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개혁, 그 절절한 호소에 대한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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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개혁, 그 절절한 호소에 대한 응답
  • 최창민 기자
  • 승인 2012.04.30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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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개혁실천연대 10년을 돌아본다 (1) 창립과 논쟁

한국 교회의 개혁을 외쳐온 교회개혁실천연대(이하 개혁연대)가 올해로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창립 당시 개혁연대는 한국 교회의 위기를 두 가지로 진단했다. 첫째는 한국 교회가 물량주의에 물들어 있으며, 기복적이고 이원론적인 신앙에 깊이 빠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진단은 이 같은 상황을 직시하지 못하고 교회 개혁을 위한 노력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진단에도 큰 의미가 있지만, 두 번째 진단은 더욱 뼈아픈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이른바 교회가 스스로를 진단하고 처방을 내려 치유할 수 있는 자정 능력을 상실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개혁연대의 창립과 관련해 사무국장 남오성 목사는 “시대적으로 절실한 요청이 존재했다”는 말로 창립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교회 개혁 문제에 대해 선언적인 주장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직접적이고 집중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단일한 창구가 필요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1990년대 후반 교회 개혁 운동은 단발적이고 개별적으로 존재했다. 그 중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단체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 기윤실은 건강교회운동본부를 통해 교회 개혁의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2000년대 초 소망교회, CCC 등 세습 논란이 불거졌고, 세습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기윤실 내부에서 격론이 오고갔다.

교회 세습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은 같았지만, 운동의 방향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손봉호, 홍정길 등 기윤실 지도그룹은 “교회와 같이 가야 한다”는 현실론을 주장했다. 반면 박득훈, 오세택 등 건강교회운동본부 활동가들은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대응으로 교회를 선도해야 한다”며 맞섰다. 결국 건강교회운동본부는 기윤실에서 독립을 선택했다. 교회 개혁 활동가들의 절박함과 시대적 요청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2002년 11월 24일 산정현교회에 130여 명이 모였다. 개혁연대의 출발을 선언하는 자리에 참석한 손봉호 교수는 “이를 악물고 축하한다”는 말로 창립 과정의 앙금을 재치 있게 털어냈다. 

이에 대해 남오성 국장은 “당시의 분열은 아픈 역사였지만, 지금에 와서는 결과적으로 업무 분담이 잘됐다”며 “기윤실과 개혁연대는 여러 가지 현안에 대해 공동대응을 하고 있으며, 현실론과 실천론 사이에서 지금도 논쟁하며 한국 교회 건강성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개혁연대 창립에 참여한 운동가들은 비장했다. 창립선언문에서 이들은 “물량주의, 기복신앙, 이원론적 신앙관에 깊이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현실, 게다가 교회개혁을 위한 노력은 구심점을 일은 채 무력감에 빠져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개혁연대는 이어 “기성교회들이 비성경적, 비복음적 관행과 타성에 젖어온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며 “그런데도 양식 있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 평신도들은 교단과 교회정치의 횡포 앞에 무력하게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 “한국 교회는 이제 세속과의 타협에서 오는 위장된 평화를 떨치고 무지와 혼돈과 탐욕과 독선을 벗어버림으로써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에 응답해야 한다”며 “우리는 끝끝내 ‘남은 자들’의 결집을 위한 역사적 구심점이 될 것과 한국 사회의 영적 진운을 위한 등에 역할을 적극적으로 떠맡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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