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태화칼럼] 올림픽, 기독교 이미지로 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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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태화칼럼] 올림픽, 기독교 이미지로 즐기다
  • 추태화
  • 승인 2012.08.11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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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태화 교수의 종횡무진 문화읽기1

2012 런던 올림픽이 뜨겁다. 기온이 섭씨 35도 이상으로 치솟고, 물가도 치솟고, 정계의 스트레스 지수도 치솟고, 그래서 짜증지수도 치솟고... 뭐 이번 여름에 재미있는 일이 별로 없던 차에, (말씀은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시는데....) 올림픽이 참 위로가 되었다.

우리나라 선수들 뿐 아니라, 외국 선수들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간간이 들려오는데, 그것은 오, 이 땅에 우리를 살게하신 주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감사의 조건들을 새삼 깨닫게 해주시는 기회였다. 그래서 올림픽 중계를 보는 우리 크리스찬의 내면 속에서는 감사, 찬양이 흘러나오게 되지 않을 수 없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시 150: 6)

그런데 경기를 자세히 관찰하다 보면, 그 안에 성경적인 이미지들이 스며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 또한 경기를 흥미있게 보는 관점이 된다. 몇 가지 성경적 이미지들을 찾아보자.

첫째, “달음질”(run)이다. 육상 트랙을 달리는 경기, 100 미터 단거리, 5천 미터 중거리, 그리고 마라톤. 달리고 달리는 달음질이 올림픽에서 이어진다. 바울 사도께서 특히 이 그림을 좋아하셨다. 예들 들면,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 9: 24). 달음질은 인생에도 비유되고 있다.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빌 2: 26).

둘째, 경주이다. 달음질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경주(race)가 구체화된다.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히 12:1). 그렇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경주를 마쳐야 한다. 우리 신앙인들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다르는 경주를 해야한다. 이것이 즐겁고 행복한 인생이다.

셋째, 싸움(good fight)의 이미지이다. 무턱대고 싸우거나, 다짜고짜 다투는 그런 싸움이 아니라, 말씀에 근거한 선한 싸움이다. 모든 경기는 한판 싸움이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딤전 6: 12).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한판 선한 싸움이다. 남을 굴복시키고 벗겨먹으려는 이기적인 투쟁이 아니라, 주의 사랑과 공의를 나누는 선한 싸움이다.

넷째, 권투에 이런 이미지가 숨어있다.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고전 9: 26). 권투 선수들이 엉뚱한 데를 치거나, 효과타를 얻지 못하면 경기는 패할 수 밖에 없다. 인생들이여, 제발 허공을 치지 마십시다. 유효타를 치십시다.

다섯째, 양궁 또한 기막힌 이미지를 보여준다. 죄는 말씀의 과녁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딤전 1: 6). 양궁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 조리면서 우리가 말씀의 과녁에서 벗어나서는 안되겠다는 긴장감을 갖게 된다. 공연한 감정일까.

올림픽 경기는 인생의 메타포이자 그대로 현실이다. 그 안에 숨겨진 성경적 이미지, 신앙 생활의 은유들을 찾아보면 놀라운 은혜를 깨닫게 된다. 자, 올림픽에 숨겨진 영적 그림들을 찾으며 영적 성숙도 함께 얻어보면 어떨까?! 주일학교에서 활용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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