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현교회’ 이번엔 회개발언으로 세습논쟁 불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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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현교회’ 이번엔 회개발언으로 세습논쟁 불붙여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2.06.20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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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기획 / 무너진 한국교회, 다시 세우자 - ⑦ 교회세습 (상) 교회 사유화하는 ‘세습’의 고리 끊자

충현교회 이후 대형교회 세습 본격화...광림 부자세습 성공론이 정당성 확산
독재국가에서나 가능한 세습 강행하는 교회, 북한 3대 세습에 침묵하는 모순

서울 충현교회 원로 김창인 목사가 지난 12일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한 잘못을 회개했다.

그의 나이 95세. 세습한 아들 김성관 목사의 나이도 70세다. 김성관 목사는 내년 4월 은퇴를 앞두고 있다. 아들의 은퇴가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아버지는 아들을 질책하며 자신의 잘못을 회개했다.

김 목사는 ‘충현교회 회복을 위한 긴급성명서’라는 제목으로 “나는 원로 목사의 위치에서 충현교회 제4대 목사를 세우는 과정에 관여하면서, 목회 경험이 없고, 목사의 기본 자질이 되어 있지 않은 아들 김성관 목사를 무리하게 지원하여 공동의회를 무기명 비밀투표 방식이 아닌 찬반 기립방식으로 진행하여 위임목사로 세운 것은 나의 일생 일대 최대의 실수로 생각하며,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저의 크나큰 잘못이었음을 회개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성명을 발표하는 것이 시기적으로 매우 늦은 것이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라도 더 늦기 전에, 나의 잘못을 한국 교회 앞에 인정하고 그와 더불어 충현교회가 회복되는 것을 나의 마지막 사명으로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세습 1호’로 불리는 충현교회 원로 김창인 목사의 참회 성명은 삽시간에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고,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세습논란’에 다시 불을 붙였다. 90년대 후반 ‘교회세습’ 강행 후 내분 없는 안정적 목회가 세습에 정당성을 실어주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김창인 목사의 ‘늦은 고백’은 여전히 세습을 준비하는 한국 중대형교회 목회자들에게 껄끄러운 잡음이 아닐 수 없다.

유독 21세기 한국 교회에서만 시끄러운 교회세습. 과연 정당한 것일까.

# 세습은 사역이 아닌 ‘권력의 계승’

청량리 가나안교회도 일명 ‘세습’교회다. 그런데 이 교회의 세습은 칭찬 일색이다. 크고 부유한 교회를 물려준 것이 아니라 청량리 588집창촌에서 노숙인 쉼터를 운영하며 평생을 바쳐온 ‘섬김’을 대물림했기 때문이다.

노숙인을 섬기는 것이 쉬울까. 수학강사였던 아들은 뒤늦게 아버지의 사역지에 들어왔다. 아버지 김도진 목사의 노숙인 사역에는 하나님과의 약속이 있었다. “하나님 내게 한 번만 기회를 주신다면 가장 보잘 것 없는 버림받고 굶주인 사람의 벗으로 살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약속을 지켰다. 김도진 목사의 아들 김정재 목사가 아버지의 뒤를 이은 이유는 간단했다. “아버지를 존경한다”는 단 한 마디였다.

아버지를 존경하는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회의 길을 걷는 것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사역이 대물림되는 것은 ‘계승’이지 세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 성장이 정점에 달한 1990년대 들어 ‘세습’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습을 강행한 교회들은 크고 부유한 교회였다.

충현교회도 그 중 하나였다. 충현교회를 세운 김창인 목사는 1987년 은퇴 후 2명의 후임을 세웠다. 해외 유학파로 실력을 인정받은 촉망받는 목사들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충현교회에 정착하지 못했다. 각종 구설수에 올라 교회를 떠나고 말았다. 3만5천 성도의 합동 최대 규모의 충현교회. 과연 누가 원로목사의 ‘수렴청정’을 견딜 수 있을 지 세간의 관심이 모아졌다. 그리고 교회는 아들을 4대 목사로 선임했다. 김창인 목사의 고백에 의하면 ‘기립투표’ 방식을 택했다. 성도들의 반대를 사전에 차단한 것이다. 그렇게 김창인 목사의 아들 김성관 목사는 1997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충현교회를 맡아 목회를 해왔다.

기립투표방식을 채택했다고 잡음이 없었을까. 김성관 목사가 충현에 부임할 당시 나이는 55세였다. 목회를 하기에는 늦은 나이. 그러나 물려줄 사람이 없었다. 외부에서 청빙된 목사들이 마뜩치 않았던 것이다. 결국 미국에서 잘 나가던 금융인이던 아들을 불러들여 후임으로 앉혔다. 이후 충현교회는 소란스러웠고,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도 점점 갈라졌다. 김창인 목사의 ‘참회’를 곱게만 볼 수 없는 것도 아들과의 오랜 알력다툼이 배경이라는 시선 때문이다.

문제는 충현교회의 세습 이후 한국 교회 안에서 대형교회 세습이 본격화 됐다는 사실이다.

# 세습에 정당성 부여한 충현교회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목회사회학 조성돈 교수는 “당시 충현교회의 세습은 교회를 사유의 개념으로 변화시켰고, 재산의 개념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소명감으로 목회하고 하나님의 교회로 인식하던 목사들이, 자신이 일군 교회에 대해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것. 당시 충현교회 세습은 은퇴와 후임을 고민하던 수많은 교회에 ‘담’을 무너뜨려준 사건이었다고 평가했다.

