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열차' 통일과 미래를 만드는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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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열차' 통일과 미래를 만드는 행진
  • 최창민 기자
  • 승인 2012.07.03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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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시베리아 횡단, 분단의 아픔 싣고 달린다

“그것이 가능합니까?”

'평화열차'(Peace train)를 소개해본 사람이라면 반드시 듣게 되는 질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도 현 시점에서 이 프로젝트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평화열차 프로젝트는 한국 교회가 2013년 세계교회협의회(이하 WCC) 제10차 부산총회를 준비하면서 내놓은 한반도 평화 기획의 일환이다.

총회에 참석하는 세계교회 참가자 중 일부가 평화열차를 타고 베를린에서 출발해, 모스크바, 이르쿠츠크, 베이징을 거쳐 평양과 서울, 부산에 도착하는 것이 전체적인 구상이다. 그 과정에서 중간 거점지역에서 평화를 염원하는 행사를 통해 한반도 평화 이슈를 세계에 알리고 WCC 총회의 평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처럼 방대한 프로젝트임에도 불구하고 실현가능성은 높지 않다. 현재는 평화열차가 성립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할 평양을 지나갈 수 없다. 극도로 경색된 남북관계를 넘어야 하고, 정치적인 문제 해결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도 이 프로젝트의 실현가능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쏟아지는 질문과 의심을 뒤로한 채 평화열차 프로젝트 답사팀이 떠났다. 본지는 지난 5월 28일부터 6월 13일까지 16박17일간을 동행취재 했다. 이번 취재는 북한선교와 평화통일 운동에 앞장서는 영안교회(담임:양병희 목사)와 기독교언론포럼(이사장:손인웅)이 후원했다. 평화열차 답사팀과 함께한 이번 여정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 주>

1일 모스크바

독일 베를린에서의 일정을 무사히 마친 평화열차 프로젝트 답사팀은 31일 저녁 베를린 HBF역에서 기차를 타고 러시아 모스크바로 떠났다. 독일에서 답사팀은 동서냉전의 상징과도 같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역사적 현장을 체험했다. 통독 과정에서 이뤄진 독일 교회의 다양한 기여와 역할도 확인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냉전의 산물이 치유되는 역사다. 한국 교회는 그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사명과 역할을 찾아야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기차는 폴란드와 벨라루스를 지나 냉전의 한 축을 담당했던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 벨로루스까야역에 도착했다. 26시간의 기차 여정은 답사팀을 노곤하게 했지만, 그보다 더 끈끈한 우정이 쌓였다. 답사팀은 김정규 선교사(감리교)의 안내에 따라 스몰렌스까야역에 있는 숙소로 이동했다.

모스크바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특히 지하로 120~130미터씩 파고 들어간 지하철은 장관이었다. 러시아 지하철은 1901년부터 기획돼 1930년대에 개통됐다. 전쟁에 대비해 깊은 곳까지 들어간 것이었다. 그 시대에 이렇게 깊이까지 파내려가 이 같은 시설을 만들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역사 안은 충분히 넓었고 대부분 대리석을 치장돼 있었다. 각 역사에는 근대미술 작품으로 추정되는 독특한 벽면 그림이 걸려 있었다. 곳곳에 조각상도 눈에 들어왔다. 화려한 겉치장과 달리 지하철 내부는 다른 칸으로 이동이 불가능했다. 또 덜컹거리고 소음이 심했다. 숙소에 도착한 답사팀은 여정을 풀고 잠을 청했다.

2일 러시아 정교회

답사팀은 이른 아침 러시아 정교회와의 협의를 위해 뚤스카야역에 위치한 다닐로브스키 수도원으로 향했다. 이곳은 13세기 후반에 세워진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이다. 타타르족으로부터 모스크바를 보호하기 위해 세워진 이 수도원은 요새의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높이 솟은 성벽, 그 안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이 수도원은 러시아 정교회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사회주의 국가가 되면서 대부분의 수도원이 박물관, 공장 등으로 바뀌었지만 다닐로브스키 수도원은 폐쇄된 후 1983년 수도사들이 다시 돌아오면서 문을 열어 그 명맥을 계속 유지해 왔다.

