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목회자 납세’ 여전히 논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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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목회자 납세’ 여전히 논쟁 중
  • 최창민 기자
  • 승인 2012.05.08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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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부분 인식 개선...오해와 왜곡 여전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교회협)를 중심으로 최근 목회자 납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교회협 산하 한국교회발전연구원은 지난 2월 23일 ‘교회의 재정과 목회자의 세금납부’라는 주제로 발표회를 개최하고 목회자 납세와 관련해 신학적 정당성과 현실적 실현가능성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이날 정리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교회협은 지난달 26일 제60회기 2회 정기 실행위원회에서 ‘목회자 납세에 대한 교회협 정책 채택에 관한 건’을 통해 연구 집행기구 구성을 결의했다. 하지만 이날 진행된 토론에서는 일선 목회자들의 반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예상보다 큰 반대 목소리를 접한 임원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신학적 정체성과는 무관하게 다양한 교단이 대표들이 반대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교회협 김종훈 회장은 “발표회와 임원회를 거쳤기 때문에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밝히고 “그러나 반발이 큰 만큼 속도전보다는 지역 순회 공청회 등을 통해 여론을 형성해가는 것이 먼저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전문위원 구성을 시작으로 교회협은 합리적 목회자 납세 조항 연구, 올해 회원교단 총회에서 목회자 납세 결의, 교회협 총회를 통한 납세 결의 등의 과정을 통해 개신교계의 신뢰도를 회복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날 표출된 일선 교단 지도자들의 반발로 인해 계획의 전면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

이에 본지는 4회에 걸쳐 △목회자 납세에 대한 찬반 논란 △목회자 납세 사례와 방법 △천주교, 불교 등 타종교의 사례 △목회자 납세를 준비해야 하는 이유 등의 순서로 이 문제에 접근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국민개세주의 관점에서 특별한 예외를 인정하기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고 다른 조치를 통해서라도 예외 없이 소득에 대해서는 과세를 해야 한다.”

지난 3월 19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종교인 과세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다. 이 발언을 시작으로 기독교계 내에서 종교인 과세에 대한 논의가 다시 불붙었다. 지난 2006년 국세청이 기재부에 종교인과세에 대한 질의를 보내면서 논란이 시작된 후 거의 6년 만이다. 종교인 과세, 특히 기독교 내에서는 목회자 납세 문제가 뜨거운 감자가 됐다.

박 장관이 언급한 ‘국민개세주의’는 한 국가의 국민이 된 도리로서 모든 국민은 적은 액수라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과거 봉건제 시대에 면세특권을 누리던 귀족층에게도 세금을 걷기 위해 차용된 논리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면세점에 포함된 국민을 제외하고 아무리 적은 소득을 얻는 사람이라도 조금의 세금은 내야 한다는 의미로 발전했다.

이 같은 국민개세주의는 우리나라 헌법 제38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는 조항을 통해 확고히 하고 있다. 물론 소득형편에 맞게 납세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소득이 없는 사람에게까지 납세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 논리는 자연스럽게 목회자 급여를 소득으로 볼 수 있느냐는 논의로 이어진다. 이와 관련해서 기독교계 내에서는 목회자의 소득도 근로소득이라고 보는 관점과, 근로가 아닌 종교적 봉사이기 때문에 과세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보는 관점이 대립하고 있다. 현재 국세청은 자발적 납부 목회자에게만 근로소득세를 징수하고 있다. 하지만 교단법은 목회자에게 주는 생활비는 생계를 위한 사례비이기 때문에 근로소득세 납부 의무가 없다고 본다.

지난 2월 23일 열린 한국교회발전연구원 발표회에서 유경동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는 “종교인 소득에 대한 과세는 국민의 납세의무이며 이를 어기게 되면 공평과세와 조세평등주의를 위반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신학적 관점에 대해 유 교수는 “교회에 대한 세금 논쟁은 단지 세금의 법적 도덕적 문제에 대한 것이 아니라 목회자는 세금에 대하여 얼마나 윤리적으로 생각하는지에 대한 인식의 전환에 달려있다”며 “교회와 사회적 규범이 요구하는 정당성을 외면하지 말고 사회적 규범보다 훨씬 앞서는 도덕성을 발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동식 목사(빛과소금교회)는 “국가가 교회의 활동과 기독교인들의 신앙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지켜주고 교회는 기꺼이 세금을 내는 것”이라며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현대 국가에서 세금 문제는 작은 교회 목회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한 혜택도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교회협 실행위에서 각 교단 임원들을 통해 나타난 납세에 대한 저항은 상당한 것이었다. 세금 사용에 대한 불만도 있었다. 기장총회 배태진 총무는 “현 정권 하에서 세금이 4대강 사업, 제주해군기지 등 국민의 동의와 다르게 쓰여서 내기가 싫다”면서도 “대사회적 교회의 이미지 제고 등에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실적 어려움도 호소했다. 감리교 이규학 감독은 “80%가 미자립 교회인 한국 교회의 현실을 정확히 볼 필요가 있다”며 “너무 급하게 목회자 납세를 추진하는 것은 안 된다”고 말했다.

시기 상조론도 많았다. 복음교단 하규철 총무는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세금을 내라고 한 것도 아닌데 왜 서두르느냐. 과세대상도 아닌데 먼저 내겠다고 위원회를 조직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고지서가 나오면 논의하자”고 목회자 납세 논의 자체를 일축했다. 구세군 임헌택 사관도 “당장 정책을 채택하기엔 빠르다. 무슨 일을 하게 되면 정책이 철두철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는 반대로 지금이 시기적으로 적합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예장 통합총회 손달익 총회장은 “어떤 정책은 시기를 놓치면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며 “납세 문제에 대해 한국 사회 전체가 교회협의 대답을 기다리는 입장인데 빠를수록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억지로 떠밀려서 내는 모양새가 되면 실패하는 것”이라며 “15인 위원회를 구성해 빨리 결론을 내는 것도 교회 전체를 위해서 좋다”고 주장했다.

성공회 김근상 주교는 “공청회 등을 통해 납세문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해보자는 방향은 이미 잡혀 있는 것”이라며 “납세를 다시 논의하자는 것은 이 안을 폐기하자는 것과 다를바 없다”며 납세에 관한 진전된 논의를 촉구했다.

교회협 김영주 총무도 “목회자 납세와 관련해 수년 전부터 논의돼 왔다. 그동안 충분히 논의했다”며 “상당한 교회들이 이미 하고 있지만, 예민한 문제여서 교단 결의가 아직 없을 뿐”이라며 위원회 구성을 요청했다.

현재로서는 목회자 납세와 관련해 찬반양론이 팽팽한 상황. 하지만 처음 목회자 납세 논란이 불거졌던 6년 전에 납세에 대한 당위성, 신학적 검토 등은 이미 진척돼 있다는 것이 교단 지도자들의 전반적인 견해였다.

교계 한 관계자는 “한국 교회 전체가 납세를 결의해도 80~85% 정도는 면세점 이하”라며 “상당수 대형교회들은 이미 자발적으로 세금을 내고 있고 납세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여전히 목회자 납세에 대한 오해가 많고, 정보가 부족하거나 왜곡돼 있는 경우가 많다”며 “교회협의회를 중심으로 지역별 순회 공청회 등을 통해 한국 교회 전반의 의견을 청취하고 교단 내에서 실질적이고 심도 깊은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여론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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