세습에 대한 사회적 비판의 소리도 높아졌다. 2001년 세습을 단행한 광림교회는 교회의 본격적인 세습반대운동의 타깃이 됐고, 사회적 파장을 불러왔다. 광림교회 세습 논란이 뜨거웠던 것은 김선도 목사가 평소 “절대 세습은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목사는 아들을 후계자로 지목하고 2001년 3월 ‘찬하예배’를 통해 자신의 은퇴와 아들의 세습을 세상에 공표했다.

그 후 광림교회는 부자세습은 목사들 사이에서 ‘모범사례’로 전해졌다. 아들 목사 부임 후 교회는 분열 없이 안정을 이어갔고, 많은 대형교회들이 “교회 분열과 분쟁을 막기 위해서는 아들이 맡는 것이 낫다”는 긍정론을 확산시켰다. 충현교회와 영락교회, 광성교회 등 대표적인 교회들이 후임선정 후 분란을 겪는 모습과 빗대어 아들 세습은 하나님의 교회를 안정적으로 지켜낼 수 있는 최상의 대안이라는 ‘기형적 정당성’이 확산됐다.

이후 금란, 임마누엘, 숭의감리, 만나 등 감리교 대표적 교회들이 부자세습을 단행했고, 소망교회는 아들에게 100억 대의 성전을 따로 지어 내보내는 재산 나누기식 세습을, 한국CCC는 사위에게 대표직을 물려주는 일들이 일어났다. 이밖에도 친구의 교회와 담임을 교차로 세우는 교회 바꾸기 세습과 동사목사를 활용한 세습 등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동사목사 제도를 도입한 왕성교회는 아들 교회와 합병을 결정하면서 편법세습을 시작했다. 통합 측 한 대형교회도 세습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도는 가운데 이번 봄노회에서 ‘동사목사’ 제도화에 대한 헌의와 부목사 담임목사직 승계에 대한 헌의가 올라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동사목사는 교회의 성도 수가 많아 혼자 감당하기 힘들 때 다른 한 사람의 목회자를 세워 공동 목회를 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동등한 자격을 가지고 같은 범주의 일을 하는 목사가 동사목사다. 교회법에서 허락하지 않는 이 제도가 최근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아들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도록 아버지가 곁에서 지킨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세습의 안착을 권력자가 지근거리에서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그만큼 최근 대형교회들은 부자 세습에 집착하는 경향을 드러낸다.

세습은 왜 문제가 될까. 백석대 교회사 임원택 교수는 “특권을 물려주는 것에 대해 ‘세습’이라는 부정적인 단어가 붙는다”며 “오늘날 한국 개신교회일각에서 보게 되는 담임 목사직 세습의 모습은 너무나 큰 부끄러움으로 남는다”고 지적했다.

이는 거꾸로 ‘특권’이 없다면 세습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세습에 대한 논란은 교회 안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으로도 개인이 세운 기업을 아들에게 물려주는 ‘족벌경영’은 부도덕의 상징처럼 치부된다. 기업의 공적 영역에서 아들에게 이어지는 ‘사유화’는 민주주의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 세습을 인정하는 교회는 종북좌파?

국민의 의견을 묻지 않고 세습을 강행하는 곳은 독재국가다. 알려진 대로 북한은 김정일 사후 아들 김정은에게 나라를 맡겼다. ‘3대 세습’ 즉 3대에 이어 권력이 승계된 것이다. 당시 미래목회포럼(대표:정성진)은 “김정은 3대 세습은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고, 그대로 방치하면 통일을 여는데 큰 장애물이 될 것”이라며 “전 세계 공산 사회에서 3대를 세습한 경우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3대로 이어지는 세습은 강력한 독재국가에서나 가능한 일. 그만큼 민중에게 자유가 없다는 뜻이다.

안타깝게도 김정일 사후 앞 다투어 논평을 내던 기독교계는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권력을 계승한다는 점에서 북한의 세습과 한국 교회의 목회세습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아는 듯 했다.

미래목회포럼은 성명에서 “북한의 3대 세습은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렇다면 ‘기립투표’라는 비민주적 방법을 동원해 교회를 물려주는 세습은 누구에게 죄를 짓는 것일까.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것을 탐하는 죄, 교회의 개념을 파괴한 죄를 꼽았다. 조성돈 교수는 “원칙적으로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다. 그 안에 어려움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문제없이 넘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세습으로 인해 교회 안에서는 성도의 신뢰를, 사회적으로는 한국 교회 전체의 신뢰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이다. 일반 개인 기업도 전문 경영인을 세우는 시대에 교회가 ‘세습’을 계속하는 것은 낯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임원택 교수는 “교회를 성장시킨 것은 목사 개인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며 “수고 후에도 우리는 무익한 종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목회자의 자세를 강조했다.

로마 가톨릭 독신제도를 통해 세습의 문제를 비판한 임 교수는 “중세 로마 가톨릭 교회의 독신제도 강화는 세습과 관련해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된다”며 “교회재산 누수 방지라는 목적으로 강화된 독신제도는 결국 전도하고 선교하는 교회 본연의 사명에 그 재산이 쓰이게 하고자 하는 목적이 담겨 있었다”고 설명했다. 즉, 이 같은 설명 이면에는 교회 재산 누수 방지를 위해 독신제도를 강화한 가톨릭을 비판하며 개혁에 나선 개신교가 소위 ‘특권’을 아들과 사위에게 물려주는 세습을 자행하는 것 자체가 모순된다는 비판이다.

95세 노구를 이끌고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준 것을 회개한다”고 밝힌 김창인 목사의 발언은 교회 내부의 정치싸움에서 시작된 의도적 발언이라 할지라도 ‘세습’을 당연시 하는 한국 교회에 다시금 화두를 만들어낸 사건이었음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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