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란, 그녀가 쓴 역사 뒤엔 ‘어머니의 기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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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란, 그녀가 쓴 역사 뒤엔 ‘어머니의 기도’가 있었다
  • 김동근 기자
  • 승인 2012.08.08 1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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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들어 올린 국가대표 어머니 이현자 전도사

장미란 선수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고생하면서도 사고를 핑계삼지 않는 노력하는 선수였다.

▲ 원주 소재 예수사관학교에서 만난 이현자 전도사
어린 시절 아픈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어찌할 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구르던 소녀가 있었다. 온 가족은 어머니의 병이 나을 방법만 있다면 모든 것을 동원해 고쳐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어떤 방법도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할 수는 없었다.

예수를 믿으면 병이 나을 수 있다는 말에 오랫동안 절에 다닌 아버지도 어머니를 이끌고 교회로 향했다.목사님의 기도를 받으면 받을수록 어머니의 몸은 좋아지기 시작했다. 걷기도 힘들어 하시던 어머니는 4년만에 기적같이 깨끗하게 나으셨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눈으로 보고, 체험한 소녀의 가족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했다.그 모든 기적을 체험한 사람은 바로 이현자 전도사.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녀의 마음에 예수님의 자리는 점점 작아져 갔다.

젊은 시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그녀에게 이론일 뿐 예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도 비전도 없었다.

# 문제 부부에서 간증 부부로
첫째 딸 장미란 선수가 운동을 시작하고 뒷바라지를 위해 식당을 개업했다. 너무 바쁜 나머지 예배를 드리러 가기 어려울 때면 이 전도사는 첫째 딸 미란을 불러 이야기했다.

“미란아. 엄마가 식당일이 너무 바빠 예배드리러 가기 힘들 것 같아. 미령이, 유성이 데리고 예배드리러 대신 가줄래?”

고개를 끄덕이며 한 번도 빠짐없이 삼일예배, 금요기도회에 참여했던 자녀들. 이 전도사는 “그때부터 미란이는 성실함과 꾸준함이 몸에 밴 순종 잘 하는 딸이었다”고 전했다.

이 전도사가 다시 신앙에 불을 붙이기로 결심한 것도 바로 이 때. 하지만 교회로 향하는 발걸음은 늘 무거웠다. 가지 못하게 붙잡는 남편, 혹여 교회를 갔다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문을 잠그고 열어주지 않으며 모질게 굴던 남편. 그 때는 원망도 참 많이 했지만 이 전도사는 감사하다고 말한다.

“미란 아빠가 나를 그렇게 힘들게 하지 않았으면 저 역시 열심히 신앙생활 안했을 것 같아요. 그때 기도제목 중 하나가 오늘은 문제의 부부지만 훗날 사람들 앞에서 간증할 수 있는 부부가 되게 해달라는 것이었는데 하나님이 들어주셨죠. 가끔 간증에 나설 때면 정말 감사해요. 남편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는 거니까요.”

젊은 시절 나쁘게만 보였던 남편의 성격들도 이제 와서는 모두 장점으로 보인다는 이 전도사.

“통 크고, 다혈질 남자의 아내로 살려면 힘들죠.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는데 미란이가 아빠를 닮아 통 크게 세계무대에서 최고가 됐잖아요. 단점이 장점으로 바뀌어 보이기 시작한 거죠.”

# 첫째 딸 미란이
▲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장미란 선수 <사진=대한체육회 제공>
“미란이가 처음 역도를 시작했을 때, 많이 부끄러워했어요. 자신이 신기록을 세우고도 언론에서 인터뷰를 하러 오면 숨어버리기 일쑤였죠. 여자가 힘쓰는 운동을 하는 것이 처음에는 많이 부끄러웠던 것 같아요.”

장미란 선수는 “태릉선수촌에 들어가니 노력한 만큼 대가가 돌아오는 운동이 바로 역도이고, 역도만큼 정직한 운동이 없는 것 같았다”며 “그 때 역도에 매력을 느끼고 사랑하게 됐다”고 전했다.

