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보다 인본적 가치와 원로들의 ‘특권의식’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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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보다 인본적 가치와 원로들의 ‘특권의식’이 문제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2.06.2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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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기획 / 무너진 한국교회, 다시 세우자 - ⑦ 교회세습 (하) 교회 사유화하는 ‘세습’의 고리 끊자

세습을 통해 자신의 권력 유지하려는 원로들의 ‘특권’부터 없애야

목사중심의 목회-교회 성장주의라는 본질적 문제부터 해결할 때

지난 2001년 세습논란의 중심에 선 광림교회는 지금 ‘세습’의 모범 교회로 꼽힌다. 아버지의 사역을 계승한 아들 김정석 목사가 안정된 목회를 하면서 오히려 성도는 늘고 사역도 확장됐다. 세습논란의 파장이 컸던 탓에 교계 정치권에 발을 들이지 않은 것도 김 목사에겐 득이 됐다. 순수하게 목회에만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광림교회를 사례로 세습의 긍정적인 면이 퍼져나갈 무렵, 통합 측 광성교회 분쟁이 이슈로 떠올랐다. 원로 목사와 후임 목사와의 갈등이 표면적으로 드러났고, 교회는 두 쪽으로 갈라졌다. 정당한 청빙 절차에 따라 후임을 선정했지만 오히려 교회는 내분에 휩싸였다. 이 사건은 아버지의 사역을 아들이 계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왜곡된 이론을 만들어냈다.

 # 세습의 긍정과 부정

차라리 아들이 목회를 이어받는 것이 낫다는 논리는 숱한 대형교회 분쟁 속에서 더욱 강화됐다.

영락교회의 경우 한경직 목사가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수차례 후임이 바뀌는 아픔을 겪었다. 한국의 대표적 교회로 상징적 의미를 갖던 영락교회는 지금 한경직 목사의 추억만 깊게 남아있을 뿐, 목회자 교체 과정에서 살점이 떨어져 나가듯 교인들의 이탈을 목격해야 했다.

세습을 강행하고 그 논란을 정면 돌파한 임마누엘교회 김국도 목사는 지난 2008년 감독회장 후보 공청회에서 유일하게 세습의 신학적 정당성을 주장했다.

김 목사는 “목사직 대물림은 구약의 제사장직에 따른 것”이라며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부르심을 받았고, 제사장직은 아론의 계열을 따라 부르심을 받은 직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광림교회의 사례처럼 세습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교회의 안정적인 유지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아들은 아버지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으며 그 역량과 성품을 닮은 목회자가 되려는 노력도 가능하다. 남보다 훨씬 적응이 쉽고 아버지와의 큰 트러블이 없다면 안정적 목회 이양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정당성과 신학적 주장에도 불구하고 세습에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이 모아지는 것은 이 역시 ‘인본주의’ 사상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조직신학자였던 고 이정석 교수는 “목회세습은 교회성장의 공로를 인간에게 돌리는 세속적인 교회관에 근거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사도바울의 말을 인용해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고,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라는 고린도 전서 말씀을 인용해 작던 크던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 한 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한 바 있다.

김국도 목사가 주장한 제사장직의 계승 역시 그리스도 이후 ‘만인제사장’설을 바탕으로 하는 신약시대에는 적용이 어렵다는 것이 신학자들의 견해다.

‘세습’의 사전적 의미는 ‘재산, 신분, 직업 등을 한집안에서 자손 대대로 물려받는 것’을 뜻한다. 목회만 계승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교회에 있어서 이 단어는 불편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선임자의 업적과 전통을 잇는 것은 ‘승계’, 후임자가 선임자의 권리나 의무를 뒤이어 물려받는 것은 ‘계승’이라고 불린다. 목회 계승이 아닌 ‘세습’으로 불리는 이유는 ‘자손’에게 물려지기 때문이다. 즉, 아들에게 물려주는 목회에 있어 ‘세습’이 아닌 적절한 대체 단어를 찾기는 쉽지 않다.

중요한 것은 ‘교회’를 ‘물려줄 것’으로 생각하는 세속적 가치관이다. 세습 문제의 본질은 ‘아들’이 목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들에게 ‘무언가를’ 물려주려는 데 있다. 세습이라는 과정 속에 인본주의와 혈연주의, 물량주의가 총체적으로 내포된 데 더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단순히 아버지의 사역인 ‘목회’를 계승하는 것은 지탄받을 일이 아니며, 무엇을 물려주기 위한 세습, 혹은 무엇을 유지하기 위한 후임 선정이 문제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 논란의 중심에 선 ‘원로’

