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성호칼럼] 나 자신의 ‘굶주림’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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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성호칼럼] 나 자신의 ‘굶주림’을 알라
  • 옥성호
  • 승인 2012.08.23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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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성호의 기독교 문화를 깨운다(4)

‘나는 누구인가?’의 본질을 규명하도록 하는 단서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나는 무엇에 굶주려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 말을 개혁주의 신학자 존 파이퍼 목사의 시각으로 보면 ‘나는 무엇에 기뻐하는가?’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이 질문은 기독교에서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우리 교회는 지금 무엇에 굶주려 있는가?’

몇 해 전 내가 다니던 시카고의 한 교회에서 당회와 성도 대다수 사이에 분란이 일어났다. 6개월 정도 진행된 그 분란은 당회를 따르던 교인들이 근처 다른 교회에서 따로 예배를 드리며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두 곳에서 같은 교회 이름을 쓰고 또 재산권과 관련해서도 마무리가 안 되었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였다.

한국에서도 빈번히 일어나겠지만, 특히 미국 한인 교회 안에서 더 많이 벌어지는 교회 내분 사태를 들여다보며 나는 앞서 한 질문을 다시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한인 교회를 다니는 사람 대다수는 과연 무엇에 가장 굶주려 있는가?’

그 답은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다.

‘교회 안에서의 자기 영향력에 무엇보다 굶주려 있다!’

일주일 내내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끼친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는 사회적 위치……. 그런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한인에게 교회는 자신의 가치를 느끼게 하는 공간이다. 잘 통하지 않는 영어 때문에 제대로 말싸움 한번 못 하는 설움을 떨쳐내고 마구 떠들 수 있는 고향과도 같은 곳이 바로 교회다.

한인 교회 안에서 개인의 가치는 무엇보다 교회 직책과 담임목사와의 친밀도로 측정된다. 바로 이것이 수많은 한인 교회가 안고 있는 분란의 잠재적인 불씨다. 원하는 직책을 빨리 얻지 못했을 때의 좌절감과 원하는 만큼의 관심을 베풀지 않는 목회자가 주는 서운함은 언제라도 교회라는 공동체를 향해 무서운 가시로 돌변할 소지가 있으니까.

굶주림의 대상이 잘못되었다는 것! 하나님을 봐야 할 곳에서 도리어 자기 욕망을 채우려고 교회를 갈뿐더러 그 욕망 충족을 위해 교회가 운영된다는 것! 이런 점에서 나 역시 나 자신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과연 무엇에 굶주려 있는가?

“나는 하나님에 굶주려 있는가?”

솔직히 별로 그런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다시 물어본다.

“하나님에 굶주려 있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가?”

아니,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안에 하나님을 향한 핍절의 굶주림이 없다는 사실은 아직도 내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죄책감을 느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기대를 버리지 않고 더 간절히 은혜를 사모하는 계기, 영적 찬스다.

내 안에 하나님을 향한 굶주림이 없다는 사실, 이를 제대로 보는 데서부터 나의 본질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한마디로 빛이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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