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제78강) 하나님을 사랑할 때 사람이 사랑스러워지는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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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제78강) 하나님을 사랑할 때 사람이 사랑스러워지는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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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6.05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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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의 계명에 관한 질문

우리는 제사나 예배를 성전에만 제한시킨다. 그러나 주님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제사이고 예배임을 가르쳐주신다.

부활에 대한 사두개인들의 도전적 질문이 무위로 끝난 후, 이제 율법교사가 등장하여 주님에게 질문을 던졌다(막 12:28~34). 이번에는 모든 율법 중 큰 계명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마가복음에서 이 이야기는 마태복음과는 달리 주님에 대한 시험이 아니라, 주님이 사두개인들의 공격을 잘 방어한 것을 내심 기뻐하면서 서기관 중 하나가 주님과 나눈 대화로 이루어져 있으며, 결말도 긍정적으로 끝나고 있다.

반면에 누가복음에서는 이 부분의 이야기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와 연결되면서 더욱 간략하게 소개되고 있지만, 역시 시험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대략 그 흐름은 마태복음과 유사한 것으로 등장한다(눅 10:25~28). 공관복음 중 마가복음이 최고의 계명에 대한 기사를 가장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마태와 누가는 마가의 기사를 간결하게 요약하고 정리한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면 이제 도대체 율법교사가 시험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사실 계명 중 어느 것이 크냐는 논의는 유대교 랍비들 사이의 논쟁점 중 하나였는데, 그들은 대체로 모든 계명을 동등하게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만일 주님이 계명들 사이의 중요도를 차별화시켜 순서를 매긴다면 이는 정통적 견해에서 벗어난 것으로써 대적들의 함정에 걸려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오히려 율법의 말씀을 들어서 가장 정통적인 방법으로 이 질문에 답하심으로써 그 시험을 피할 뿐 아니라 완벽한 율법 해설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첫째로, 주님이 언급한 계명은 신명기 6:5에 나오는 쉐마 말씀으로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든 예배 때마다 처음으로 선포하는 말씀이자 동시에 이스라엘 아이들이 제일 먼저 암기하는 말씀이며, 또한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신앙고백으로 기도할 때 암송하는 말씀이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참고, 신 6:6~9; 11:13~21; 민 15:37~41).

그것은 하나님께 향한 전적인 헌신의 사랑이며, 우리의 모든 생각과 사고를 지배하는 사랑이고, 우리의 모든 행동의 원동력이 되는 사랑이다. 신앙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헌신이 포함된 사랑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둘째로 주님이 언급한 계명은 레위기 19:18으로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함을 가리킨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을 병렬하여 제시한 것이다. 이것은 당대의 관습을 놓고 볼 때, 참으로 새롭고 유일한 방식인 것이다.

한 마디로, 그것은 모든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개입에 대한 대응적 요소인데, 마침내 주님의 삶과 죽음을 통해 여실하게 증명된 것이기도 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 계명이 제시된 순서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첫째로 하나님 사랑이 우선이고, 다음이 사람 사랑이다. 이러한 순서는, 오직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할 때 사람이 사랑스러워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사람은 하나님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 계명은 동등하고 동시적인 것으로써 결코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체할 수는 없다.

마가는 이 두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이 없다고 말하지만(막 12:31), 마태는 이 두 계명을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으로 설명한다(마 22:40). 그러나 헬라어 원문에는 ‘강령’이란 말은 없으며, 이 문장을 직역하면 ‘온 율법과 선지자가 이 두 계명에 걸려있다’가 된다. 마치 옷걸이에 옷이 걸려있듯이 사랑 계명에 성경 전체가 옷처럼 걸려있는 셈이 되는 것이다. 즉 주님은 사랑을 율법과 계명이 시행되는 근본 원리로서 설명하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바울 사도는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선언하였으며(롬 13:10), 야고보 사도 또한 사랑을 ‘최고한 법’이라고 선포하였던 것이다(약 2:8).

이 부분에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생략된 구절이 있는데, 그것은 마가복음 12장 32~33절이다.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이것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성전 제사보다 낫다고 말하는 것인데, 이런 사상을 우리는 히브리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히 13:16) 우리는 제사나 예배를 성전에만 제한시키는 경향에 젖어 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우리의 제사이고 예배임을 가르쳐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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