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권칼럼] 루오의 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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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권칼럼] 루오의 사라
  • 허진권
  • 승인 2012.07.06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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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권의 기독교 미술 간파하기(5)

올해는 루오(1871~1958)가 40세가 넘어서 예수의 일생, 죽음 등을 주제로 드로잉을 하기 시작한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루오는 성경의 내용들을 굵은 먹선으로 드로잉하고 10여년동안 판화로 제작하여 60세가 다되어 판화집〈미제레레〉를 출판하였다.

루오와 샤갈이 성경의 내용으로 작품을 제작할 당시의 예술가들은 성경을 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색채를 띠는 모든 형식을 벗어던지는 일을 과제로 하고 있었던 시대다. 예술가는 신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유를 찾아야 하기에 성서를 읽고 신앙을 갖는 것조차 구속이라던 20세기 초 유럽의 화단과 100년이 지난 현대미술계가 무척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루오는 어려서 외할아버지로부터 예술적인 소양을, 가톨릭 신자였던 아버지가 보낸 프로테스탄트학교생활을 통하여 폭 넓은 신앙교육을 받고 자란다. 14세 때부터 스테인드글라스 공방에서 일 하면서 화려한 유리의 색채와 두꺼운 납선에 매료된다.

또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스승 귀스타프 모로와의 만남과 사별이 예술가로서 큰 전환점이 된다. 이로 인하여 젊은 시절은 종교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60세가 다되어 판화집을 출판한 후부터 유화에 몰입한다.

이때 그의 작품상 두드러진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두꺼운 마티에르, 대상의 단순함, 부드러우면서도 다채로운 색채, 두꺼운 외곽선을 완성한다. 그리고 80세쯤 그의 작품은 마치 조각처럼 더욱더 두꺼워지고 색채는 더욱더 밝아진다.

도판은 루오의 작품들 중 대표작으로 꼽히는 1956년 작〈사라〉다. 이는 루오가 85세에 제작한 것으로 천사의 말을 듣고 하도 어이없어 속으로 웃는 바로 그 사라를 표현 한 것이다. 이 작품은 제목을 아는 이조차 고개를 갸웃할 정도로 단순한 인물화다. 한 시대의 미술 사조와 그 작가의 특징이 아주 잘 나타난 순수한 회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그 동안 있었던 종교화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런 면에서 종교화는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사라〉는 위대한 종교화다. 이는 일생을 오직 인내와 성실로 일관한 신앙심 깊은 한 작가의 개성 있고 독창적이며 완성된 작품이 바로 이시대의 기독교미술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나을 때 100세, 사라는 그의 이복동생이며 부인이니 이 작품을 제작할 당시의 루오와 웃을 당시 사라의 나이가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는 호기심어린 생각이 든다.

왜곡과 변형, 엽기적인 것이 현대미술로 군림하는 이때, 수많은 젊은이는 가상공간 속에서 디지털화된 기계 같은 인간이 되어 감각기관이 자극 하는 대로 단순하게 생각하고 행동 한다. 이것들이 이 세상의 모든 진실과 참을 이루고 있는 요소라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순종하고, 질서를 지키려 노력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소외되고 멸시받는 풍토가 되었다.

루오가 표현한 사라의 웃음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생명의 본질과 구원의 역사를 믿으면서도 믿을 수 없다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웃음이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허진권(목원대학교 기독교미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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