어느날 티비에서 애국가가 흘러나오며 태극기가 높이 걸리는 것을 본 이 전도사는 ‘아! 이거구나’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 전도사는 장미란 선수가 세계무대에서 승리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미란이를 위해 기도할 때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했어요. 미란이가 늘 승리할 수 있도록,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도록….”

2004년 아테네올림픽. 세계무대에 처음 섰던 장미란 선수는 공항에 내리자마자 심장이 터질 듯 긴장이 됐다고 한다. 그리고 시합 전날 펼친 성경책에서 떨어진 편지 한 통.

“사랑하는 미란아, 네가 세계를 다스리고 정복하는 믿음의 딸이 되길 바란다. 장미란 파이팅!”

장 선수는 2001년 어머니가 써준 편지를 보며 자신이 오래전부터 준비되어온 사람인 것을 깨닫고 편안하게 경기에 임할 수 있었다고 한다.하지만 편파판정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던 장 선수. 이 전도사는 아쉬웠던 경기마저도 감사함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아쉬웠죠. 그런데 미란이가 편파판정 때문에 대한민국 안에서 굉장히 유명해졌어요. 금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이 그 이상으로 높여주신 거죠. 그때 금메달을 딸 준비가 덜 됐었나 봐요. 하나님께 더욱 의지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신 것 같아요.”

많은 경기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던 장미란 선수. 이 전도사는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에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꼽았다. “경기를 며칠 앞두고 금식을 시작했었어요. 교회 식당에서 반찬을 만들면서도 내가 절제할 수 있는 것을 절제하면서 하나님 앞에 뜻을 구하는 것이 믿음 아닐까 생각했어요. 당시 교회에 취재진들이 잔뜩 몰렸었는데 틈만 나면 인터뷰를 하려고 해서 모두 거절했어요.

하나님이 가장 우선시돼야 할 분이니까요. 미란이가 금메달을 딴 것에 감사기도까지 마치고 그때 인터뷰를 했었죠.”장미란 선수가 세계 최고가 됐을 때 이 전도사의 눈에서는 하염없는 눈물이 흘렀다고 한다. 어려웠던 시절, 힘든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갔고 하나님께 울며 기도했던 모든 것을 미란이를 통해 이뤄주신 것이 정말 감사했다.

# 런던 올림픽
▲ 런던 엑셀 사우스 아레나. 여자 역도 75kg이상급 경기에서 장미란 선수가 힘겹게 바벨을 들어올리고 있다. <사진=대한체육회 제공>
이번 런던올림픽을 준비하며 가끔 강원도 태백 예수원을 찾았다는 장미란 선수. 때론 혼자서 때론 동료들과 함께 기도와 묵상을 위해 떠났었다고 한다. 장미란 선수가 이런 믿음을 갖게 도운 멘토는 누굴까?

이 전도사는 그 멘토를 예수사관학교 변충구 목사로 꼽았다. 변 목사는 장미란 선수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미란이는 중3때 뜻을 세웠고, 하루 6시간씩 연습했습니다.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자원해서죠. 감독이나 코치가 연습을 강요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성실한 자와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미란이 같은 믿음 좋은 성도를 만난 것은 목사인 저로서도 큰 복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완전수 7과 12를 좋아한다는 이현자 전도사는 런던올림픽에서 장미란 선수가 한 번 더 정상에 서길 기도했다. 장 선수가 세계 정상에 여섯 번 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5일 여자역도75kg 이상급 경기에서 장미란 선수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4위에 머물렀다. 그 와중에도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 장 선수. 아쉬움이 남지는 않았을까?

지난 6일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이 전도사는 “아직 미란이랑 통화는 못했고, 메신저를 주고받았어요. 엄마 걱정부터 하더라고요. 본인이 가장 아쉬울텐데…. 저도 아쉽기는 하지만 잘해줘서 너무 고마워요. 부상을 당해 힘들어하는 선수들도 있는데 무사히 마친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지금까지 미란이를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세계 정상에 섰던 선수. 아직도 세계 최고인 선수. 전 국민이 사랑하는 역도 선수 장미란. 그녀가 쓴 역도계의 역사 뒤에는 눈물 흘리며 간절히 구했던 ‘어머니의 기도’가 있었다. 

▲ 장미란 선수가 쌓아올린 세계 대회 기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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