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일제학살 ‘제암리 외 5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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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일제학살 ‘제암리 외 5개교회’
  • 승인 2001.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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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노블선교사 육필일기…정동제일교회 공개

3.1운동 당시 일제의 학살이 제암리 교회이외에도 16개지방 5개 교회에서 더 일어났던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정동제일교회 역사편찬위원 김대구권사가 입수, 감리교단을 통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일제의 학살은 알려진 29명보다 훨씬 많은 수에 이르며 더욱 잔인한 방법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자료는 1892년부터 1934년까지 42년간 한국 선교사로 활동한 바 있는 미국 북감리교 아서 노블 선교사의 부인이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육필일기에 기록됐던 것으로 일기는 고종의 사망이 일본정부의 사주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소문과 3.1운동 당시 거리 행진의 상황 등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특히 학살과 관련된 기록을 살펴보면 “일본군인들은 집집마다 다니며 남자들을 불러모았고, 사람들이 모이자 교회에 불을 질러 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 태워죽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19일자 일기는 제암리 이외의 양민학살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는데 “영국 대리공사인 로이드씨와 일행이 방문한 다섯마을의 상황은 시체가 묻혀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제암리와 다를 바 없었다. 그들은 근처 16개 마을이 전멸되다시피했다고 말했다”고 적혀있다.

3.1운동과 관련된 기록은 “중학교 이상의 학교가 일제 지배에 항거하며 수업을 거부했고 학생들은 거리를 행진하며 손을 높이 드고 모자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다”고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또 고종학살과 관련된 기록으로 “오전에는 고종황제가 일제의 사주로 살해된 것이란 전단이 온 거리에 뿌려졌으며 오후 2시쯤 거리는 온통 ‘기미독립선언서’란 전단으로 뒤덮였다. 사람들은 “이제 독립이 됐다”는 말을 하며 기뻐했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이 과정에서 교회지도자들이 조선과 일본의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며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는 사실도 거듭확인됐다. 3일과 4일의 일기에는 거리에 뿌려진 전단에서 폭력시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며 폭력행위의 자제를 당부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노블여사의 일기는 3.1운동 당시의 역사적 정황이 상세히 기록되었다는 것과 고종황제와 관련된 미공개자료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데 의미를 갖는다. 특히 현장의 상황이 생생히 전달되고 있어 일제의 만행이 얼마나 잔혹했는지 전달되고 있어 3.1운동과 일제의 양민학살에 대한 역사적 재조명이 가능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이현주(lhj@uc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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