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83강) 종말과 재림 준비하는 자세는 ‘깨어 기도하라’
상태바
마가복음 (83강) 종말과 재림 준비하는 자세는 ‘깨어 기도하라’
  • 운영자
  • 승인 2012.07.11 17: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종말은 심판과 분리의 날

종말의 날은 우리의 의무를 등한시한 것에 대한
심판과 한결같은 충성에 대한 보상의 시간이 될 것이다

종말론 강화의 두 번째 부분(마 24:6~8, 29~41)은 주님의 날의 도래와 그 이전에 발생할 사건들에 대한 묘사이다. 그런데 이 부분의 말씀을 피상적으로 읽게 되면 혼란에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34절에 의하면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고 주님이 말씀하시는데, 정작 36절에 의하면 그 날과 그 때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어떤 이들은 예수님이 자신의 예언을 듣는 청중들의 생전에 주님의 날이 올 줄로 잘못 생각하였다고 주장한다.

또 어떤 이들은 마가복음 9장 1절(“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과 함께 이 말씀을 고려할 때, 주님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한 것을 사람들이 재림과 동일시한 까닭에 이러한 오해가 빚어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사실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이 반드시 재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대체로 학자들이 마가복음 9장 1절의 말씀을 오순절 날 발생한 성령 강림 사건으로 해석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은 29절의 “이런 일”이 13장 예언의 전반부에 묘사된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을 가리킨다는 주장이다.

인자의 도래(到來)에 대한 묘사 후에 무화과나무 비유를 기록함으로써, 마가는 그것을 임박한 파루시아(재림)에 대한 경고로서 이해하였다. 팔레스타인에서 무화과나무는 잎을 잃어버리는 유일한 나무이다. 그러므로 무화과나무가 잎을 잃는다는 것은 여름이 다가왔다는 징조인 것이다. 여름은 유대인들에게 세상의 종말에 대한 상징인데, 그 이유는 팔레스타인에서 추수는 가을이 아니라 여름에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루살렘을 포함하여 팔레스타인에서 행한 주님의 사역은 마치 무화과나무의 잎처럼 예루살렘의 종말에 대한 예언적 사역이었던 것이다(막 13:28~29).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혹은 때)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을 알라.”(막 13:29). 여기서 “문 앞에"란 표현은 마가공동체의 사회적 상황을 암시하는 증거로 이해될 수 있겠다. 알다시피, 마가복음은 주후 64년 로마에서 발생한 대화재 사건의 후유증으로 로마 인근의 기독교 공동체에게 엄청난 박해와 재앙을 가져다주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자, 즉 주님의 재림이 곧 다시 있을 것이란 예언은 그 말씀을 듣는 마가공동체의 성도들에게는 커다란 위로와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

이제 다가올 종말에 대하여 주님 자신이 재림의 날과 그 때를 모른다고 말씀하였는데(막 13: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참고, 행 1:7), 만일 어느 누가 그것을 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신성모독과도 같은 짓이 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많은 사이비와 이단 종파에서 종말의 그 날을 아는 것처럼 무지한 그리스도인들을 호도하는 것은 명백히 반 성경적인 거짓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무모한 추측이 아니라 깨어 준비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마가가 특별히 그 복음서에서 강조하는 내용이다(막 13:33-37). 마가가 주님의 종말론의 결론을 “깨어 있으라"는 명령으로 제시하는 것이 그에 대한 증거이다. 그런데 만일 예비하고 있지 않는다면 스스로 재앙을 자초하는 일일 것이다.

마지막 날에 영원한 고통에 빠지게 되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말은 역사적이고 우주적이면서도 지극히 개인적인 까닭에, 내일은 어쩌면 우리의 시간이 아닐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볼 때, 마가복음의 종말론에는 주후 70년 예루살렘 멸망을 가리키는 예언의 말씀도 있지만, 또한 동시에 역사 및 우주의 종말을 가리키는 말씀도 있다. 이곳과 계시록의 말씀들이 종말의 시간표는 아니지만,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지진과 가뭄, 그리고 태풍 등의 자연재해는 분명 역사의 마지막이 더욱 가까웠음을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종말의 날은 우리의 의무(사명)를 등한시한 것에 대한 심판과 한결같은 충성에 대한 보상의 시간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과연 종말을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 그동안 ‘김경진의 신약읽기’와 ‘김 영진의 구약읽기’를 애독해주신 분들과 아울러 지난 몇 년 동안 좋은 원고를 집필해주신 두 분의 교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 호부터는 백석대 조병하, 이경직 교수의 ‘이야기식 교회사’와 ‘십계명에서 찾아낸 그리스도인의 삶’이 연재됩니다.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