답사팀은 WCC 중앙위원 넬류보바 마르가리타(러시아 정교회 대외협력국)의 소개를 받으며 수도원 곳곳을 둘러봤다. 수도원의 분위기는 엄숙했다. 성령강림주일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가족들과 함께 기도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몸에 성호를 그리며 들어온 사람들은 교회당을 장식한 성화에 입을 맞췄다. 악기 없이 목소리로만 이뤄진 찬양이 교회당의 울림통 구조를 타고 온 몸으로 전해졌다. 맑고 깨끗하게 들려오는 찬양소리가 귓가를 계속 맴돌았다. 교회당마다 피우는 향과 촛대 모양이 달랐다. 그리고 각 처소마다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었다. 개인 기도소에서는 사람들이 몇 시간씩 혼자 서서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러시아 정교회의 신성함과 신도들의 신실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수도원을 둘러본 답사팀은 대외협력국 회의실로 이동해 러시아 정교회와 함께 평화열차와 관련한 협의를 진행했다. 회의실에는 대외협력국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총무, 드미트리 시조넨코 간사, 알렉산더 바시우틴 아시아 담당 국장 등이 답사팀을 맞이했다.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총무는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평화열차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을 의미 있게 생각한다”며 “러시아 정교회도 적극 돕겠다”고 말했다. 또 “평화열차가 북한을 통과하는 문제와 관련해 북한 정교회를 통해 설득할 것”이라며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제3세계를 포함한 평화열차 참가자들의 비자 취득 문제를 정부와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러시아 정교회는 또 모스크바에서 진행되는 평화마당 행사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특히 예배는 러시아 정교회 예식으로 진행하고, 정교회가 운영하는 호텔을 반값에 이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한편, 300명 규모의 세미나 장소를 제공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러시아 정교회의 적극적인 지원 약속으로 인해 답사팀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었다. 이번 답사 일정 중 가장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던 회의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답사팀은 가벼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이어진 한인 선교사들과의 만남은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았다. 모스크바 한인 식당에서 답사팀을 맞이한 한인 선교사들은 WCC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개진했다. 한 선교사는 “WCC는 다원주의적인 신앙관과 성경관을 가지고 있다”면서 “평화열차에서 평화라는 단어도 불편하다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WCC 총회 한국준비위원회 박도웅 총무국장은 “한국 내에서도 논쟁이 있지만, 참여하시는 목회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WCC 총회가 분열이 아닌 일치와 협력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교회의 보편적 지향점이 되어야할 평화를 위해 교단의 입장을 넘어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선교사는 찾기 어려웠다. 해외 선교사회는 대부분 보수교단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들을 설득하고 참여시키는 일은 앞으로 평화열차 준비팀이 풀어야할 숙제로 남았다.

3일 붉은광장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다. 국토는 우리나라의 170배, 인구는 세 배 정도라고 한다. 수도 모스크바는 소비에트 시대에 정치, 문화, 경제, 교통의 중심지로서 급속한 발전을 이뤘다. 거대 도시답게 거리에는 차들로 북적였다. 러시아 민족을 상징하는 베료스카(자작나무의 일종) 나무가 가로수를 장식했고, 거리에는 솜털처럼 생긴 토플리 나무의 홀씨가 흩날렸다. 간혹 터져 나오는 제체기가 이것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모스크바 거리의 오묘한 풍경이 독특하면서도 흥미로웠다. 늦은 밤까지 대낮처럼 밝은 백야도 진풍경이었다.

답사팀은 모스크바의 심장과도 같은 붉은광장을 찾았다. 붉은색은 러시아에서 아름다움을 의미했다. 크렘린과 레닌의 묘, 바실리 성당 등 러시아를 상징하는 건축물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붉은광장은 예부터 선포나 판결, 노동절 행사, 사열식 등이 이뤄졌던 곳이다.

광장 입구에는 2차 세계 대전에서 히틀러의 독일을 패퇴시킨 ‘주꼬프 장군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러시아를 구한 구국의 영웅이다. ‘부활의 문’을 통과해 광장 안으로 진입하면 다갈색 포석이 깔린 광장이 나온다. 광장 너머로 보이는 바실리 성당에 눈길이 간다. 바실리 성당은 모스크바를 대표하는 이미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은 건축 예술품’이라고 불린다. 성당 건축을 지시했던 이반 대제가 또 다시 이처럼 아름다운 건물이 지어질 것을 두려워해 건축가의 눈을 뽑아버렸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레닌묘가 있는 크렘린에는 트로츠키, 스탈린, 흐루시초프 등 정치가의 흉상과 무덤이 있었다. 러시아혁명을 통해 소비에트연방을 창설한 레닌은 1년여 뒤인 1924년 1월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스탈린은 정치적인 선전을 목적으로 레닌의 시체를 영구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특수 방부 처리된 레닌의 시신은 붉은 광장에 안치됐다. 붉은광장을 돌아본 답사팀은 모스크바 카잔스카야역을 출발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중국 베이징까지 대륙횡단 장정에 나섰다.

4일-8일 이르쿠츠크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서쪽 모스크바에서 출발해 동쪽 대륙의 끝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약 9,446Km에 달하는 방대한 길이를 자랑한다. 이는 경부선의 20배를 넘고, 지구 둘레의 4분의 1에 가까운 거리다. 시간대가 일곱 번 바뀐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장대함을 짐작할 수 있다. 창 밖에는 자작나무 숲이 끝없이 이어졌다. 소나무, 낙엽송, 전나무 등 침엽수림이 수없이 많이 펼쳐지고, 가끔 초원지대도 눈에 띄었다.

답사팀을 싣고 동쪽으로 달린 열차는 7일 새벽 이르쿠츠크에 도착했다. 열차를 타고 대륙을 횡단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바이칼 호수로 유명한 이르쿠츠크는 평화열차 참가자들에게 쉴 수 있는 중간 거점이 될 도시다.

