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성호칼럼] 이게 다 붉은악마 탓이다?
상태바
[옥성호칼럼] 이게 다 붉은악마 탓이다?
  • 옥성호
  • 승인 2012.08.23 11: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옥성호의 기독교 문화를 깨운다 (8)

요즘 런던올림픽을 보고 있노라니, 2010 남아공월드컵 때가 생각이 난다. 한국이 우루과이에 진 후 어느 교회 게시판에 누군가가 글을 올렸다. 그는 한국이 패배한 이유를 나름 소상하게 분석했는데, 그이가 파악한 한국의 패배 원인은 다름 아닌 ‘붉은악마’의 응원에 있었다. 즉, ‘악마’라는 하나님의 원수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응원하니 어떻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겠냐는 요지의 글이었다. 하도 황당해 처음에는 ‘유머’를 목적으로 쓴 글인가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 응원팀을 ‘하얀천사’ 또는 ‘가브리엘’…… 뭐 이런 거로 바꾸면 우리는 향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브라질 다 꺾고 매번 우승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영역에 하나님을 끌어다 붙이는 이런 식의 사고는 결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태도가 전혀 아니다. 도리어 하나님을 일반 상식의 수준보다도 한참 아래로 끌어내려 모욕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공부는 내팽개치고 기도만 하는 학생에게 백점을 주시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존재로 만드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많은 크리스천이 갖고 있는 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하나님을 교회 속의 하나님, 사소한 하나님, 나아가 이상한 하나님으로 만들 뿐이다.

나는 2010 남아공월드컵을 보면서 항상 느끼던 한 가지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스포츠는 너무도 잔인하다는 사실 말이다. 특히 올림픽과 월드컵처럼 4년에 한 번 열리는 경기는 선수들에게 너무도 잔인한 것 같다.

언젠가 김연아의 연기를 보면서 정말로 수년간의 준비가 단 한 번의 예상치 못한 엉덩방아로 허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오싹하기까지 했다. 스포츠의 이런 특징들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운동선수들 중에는 독실한 신자들이 많다. 자신의 노력과 자신의 재능이 결과를 100퍼센트 보장하지 않음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 말이다.

2010 남아공월드컵 월드컵에서 나는 이동국 선수를 보며 누구보다 가슴이 아팠다(대한민국 월드컵 출전 사상 원정 첫 16강 진출 문턱에서 만난 우루과이 전에서 2:1로 패색이 짙던 후반 41분, 이동국은 일대일 결정적인 동점골 찬스에서 아쉽게 골을 넣지 못했다). 그에게 정말로 위로를 보내고 싶었다. 잘은 모르지만 스포츠가 주는 영광은 잠깐일 것이다. 그에 비해 주변을 살펴볼 때 승부의 세계가 주는 잔인함은 그 영광과 비교도 할 수 없게 더 길고 질기게 느껴진다. 마치 우리 인생처럼 말이다. 스포츠의 잔인함 속에서도 중심을 잡고 꿋꿋이 살아가는 모든 선수들에게 격려를 보내고 싶다. 비록 당장은 스포츠가 전부인 것 같지만 그게 인생의 다는 아님을 알고 그들이 패배의 아픔마저도 넉넉히 이기는 여유를 가져주었으면 한다.

이동국 선수가 경기 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골키퍼와 일대일로 마주치는 그 순간을 자신은 수도 없이 상상하고 또 상상했다고…….

나는 그 기사를 읽으면서 묻고 싶었다. 그놈의 ‘상상의 힘’ 또는 ‘말의 힘’을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뭐든지 간절하게 원하면 다 된다는 자기도 믿지 않는 소리를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당장 뛰어가서 묻고 싶었다. 왜 이동국의 12년간의 상상은 그 순간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않았냐고. 그 순간만큼은 나도 그들이 맞기를 간절히 바랐으니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