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효성칼럼] 오른 손이 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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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효성칼럼] 오른 손이 한 것을
  • 방효성
  • 승인 2012.04.19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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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효성의 성지를 찾아서 (3)

고난주간이 되면 떠오르는 한편의 영화가 있다. 2004년 개봉한 맬 깁슨 주연의 ‘The Passion of the Christ’란 영화다. 예수의 생애를 주제로 만들어진 많은 영화가 있지만, 지금도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영화 중 하나다. 이 영화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유대인들과 로마 병정들에게 모욕과 채찍으로 맞으며 고통당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 등이 끔찍스러울 만큼 사실적으로 묘사돼 생생히 남아 있다. 그 후로도 부활절이 되면 교회에서 영화의 장면을 자주 접하게 된다. 볼 때 마다 무뎌진 가슴이 쓰리도록 숙연해진다.

고난주간을 맞으며 우리들의 죄를 위하여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십자가형과 그 고통을 생각하게 된다. 필자가 발표한 행위예술 작품 중에 몸에서 느끼는 통증 혹은 고통에 대한 몸에 태도를 보여주는 퍼포먼스가 있다. 한국 실험 미술제에서 발표한 퍼포먼스 작품이다. 관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테이블에 앉아 있는 행위자는 오른손에 가위를 갖고 왼팔에 옷소매를 천천히 오리기 시작한다. 왼쪽 옷소매가 갈기갈기 잘려나간다. 팔뚝이 들어난다. 다음에 테이블에 놓인 침을 들고 팔뚝에 찌르기 시작한다.

침구사가 침을 놓듯이 팔뚝에 침이 하나하나 박히기 시작한다. 누구나 주사 맞기를 좋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침을 맞는 것도 고통을 동반한다. 살에 박히는 바늘을 보는 이들도 마치 자신의 신체에 찔리는 것처럼 눈살을 찌푸린다. 오른손으로 왼팔 뚝에 천연덕스럽게 침을 놓는다. 어느새 팔뚝에 수십 개의 침이 박혀 있다.

그 다음 행위자는 스탬프를 가지고 관객들 앞으로 다가 선다. 관객들의 손바닥과 팔목에 스탬프를 찍어준다. 무슨 글씨가 쓰여 있다. 궁금해 하던 관객들은 스탬프로 찍힌 자국을 보고 지금의 행위가 무엇인가를 느낀다. 거기에는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6:3)라는 말씀을 차용하여 제목으로 사용한 행위예술이다.

오른손으로 왼쪽 팔에 침을 박은 행위는 한 지체이지만 결국 자기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잘못을 범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힘의 논리 속에 약자에게 억압을 가하고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다. 이것은 이웃과 사회 속에 흔히 일어나는 모습이 아닌가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그 행위와 고통은 언젠가 오른손에게도 예외 없이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나와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는 남의 고통이 언젠가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자신의 신체로부터 가족과 이웃 그리고 사회와 국가, 지구촌이 하나의 공동체로 운명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같은 배를 함께 탄 우리가 나와 상관없는 일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이 땅에 전쟁과 기아와 억압과 폭력이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옆구리에는 창에 찔리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셨다. 죽기까지 아낌없이 몸을 내어주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이 땅에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시고 화평을 주셨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 하라 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부활의 아침을 감격으로 기다린다.

방효성 (한국미술인선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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