별력을 상실했을지 모른다.

예수님처럼 하는 목회는 무엇인가? 진실이다. 다시 말해서 “무엇을 하려고 애씀이 아니라 현장에 머무르는 것”이 진실 일 수 있으며 그 일이 참된 목회요,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다.

목회자는 예수님이 언제나 내가 멈추어 있는 현장에 함께 계신 것이다. 사도행전 1장에 하늘로 오르시면서 가장 마지막의 말씀이다. “너희는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증인은 진실이다. 예수님은 진실 그 자체다. 진실은 설명이 아니라 그대로다.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장이다. 미래에 의한 반응이 아니라 과거나 미래의 것도 아닌 현재 상황이다.

그 분은 정직했다. 그분의 말은 모두 정확했다. 그 분의 기록은 모두 사실이었다. 부정적 행위가 없었다. 과장이나 축소가 없었다. 위선이나 위장이 없었다. 그럴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로마서 8장 28절에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 분의 맘대로 불러낸 사람들은 모든 일 즉 뒤집어지는 일이라도 거꾸로 매달려 모두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라고 기록돼 있다.

어떤 상황이든 내게 해로움이 오는 것 같을지라도 결과는 선한 일이요, 즉 진실 그 자체다.

그러기에 우리가 형편에 따라 뒤집어지는 간절함을 다해도 그 분은 더 이상 그 몸부림에 대한 특별보상이 아닌 매우 정상적인 일일 뿐이다. 그래서 진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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