다시 충현교회 사태로 돌아가 아버지 김창인 목사는 두 명의 후임을 내보내고 결국 아들을 담임 목사직에 앉혔다. 그런데도 아들과 사이가 틀어지면서 지금에 와서 “세습을 후회한다”고 말하고 있다. 세습이 문제일까. 충현교회 사태는 아들 취임 후 폭력사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성관 목사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는 사건이 일어났다. 교회 내부에서는 “아들이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아 아버지가 누군가에게 시킨 일”이라는 주장과 “아들이 꾸민 자작극”이라는 주장이 맞섰다. 사건은 김성관 목사를 노린 ‘테러’로 마무리됐지만 이 일은 아버지와 아들의 간극을 넓히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아들을 후임으로 세우며 김창인 목사가 원한 것은 아마도 여전한 자신의 영향력이었을 터.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는 점점 벌어졌고, 급기야 나이 아흔을 넘긴 김 목사 주변에서는 “아들이 생활비도 주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져 나왔다. 일부 교회에서는 김 목사에게 원로목사직을 주면서 생계비 조로 수백만원의 월급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충현교회는 이같은 소문을 일축했다. 교회에서 김 원로목사의 집과 차, 병원비와 각종 세금, 그리고 생활비 등 비용 일체를 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충현교회 측은 “아들이 생활비도 안 준다는 소문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교회는 원로 목사님의 생활에 어려움이 없도록 최선의 대우를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처럼 충현교회 사태의 이면에는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이 숨어 있다. ‘섭정’이 통하지 않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불만이 오늘에 와서 ‘세습’의 후회를 불러온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하다. 충현교회 사태가 시사하는 것은 ‘아들’도 최선은 아니라는 점. 즉, 세습이 문제가 아니라 세습을 통해 자신의 권력과 욕망을 계속 유지하려는 ‘목회자의 특권의식’이 문제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합동신학대학원 대학교 정승원 교수 역시 “세습의 문제는 아들에게 무언가 물려줄 ‘특권’을 목사가 이미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먼저 문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들이 목회를 이어받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교회 성장과정에서 목회자가 사유한 ‘특권’의식이 문제라는 설명이다.

정 교수는 “목사가 가져야할 특권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님이 주실 때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특권을 물려주려는 행위는 아들이 아니라 다른 후임자를 통해서 나타나기도 하며 이것은 종국에 가서 교회 분열이라는 후유증을 낳기도 한다.

# 사역을 계승하는 사람들

목회자 가정이 대를 이어 목회하는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목회 현장에서 숱한 어려움을 겪은 아버지는 아들에게만큼은 ‘목회의 짐’을 지어주지 않으려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주 안디옥교회 이동휘 원로 목사는 성도 수 8000명에 달하는 큰 교회를 개척했지만 은퇴 후 아예 전주를 떠났다. 수원의 작은 아파트로 거처를 옮겨 선교 사역에 매진한다.

아들에게 왜 교회를 물려주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 목사는 “고생하는 자리를 왜 자식에게 물려주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은 더 고생스러운 선교지에서 아버지의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사실 대다수의 목회자들은 아들이 자신과 같은 고생길을 걷길 원하지 않는다.3대 째 목회를 하고 있는 예따람공동체 강석찬 목사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각각 개척목회를 성공한 목회자 가정의 자녀였다. 강 목사는 “아버지가 늘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목회를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대학에서 일반 학문을 전공한 강 목사는 결국 다시 신학의 길로 들어섰다. 아버지의 교회를 이어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존경하는 아버지의 사역을 이어받기 위함이었다.

한 교단의 총회장을 지냈고, 단단하게 세워진 교회에서 사역을 마치고 은퇴하는 아버지는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교회는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강석찬 목사는 “아버지의 사역을 바라보며 존경하고 그 귀한 사역을 이어가기 위한 목회의 계승이라면 대를 이어갈수록 좋은 것이 아니겠냐”며 세습이 아닌 사역의 계승이 많아지는 한국 교회를 희망했다.

# 세습문제의 본질적 대안

정승원 교수는 “한국 교회 세습문제를 바라볼 때, 그 안에 처한 총체적 문제를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장 중심의 세속적 교회, 목사 중심의 인본적 사고가 뿌리깊게 박혀 있는 한 ‘세습’이라는 단어는 계속 부정적으로 남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특권이 없다면 아버지의 교회를 물려받아도 ‘세습’이 아닌 ‘계승’의 긍정적 시각으로 바라볼 것이다. 강석찬 목사는 “유럽의 작은 마을 교회에서 3~4대로 이어지는 목회에 대해 특권의 세습이라고 비판할 사람을 없을 것”이라며 “현대 사회에서 세습이 비판 받는 것은 이미 교회가 권력과 맘몬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 나갈 수 있을까. 정 교수는 “목사중심의 교회를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목사는 가르치는 직책임에 분명하지만 목사 개인이 다른 성도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거나 성경적 권한 외에 다른 권한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것. 일반 조직처럼 대표자로 목사가 군림하기 때문에 욕심이나 개인적인 판단이 정당화되고 그것을 성도들이 무조건 지지하고 떠받들어야 하는 것으로 왜곡되고 있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성장주의의 탈피도 세습문제 해결에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최근 일어나는 목회세습 문제가 중-대형교회에 집중됐다는 것은 성장으로 인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돈과 명예, 권력이라는 소산물이 있기 때문이다. 즉,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성경적 인식의 복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가장 기본적인 이론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성돈 교수는 은퇴하는 목회자에 대한 제도정비를 강조했다. 목회자 은퇴 대책을 튼튼히 마련한다면 세습의 욕망도 어느 정도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은퇴 대책은 최근 늘고 있는 중형교회의 세습에 더욱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조 교수는 “비단 세습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일정 규모를 갖춘 교회에서는 전임자가 후임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권한을 행사하고 대가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며 목회자 청빙과정의 투명성과 교회와 노회의 공동 책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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