도시 중심에는 앙가라강이 흐르고 제정 러시아 때 지어진 아름다운 건축물이 많아 ‘시베리아의 파리’로 불린다. 러시아 대륙의 중심부에 위치한 이르쿠츠크에서 유럽의 문화가 꽃피우게 된 것은 데카브리스트의 영향이다. 젊은 귀족 장교 출신인 이들은 1825년 12월 농노제 폐지와 짜르 전제체정치 타도를 외치며 쿠데타를 시도했으나 실패한 후 이곳에 유배됐다. 처음에는 강제노역을 했지만 수년 후 이곳에 정착하면서 러시아 귀족 문화와 유럽 문화를 꽃피웠다. 이곳에는 톨스토이의 작품 ‘전쟁과 평화’의 모델이 된 발콘스키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르쿠츠크에서 각 국의 평화열차 참가자들은 바이칼 호수와 자연을 경험하게 된다. 바이칼호의 최대 수심은 1,637m, 길이는 636km에 달한다. 세계 민물의 20%, 세계 식수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가지고 있으며, 336개의 강에서 유입된 물은 앙가라강 하나를 통해 빠져나간다.

답사팀은 환바이칼열차를 타고 바이칼 호수의 절경을 돌아봤다. 또 높게 뻗은 소나무와 자작나무, 앙가라강이 어우러진 욜로츠카 휴양림에서 자연의 정취를 맛봤다.

9일-13일 베이징

이르쿠츠크에서 휴식을 가진 답사팀은 또다시 열차를 타고 베이징으로 향했다. 열차는 몽골을 지나 11일 저녁 이번 답사의 마지막 거점지역인 중국 베이징에 도착했다. 12일 오전 답사팀은 중국 교회 지도자들과 만날 계획이었다. 하지만 중국 교회는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면담을 거절했다.

중국은 삼자교회를 통해 자국민의 기독교의 활동을 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외 선교사들의 활동에 대해서는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답사팀을 맞은 선교사는 “평화열차 프로젝트에 대해 언급했을 때 조심스럽고 꺼리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결국 평화마당 행사를 진행할 충원문(崇文門)교회와 하이디엔(海淀)교회를 방문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충원문교회는 천안문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1870년 미국 남감리교가 에스버리 선교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베이징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다. 충원문교회는 1900년 반외세애국운동의 일환으로 발생한 이화단사건 당시 화재로 불탔다가 1906년 재건됐다.

1천석 규모를 갖춘 예배당에서는 주일에 4부 예배를 드리며 교회 앞마당까지 성도들로 가득 차 스크린을 통해 예배를 드린다. 현재 등록교인 5천 명, 세례교인 수만 명에 이르는 중국 최대의 교회다.

두 번째로 방문한 하이디엔교회는 베이징 중요 대학인 북경대, 청화대, 인민대가 밀집된 곳에 위치해 있다. 대학가 교회인 만큼 청년 대학생들이 많이 다닌다. 또 교회 1층에 카페가 있어 인근지역 주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교회 규모도 커서 대규모 세미나 진행도 가능하다.

답사팀은 베이징의 상징 천안문광장을 향했다. 천안문에는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크게 걸려 있었다. 그 장면을 사진에 담으려하자 사복을 입은 경찰이 막아섰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복 경찰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23년 전 이곳에서 민주화 시위가 있었다. 지금도 산발적으로 시위가 벌어지거나 삐라가 뿌려진다. 가끔 분신을 하며 정치적인 주장을 펼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크게 도약하고 있는 중국은 여전히 정치적으로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었다. 삼엄한 경비가 이를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천안문광장에는 마오쩌둥 시신이 안치돼 있다. 마오쩌둥은 지금의 중국을 만든 사회주의 지도자다. 평일에도 그의 시신을 보기 위한 줄이 길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두세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직접 보는 것은 포기했다.

러시아의 레닌, 중국의 마오쩌둥, 베트남의 호치민 등 사회주의 지도자들은 시신이 방부 처리됐다. 후임 지도자들은 현재의 권력을 더욱 공고하게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신을 보존했다. 그들의 시신이 체제 정당화와 정치적 선전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사냥터에서 잡은 동물을 보존하기 위해 박제를 한다. 그냥 두면 썩고 잊혀 진다. 박제는 과거의 열매와 영광을 간직하고 싶은 인간의 욕심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들이 생전에 유언을 통해 시신의 안치를 원했다는 점이다. 살아서 대륙을 호령했지만 죽어서는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방부제 처리돼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 부패하지 않는 시신은 미래로 가지 못하고 역사를 자꾸 거꾸로 되돌리고 있는 듯했다.

멀지 않은 북한에도 두 구의 시신이 보존되고 있다. 김일성, 김정일 부자다. 그리고 김정은으로의 3대 세습이 이뤄졌다. 20세기 냉전이 종식됐지만, 냉전의 산물은 여전히 살아서 현대를 사는 우리를 갉아먹고 있다. 외세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뤄진 분단은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다른 나라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배워야 한다. 분열과 갈등, 반목의 역사를 평화와 공존의 미래로 바꿔야 한다. 한반도 평화는 동북아시아, 나아가 전 세계의 평화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답사팀은 베이징 방문을 끝으로 16박17일 간의 일정을 마치고 13일 저녁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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