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승 스무 해, 처음 간 교회에서 주님을 만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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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승 스무 해, 처음 간 교회에서 주님을 만났죠”
  • 김동근 기자
  • 승인 2012.05.23 15: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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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필사로 감사의 삶 사는 루터대 한선 집사

▲ 한선 집사는 책상앞에 앉아 하루일과중 틈틈이 성경을 적는다.
 
루터대학교 총무처에서 근무하는 한선 집사는 특별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한 집사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에는 보살이었던 할머니와 먹고 잤던 절, 그리고 무서운 아버지에게 맞을까 도망 다니기 일쑤였던 모습만 남아있다.

그는 9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무서워 절에 들어갔다. 절에서 밥도 하고 나물도 캐 요리도 했다. 심부름은 도맡아 했고, 청소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그를 다른 사람들은 ‘동자승’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스무 살이 됐다. 스무 살이 된 그 해. 스님 한 분이 그를 데리고 서울의 봉은사를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불을 받고, ‘법진’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저 아버지가 무서워 들어온 절에서 그는 승려가 됐다.

# 승려에서 집사로
불을 받았지만 절에서는 그를 승려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동자승으로 생각할 뿐이었다. 전에 하던 일을 계속 하며 시간을 보냈다. 부처에 대한 깨달음 같은 것은 없었다. 처음 절에 온 이유가 도망이었지만, 나이를 먹으니 갈 곳이 없었다. 그렇게 스물여섯이 됐다.무작정 절을 뛰쳐 나왔다.

삶의 전부를 그곳에서 보냈지만, 기쁨도 행복도 존재하지 않았다. 정처 없이 떠돌았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그저 목숨만 부지하며 살았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목수 기술을 배웠다. 나무를 깎고, 가구를 만들며 무의미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그는 어딘가를 향해 떠돌았다.

하룻밤 묵기 위해 찾았던 외할머니 댁. 외가도 모두 불교집안이었다. 하지만 외할머니만큼은 새벽기도회도 빠지지 않으시는 등 늘 열심히 교회에 다니셨다. 외할머니는 새벽이면 일어나 손자들에게 “나 좀 교회까지 데려다줄 사람 없니?”하고 부탁하셨다. 하지만 어린 사촌동생들은 못들은 채 귀를 막으며 잠을 청했다.
 
“이것들아! 내가 어떻게 교회에 가냐? 어서 일어나서 교회 모셔다 드려! 나는 중이라고! 중이 어떻게 교회에 가?”

동생들을 그렇게 다그쳤지만 일어나지 않았고 결국 할머니를 모셔다 드리는 일은 그의 차지가 됐다. 봄, 여름, 가을, 겨울. 2년 간 할머니를 모셔다 드리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밖에서 기다렸다. 예배당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중이었으니까.

하루는 목사가 나와 말을 걸었다.

“한 선생님, 들어오시죠. 밖이 많이 춥습니다.”
“아뇨 괜찮아요. 저는 밖에서 기다릴랍니다.”

그렇게 목사의 권면도 거절하며 그저 할머니를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날 새벽 힘이 들어 새벽예배에 가지 못하겠다는 할머니께서 그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셨다.

“교회 주보 한 장 가져오고, 설교말씀을 듣고 이야기 좀 해다오.”
“할머니, 내가 어떻게 교회에 가? 나는 중인데. 난 못 가 할머니.”

막연히 교회가 무서웠던 그는 고민과 갈등을 거듭하다 할머니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교회 문턱을 넘었다. 그리고 말씀을 들었다.‘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지금까지 그의 마음에 남은 한 구절의 말씀이다.

교회에 다녀온 그의 이야기와 목사님의 설교를 전해들은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셨다. 또 크게 감동하셨다. 그때 그의 할머니는 “승려였던 손자의 입에서 성경말씀이 나오니 더욱 은혜가 된다”고 말씀하셨다.그 후 할머니와 함께 그는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교회는 계속 다녔다. 어느새 중이었던 한 씨는 집사가 되어 있었다.

얼마 후 외가를 찾은 한 성도의 소개로 1993년 11월 14일 마흔 한 살의 나이로 지금의 직장 루터대학교에 경비로 입사했다. 승려였던 그는 교회를 넘어 이번에는 신학대학에 새 직장을 얻게 됐다.

# 열 번의 성경 필사
루터대에 입사해 20년 동안 그가 꾸준히 해온 일이 있다. 바로 성경을 쓰는 것이다. 처음엔 한글을 몰라 학생들에게 한글을 배웠다. 하지만 그는 창피해 하지 않았다. 그만큼 성경을 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지금까지 열 차례 성경을 필사했다.

필사한 성경들은 신학생들의 눈길을 끌었고, 그냥 달라고 부탁만 하면 한 집사는 망설임 없이 자신이 필사한 성경을 내주었다. 그리고 열 번째 성경은 루터대학교의 신관이 개관하면서 학교에 기증했다. 그의 열 번째 성경 필사본은 신관 입구에 전시돼 있다.

“성경을 쓰다 너무 힘이 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걸 안 쓰면 또 허전해서 다시 쓰게 되는 겁니다.”

아홉 번을 마지막으로 필사를 그만두려 생각했던 한 집사는 지금 열한 번째 성경을 필사하고 있다. 그리고 또 성경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생기면 주저 없이 선물하겠다고 했다.

“오늘은 그냥 편하게 자야지 하면서도 필사 노트를 펴놓긴 하거든요. 그렇게 왔다 갔다 하다보면 성경에 눈이 가고 오늘은 이런 말씀을 나에게 주시는구나 해요. 또 조금만 써볼까 하고 앉으면 한 두 시간은 금방이에요.”

사실 그는 맡은 일이 많다. 경비뿐만 아니라 학교 조경에서부터 환경미화까지 팔을 걷어붙인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스스로 나서서 더러운 것은 치우고 깨끗하게 가꾼다. 그렇게 시간이 없는 와중에도 늘 성경을 쓴다. 우리나라의 크리스천 중 성경 일독을 하지 못한 사람도 아직 많이 있다는 말에 “에이 거짓말”하며 웃어넘겼다.

성경을 열 번 넘게 쓴 힘의 원천은 그의 순박함이었을 것이다. 한 집사는 성경필사의 유익에 대해 ‘감사한 삶’이라고 말했다. 말씀을 읽고 쓰며 많은 일들에 감사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주어진 일에 충실하고 감사하는 삶,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기본을 한 집사는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써내려가고 있었다.
 
# 나눔의 기쁨
한 집사의 나눔은 성경에서 끝나지 않는다. 젊은 시절 배운 목수 기술로 나무를 사다 깎아 말씀을 새기는 것이 취미다. 깎아놓은 나무를 방에 걸어두고, 지나가다 달라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내준다.

간혹 말씀을 새겨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순식간에 작품 하나가 탄생한다. 많은 월급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받은 월급의 일부분은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사용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누는 삶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한 집사. 그는 오늘도 성경을 쓴다.

“내가 가진 것 많아봐야 뭐해요. 없는 사람 나눠주며 사는 거지. 김 기자. 좋아하는 말씀 있어요? 내가 새겨주고 싶어서….”

매일 써내려가는 말씀은 그의 삶에 전부가 되었고 나눔은 그에게 있어 삶의 일부가 되었다.

▲ 모처럼 쉬는 날 한선 집사와 동생 한경 씨가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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