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릴 수 있는 것을 포기하는 삶 “불편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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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릴 수 있는 것을 포기하는 삶 “불편해도 괜찮아!”
  • 최창민 기자
  • 승인 2012.08.09 1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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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기획 / 무너진 한국교회, 다시 세우자 - ⑨ 자발적 불편운동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서 자발적 불편을 시작하자”
전기 사용 줄이기, 전월세 안올리기, 보험금 과다청구 않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반찬 남기지 않기 등 생활 전반에서 아이디어 줄이어

“교회 갈 때 자전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어떨까요? 무거운 성경책 들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란 쉽지 않지만, 서울시에 거주하는 그리스도인들만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에너지 절감과 환경에 기여할 수 있는 착한 불편이 될 것 같아요.” (오○○ 회원)

“식사할 때 생각해볼 수 있는 자발적 불편! 반찬은 적정량만큼 먹고, 식당에서 추가로 반찬을 요구해서 남기는 일이 없도록 하고, 맛있는 음식은 이웃집과 나눠 먹는 용기(?)를 발휘하면 좋겠습니다.” (김○○ 회원)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불편하게 살아보자”는 자발적 불편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7월부터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이 진행하고 있는 자발적 불편운동은 낭비와 무절제한 삶으로 인해 발생하는 현대 사회의 수많은 문제들을 자발적인 불편을 통해 해결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서구식 물질문명이 가져다 준 ‘풍요’를 스스로 버리고 기독교인부터 ‘빈곤’한 삶을 선택하자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의 자발적 불편운동은 이미 기윤실이 출발한 1987년부터 진행되었던 ‘작은 차 타기 운동’에서 시작됐다. 기윤실은 지금까지 장바구니 사용하기, 휴대용 컵 가지고 다니기, 전월세 올리지 않기 등을 통해 기독교인들의 절제운동을 호소해왔다. 최근 벌이고 있는 ‘자발적 불편운동’도 절제운동의 일환이다. “기독교인이 먼저 손해 보고 불편해지자”는 것이다.

# 낭비의 시대, 넘어야할 과제
아무리 경제 위기라고 해도 백화점 명품코너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대형마트 쇼핑카트는 물건이 한가득 담겨 있다. 십수년만에 찾아온 최악의 폭염에도 상점은 에어컨 바람으로 시원하다. 지난해에는 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력이 소비를 따라가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상점 문을 활짝 열고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호객행위를 하는 가게들이 있다. 보다 못한 국회는 올해 7월부터 이런 상점에 최대 3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법까지 만들었다. 그야말로 누릴 것을 다 누리고 풍족하게 사는 시대다.

이런 가운데 기윤실 정직윤리운동본부장 신동식 목사(빛과소금교회)는 지난 7월 초에 ‘자발적 불편운동을 시작합시다’라는 제목의 편지를 통해 기독교인들의 자발적 불편운동을 제안했다. 기독교인이 먼저 나서서 불편한 생활을 통해 전 지구적 위기에서 탈출하자는 것이다. 갑작스럽게 무슨 호들갑이냐고 볼멘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신 목사의 호소는 절절하고 설득력이 있다.

“서구 자본주의는 새로운 세상을 열고 영원히 호령할 것 같았지만 지금은 그 소리가 기어들어가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는 이미 그 생명을 다한 것 같다. 이미 다보스포럼에서 자본주의는 죽었다는 말이 현실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다.”

미국에 이은 유럽발 금융위기. 세계적인 경제 위기는 만성화되어버린 듯하다. 제2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은 물론 한국 등 아시아 국가도 세계적인 위기 앞에서 흔들리고 있다. 신 목사는 이 같은 위기의 원인을 ‘절제하지 못함’에서 찾고 있다. 과생산과 과소비, 과잉 자본 축적 경쟁은 시장 중심의 자본주의가 결코 완성된 형태의 경제체제가 아니라고 호소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경제위기의 ‘불안’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물론 교회 역시 이 시대를 지혜롭게 넘어야할 과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과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 전반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한국의 발전을 주도했던 기독교는 점차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을 붙잡지 못하고 외형적인 성장만을 강조한 탓에 이원론적 신앙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

# 그리스도의 방식 ‘십자가 지기’
교회의 위기와 사회의 위기를 동시에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신동식 목사는 그리스도의 방식으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호소한다. 그는 “교회의 교회됨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복음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일”이라며 “이 일을 위하여 우리가 감수해야 할 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고난”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복음의 본질에 합당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손해 보아야 할 것이 많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방식은 바로 ‘자발적 불편을 감수하는 삶’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명령하셨다. 또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하셨다. 신 목사는 “섬김을 받을 수 있지만, 섬기는 자리에 서는 것이 바로 자발적 불편”이라고 말한다.

“얼마든 부유한 삶을 살 수 있지만 스스로 포기하고 나눔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자발적 불편은 자발적 가난의 삶이라 수 있다. 여기에는 고지론, 저지론, 미답지론, 청부론, 청빈론이 싸울 필요가 없다. 자발적 불편과 자발적 가난의 삶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자발적 불편운동은 무기력하고 궁상맞게 살라는 것이 아니다. 이웃과 공동체를 생각하면서 함께 사는 삶을 지향하는 것이다. 신 목사는 “자발적 불편을 살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기윤실에서 가장 먼저 제안한 것은 ‘전기’ 사용이다. 최근 이상 기온으로 인한 전기 사용량은 한계치를 넘고 있다. 일본 지진과 원전 폐쇄 이후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우려와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전기 사용을 줄이는 것. 기윤실은 “세상은 자발적으로 불편의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기다리고 있다”면서 “바로 지금부터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자발적 불편을 시작하자”고 강권했다.

# 자발적 불편, 신앙 없으면 불가능
하지만 자발적 불편을 결심하더라도 이것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기존의 풍족한 생활을 벗어나는 일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변화하고자 하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

1987년 말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을 처음 시작한 손봉호 교수(고신대 석좌)는 “우리는 세상에서 사는 동안 육신적인 욕구나 정신적인 욕구를 충족하면서 살게 된다. 이런 생활 속에서 우리의 생각하는 방식이나 느끼는 것, 행동하는 방식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위주의 방식으로 습관화되게 된다”고 말한다. 자연스럽게 욕망을 따라 좋은 옷, 좋은 집을 갖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또 이런 욕망을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의 삶으로 받아들이게 된다고 덧붙였다.

손 교수는 “예수님이 가르친 삶의 방식이 우리 자신을 버려야 갈 수 있는 길이요 세상적 지혜로 볼 때 어리석은 삶이라고 한다면 자기위주의 삶을 절대로 버릴 수 없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방식으로 바꾸려고 한다면 일생일대의 결단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이런 결단은 죽을 수밖에 없는 내가 아무 공로 없이 구원받았다는 믿음의 고백 없이는 불가능한 결단”이라며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바로 이런 결단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또 이러한 결단은 단일한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손 교수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기로 결단한다고 해서 바로 그런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며 “우리에게 익숙한 습관을 바꾸려면 노력 없이는 안 된다. 자기위주의 습관을 버리고 주님의 삶을 나의 삶으로 받아들이려면 하나하나의 생각과 행동을 일만 번 이상 실습을 해야 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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