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처럼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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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처럼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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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8.14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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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신학 이야기(37)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가? 에스겔서 37장 1절에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하시고 그 신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라고 기록돼 있다.

개혁성경에서는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로 나온다. 우리가 잘 사용하는 임재란 우리 어깨위에 보이지 않는 그 손과 내 귓전에 맴도는 그 분의 들리지 않는 음성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편 기자는 하루를 이렇게 시작했다. 시편 5편 3절에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라고 기록돼 있다. 말없이 바라는 중에 하나님을 생각케 하는 것이다. 시편 46편 10절에도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라고 말했다.

테레사 수녀는 하나님의 임재의 삶에 대하여 먼저 “듣지요”라고 말했다. 그럼 뭐라고 말씀하십니까라는 질문에 테레사 수녀는 미소로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그 분도 들으신답니다”

로바크라는 분은 하나님께 여쭙는 방식으로 그 분과의 끊임없는 교제를 추구한다고 했다. 그리고 “주님 제가 지금 주님 뜻 가운데 있습니까? 주님 제가 지금 주님을 기쁘게 하고 있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처럼’ 산다는 것은 모방이 아니라 그 분의 마음속에 그리고 그 분이 내 맘 속에 계시다는 삶 그 자체다. 매순간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시간으로 여기는 것이다. 목회란 그런 것이 아닌가? 이런 이야기를 한 사람이 있다.

“우리는 신호등 앞에서 6개월, 광고우편물 뜯는데 8개월, 잃어버린 물건을 찾느라고 1년 반, 줄서서 기다리는데 5년을 보내게 된다. 그 모든 순간들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겠는가.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님이 시간도 다스려 주옵소서. 예수님, 주님은 나의 쉴 곳이 되십니다.”

‘처럼’ 삶이란 너무나 단순한 삶이다. 주님의 요구하심도 아주 쉬운 일들이다. 구태여 주님과 만남을 위해 특별한 시간이나 장소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면 그 뚫어진 구멍을 메우려고 온갖 방법을 사용하려고 한다. 그 이유가 “잘 해보려고”라는 주제가 정확하다.

그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생각해 보라. 기도원에 가서 해결을 봤다고 하면 그 해결이 무엇인가.
그래서 사람들은 목적보다 방법이 더 호화스럽다. 그런 일의 반복이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한다. 한 예로 건강을 위해서 많은 기구를 사용한다. 헬스클럽에 가서 온갖 기구를 사용하고 비싼 돈으로 온갖 기구를 사놓고 쓰지 않는 도구가 얼마나 많은가?

교회에서의 신앙생활을 위해 만들어놓은 프로그램에 눌려서 질식하게 하는 것도 아는가? 그럼 운동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쉽게 죽는다는 것도 아는가? 인간이 만든 격식이 이단으로 둔갑하는 것도 아는가 말이다.

‘처럼’ 사는 것은 방법과 장소나 프로그램이 아니다. 있는 그 자리가 현장이다. 모든 문제가 두고 생각해보는데서 발생하는 것이다. 즉시 손을 빈 사람에게는 짓눌릴만한 먼지나 찌꺼기는 없다.

분리수거란 즉시즉시 구분하면 힘들이지 않고 쉽게 한다. 농사를 짓는 사람도 때에 맞추어 파종하면 모든 것이 매끄럽게 성사된다.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처럼’ 삶이란 무릎을 꿇을 이유도 합심할 이유도 어디에 갈 필요가 없다. 있는 그 곳에서 기도하면 된다. 부엌이든, 교회당이든, 버스 안이든, 교실이든, 기도실이 될 수 있다.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주님이 계신 곳이 그 어디나 천국입니다”

시편 121편 4절을 보자. “이스라엘을 지키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우리를 억누르는 참소의 내용에서 해방시키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에 우리는 그 분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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