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75강) 먼저 부름 받은 유대인들이 버림받은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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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75강) 먼저 부름 받은 유대인들이 버림받은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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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5.16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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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

받은바 은혜를 감사함으로 인정하지 못할 때 오히려 있는 것마저
상실하게 되는 비극을 맞을수도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로 알려진 이야기는 삼중전승(triple tradition)으로써 공관복음 모두에 기록되어 있다(막 12:1~12; 마 21:33~46; 눅 20:9~18). 먼저 예수님이 애초에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 청중들에게 하신 말씀의 의미는 다분히 이방인의 구원과 관련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선 비유가 언급되어진 당대의 정황은 다음과 같다.

팔레스타인과 같은 로마제국의 식민지에서 많은 토지 및 부동산은 외국인들이 소유하였고, 그것을 소작농들이 임대받아 경작하였다. 그런데 소작농들은 나라의 정치적 불안정과 경제적 불황으로 인하여 종종 부재(不在) 지주에게 지불해야 할 소출(일종의 월세, rent)을 내지 않곤 하였다.

이럴 경우 종종 폭력이 행사될 수도 있었고, 끝내 그것은 살인으로 이어지곤 하였다. 그런 과정 중 만일 토지의 상속자가 죽게 된다면 그것은 ‘임자 없는 토지’로 선언되었고, 그 경우 실제 그 땅의 사용자가 소유권을 갖게 되기도 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가복음에서 주님은 당대 유대나라의 일상적 경험으로부터 이 비유를 소개하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유대인들의 잘못 된 태도를 설명하는데 활용하고 있다. 아마도 이 이야기를 들은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을 표상하는 포도원이 등장하는 이사야의 포도원 비유를 떠올리게 되었을 것이다(사 5:1~7). 그러므로 유대 관헌들은 불가피하게 주님이 이 비유를 자기들을 염두에 두고 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막 12:12).

그렇다면 이 비유는 초대교회에서 어떻게 활용되었을까? 아마도 이것을 일종의 알레고리로 이해하면서,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으로, 주인의 종들은 선지자들로, 아들은 예수님으로, 소작농부들은 유대교 지도자들로, 그리고 다른 사람들(막 12:9)은 이방인들로써 풀이하였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 비유는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엄중한 결산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하나님은 측량할 수 없는 인내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참으시며, 재삼 자신의 종들, 즉 선지자들을 그들에게 보내시었다.

이처럼 하나님이 자신의 종들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신 까닭은 언약 백성의 선택에 상응하는 삶의 열매를 요구하기 위함이었다(참 렘 7:25; 25:4; 슥 1:6). 그러나 그들은 끝내 그 요구에 응하지 않았고, 그리하여 그 주인은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보냈는데, 이는 하나님이 몸소 오신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농부들은 그 아들을 상속자로 간주하여 죽이고 말았는데, 이는 마가공동체에게 있어서 유대인들에 의한 그리스도의 죽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 결과 포도원이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진다는 것은(막 12:9), 이방인으로 구성된 마가공동체의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부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해석의 흔적이 누가복음에 남아있음을 보게 되는데, 마가복음에 따르면 아들은 포도원 안에서 죽임을 당하고 밖으로 던져지는데(“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 막 12:8), 누가는 마태복음처럼 살인이 포도원 밖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포도원 밖으로 내쫓아 죽였느니라 …”, 눅 20:15). 이럼으로써 예수님의 죽음이 성문 밖에서 일어난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히 13:12). 주님의 이 비유를 듣고 무리들이 보인 반응(“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God forbid !, 눅 20:16)은 아마도 그것이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였음을 보여준다.

먼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초대받았지만, 그 하나님의 진정한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거역하다가 결국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 죽임으로써 끝내 배신한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구원의 자리를 이방인에게 빼앗기는 운명을 당하게 된 것을 비유는 전하고 있다(참고, 행 13:46, “…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비록 먼저 부름 받는 특혜가 주어졌기는 하였지만, 그것을 특혜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서 감사하지 못할 때 오히려 그 자리를 빼앗기고 마는 비극을 그들은 체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도 이런 진리는 마찬가지 일 줄로 믿는다. 받은바 은혜를 감사함으로 인정하지 못할 때 오히려 있는 것마저 상실하게 되는 비극을 맞을 수도 있음을 우리는 언제나 겸허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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