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잘하는 목사’로 인정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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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잘하는 목사’로 인정받고 싶다?
  • 표성중 기자
  • 승인 2012.07.25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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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위에서 권위 세우려는 욕망이 표절 부추겨

2년 전 경기도 부천에 위치한 B교회 S목사는 부임한 이후부터 약 10년 가까이 유명 목회자들이 시리즈로 출판한 강해 설교집을 있는 그대로 사용하거나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설교문을 베끼는 등 설교 표절 문제로 심한 곤혹을 치렀다.

이 같은 사실은 그 교회에 다니고 있었던 A집사의 설교 메모 습관에 의해 알려지게 됐다. 하지만 당시 S목사는 설교준비를 위해 다양한 자료를 참고하고 인용했을 뿐 표절이 아님을 주장한 바 있다.

목회자들의 설교 부분에 있어 표절과 인용의 기준은 모호하다. 하지만 표절이 됐든, 인용이 됐든 타인의 설교를 마치 자신이 준비한 것처럼 설교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왜 목회자들이 설교를 표절하는 것일까. 정창균 교수(합신대)는 “유명 목회자들의 설교나 은혜로운 설교를 접하는 대다수 목회자의 경우, 자신이 사역하는 교회 성도들에게 동일한 내용을 설교함으로써 감동과 은혜를 선사하고픈 마음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성도들로부터 설교를 잘하는 목회자로 인정받고 싶고, 이와 같은 설교를 통해 신뢰와 권위를 세우고자 하는 욕망이 지나치게 앞서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위형운 교수(안양대)는 한국 교회 예배의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했다. 위 교수는 “일주일에 너무 많은 예배가 드려진다. 설교자가 모든 예배 설교문을 충실하게 준비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며 “설교문 작성 외에도 심방, 교육, 전도 등 다양한 업무로 인해 설교 표절과 같은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사실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이 설교 표절을 문제 삼는 부분은 말씀 선포라는 본질적 차원이 아니다.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의 권위와 관련이 있다. 즉, 말씀이 아닌 설교자 개인의 문제다. 표절 혹은 인용을 내용을 마치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치열하게 고뇌한 것처럼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자신의 영적 권위를 세우려는 욕망을 지적하는 것이다.

정창균 교수는 “일반 사회에서 범죄로 여기는 표절 문제와 동일한 차원에서 타인의 설교문이나 책을 설교 자료로 활용하는 목회자의 행동을 무조건 표절이라고 정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정 교수는 “목회자들이 설교를 준비하는데 대부분 주석과 책을 참고한다. 하지만 주석의 성경해석을 자신의 설교에 그대로 삽입했다고 해서 표절로 보지 않는다”며 “한국 교회는 표절과 인용과 관련된 정의와 한계를 명확하게 구분 짓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위형운 교수는 “책이나 다른 목회자의 설교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 자신의 설교문 작성에 참고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며 “설교하는 가운데 인용했다고 직접적으로 말하거나, 청중들이 알 수 있도록 간접적으로 암시해줬다면 표절로 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승진 교수(실천신대)는 “대부분의 성경해석은 전통적인 틀 안에서 유지된다. 따라서 다른 목회자들의 성경해석을 참고하거나 인용하는 것은 표절로 보기 힘들다”며 “하지만 예화와 같이 설교자가 직접 경험하거나 깨닫지 않은 것들을 마치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으로 포장하는 것은 표절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자들을 무분별한 표절과 인용은 자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승진 교수는 “설교 시간에 언제나 신선함과 충격적인 내용을 전해주려고 하다보면 타인의 설교를 그대로 인용하게 되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며 “목회자들은 설교를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창균 교수는 “자료의 출처를 명확하게 밝히는 것은 책이나 논문집에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설교에는 직접적으로 하기 힘들다”며 “하지만 용기를 내 설교 내용의 출처를 밝힌다면 오히려 설교자의 신뢰가 더욱 상승될 수 있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위형운 교수는 “담임목회자가 과중한 업무로 시간에 쫓겨 설교를 표절하는 것으로부터 탈피하려면 부교역자들에 설교를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배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위 교수는 “담임목회자는 설교를 교회의 주도권이나 치리권으로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부교역자들도 강단에서 설교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주일설교도 담임목사가 독점할 필요는 없다. 설교도 부교역자들과 함께 하는 공동 목회의 사역 중 하나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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