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소음을 줄이기 위해 일몰 후 작업을 금지하며, 공장 소음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주요 소음 발생 시설을 공장 내 중심 부분이나 지하에 설치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도 있다. 인간의 감각에 피해를 주는 산업화의 소음 공해는 규제나 방음 시설물 설치 등으로 완화될 수 있지만, 우리의 정신에 혼란을 주는 ‘언어의 유희(?)’라는 공해는 어떤 방법으로 규제해야 할까? 비근한 예를 들면, 국회 청문회에서 말도 안되는 질문을 던지며 답변자를 마치 피의자로 취급하는 질의자나,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피해가며 자신을 합리화시키려는 답변자는 국민들에게 언어의 공해라는 고통을 번번히 안겨준다. 대선을 몇 달 앞둔 시점에, 여·야의 정치권에선 의혹과 은폐, 그리고 고소, 맞고소 등의 소음이 끊임없이 난무하고 있다. 민생 복지는 뒤로하고 제 목소리 큰 것 자랑만 하고 있으니 소음도 이런 소음이 없다. 소음은 비단 정치권 뿐만 아니라 경제와 사회, 문화계는 물론 교회도 해당된다. 고집과 아집으로 고착되어버린 자신의 목소리를 낮추고 혹시 나에게 잘못이 있다면 솔직히 인정하며, 남의 말에 귀를 귀기울이는 겸손이야말로 언어의 공해를 덜 수 있는 지름길이다. 소음의 세기(크기)는 데시벨(dB)로 나타낸다. 생활 속의 소음도 중에서, 속삭임이 30데시벨, 일상 대화는 60데시벨, 지하철이나 시끄러운 공장의 소음은 80~90데시벨, 그리고 비행기가 이착륙할 때 나는 소음은 150데시벨이다. 보통 85데시벨이 넘어가면 불쾌감이 생기기 시작하고 130데시벨 이상이면 귀에 통증이 오며 심하면 고막이 파열되기도 한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사생결단하며 고집 세우는 내 목소리의 크기는 과연 몇 데시벨(dB)일까? 130데시벨 이상이라고 생각되어지면 심각하게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내 목소리가 타인에게 또다른 소음 공해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는 20데시벨이다. 10~26데시벨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우리의 귀는 정상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강도를 가진 소리만 듣는다면 가벼운 난청이라고 할 수 있고, 70~90데시벨의 소리만 들을 수 있다면 심각한 난청으로 분류되고 있다.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주님의 음성의 크기는 과연 몇 데시벨일까? 내가 소음 공해의 주범은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는 냉철함이 요구되는 시기이다. 박대훈목사(서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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