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끝에서 느껴지는 말씀, 주님은 그렇게 다가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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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끝에서 느껴지는 말씀, 주님은 그렇게 다가오셨습니다”
  • 이덕형 기자
  • 승인 2012.04.04 16: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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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딛고 신앙으로 꿈을 이룬 , KBS 이 창 훈 아나운서

나와 남의 차이는 ‘시각’이 아니라 ‘신앙’
내 삶의 열쇠는 단단한 하나님과의 관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주님뿐이었다.

보이지 않아 듣기 위해 애써야 했고, 살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원망하고 미워해야할 대상도, 탄식하고 하소연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의 삶은 그렇게 시작됐고 지금까지 이어졌다. 손가락 끝에서 하나하나 느껴지는 말씀으로 주님은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주님을 알고난 후 매순간 그분을 의지했고, 감사했다.

“누가 나를 인도하는지는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 대상이 누군지에 따라 가는 길 이 안전할 수도,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험과 믿음으로 제 눈이 되어주신 주님이 있어 저는 지금껏 안전히 살아왔습니다.”

KBS 신관 홀에서 만난 이창훈 아나운서(26, 은평침례교회). 화창한 오후 말끔한 정장 차림의 그는 평범하지만, 남들과는 다른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기 시작했다.

# 나는 뉴스 진행자다
“내 노력이 헛되지 않게 즐거움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노력이 뉴스를 통해 드러날 때 저는 세상에서 가장 즐겁습니다.”

지난해 7월 이 씨는 KBS 보도본부 프리랜서 뉴스진행자에 52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아나운서로 채용됐다. 이후 연수원에서 이어진 바쁜 시간. 뉴스 진행 시 시선 처리법, 기사의 이해도를 높이는 법, 발음공부 등 익혀야 할 게 많았다. 그만큼 노력도 해왔고, 방법은 연습밖에 없었다.

정신없이 배우고 또 익혀왔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KBS 아나운서로 뽑힌 후 지난 8월부터 쉬지 않고 달려왔다.

“사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기도로 준비하며 방송을 통해 계속해서 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에게 몇 배의 노력을 요구했다. 그래서 같은 일을 위해 그는 수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그렇게 선배 아나운서의 도움과 연습 속에서 이창훈 씨는 차츰 아나운서로서의 모습을 갖춰갔다. 하지만 바쁜 시간 속에서도 버릴 수 없었던 것은 ‘신앙의 끈’. 놓으면 안 되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고, 그 일을 통해 세상에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끈을 놓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지금까지 힘들다고 ‘주님, 뽑아주신 사명을 감당할 때까지 잠시만 기다려주세요’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네요.”

뜨거운 체험은 없었지만 큰 기복 없이 꾸준히 이어온 신앙생활은 그를 잔잔하게 하나님께로 인도했다. 사회생활이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신앙생활을 게을리 한 적은 없었다. 그에게는 언제나 주님이 최우선이었다.

# 나와 남이 다른 점
“차별요? 저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일부러 차별한다는 생각은 안 해봤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다면 ‘사람들이 모르는 점을 알려주면 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사람들이 모르는 것. 그것도, ‘주님’이었다. 내게있는 신앙과 가치관은 남들과 다른점이었다. 그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언제나 자신에게 따라붙는 ‘시각장애인’이라는 단어에서 ‘인’즉 사람이라는 단어만 상대의 기억 속에 남게 해달라고 기도해왔다. ‘사람’이란 단어에는 신체적 차이가 차별의 조건이 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대학시절, 그런 자신을 알리기 위해 엠티도 빠지지 않았고 동아리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남들과 같이 나로 살아가는 노력은 늘 동일합니다. 설사 차별이 있다 하더라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긍정적 에너지 때문이었다. 이 씨는 자신이 갖고 있는 달란트 중 좋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긍정적 에너지’는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말한다. 부정적일 수도 있고 겁도 많은데 그것을 이겨낼 수 있게 돕는 분은 주님이라는 고백을 함께 전했다.

“저는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마음이 시선을 바꾸니까요. 비록 현실은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제 삶은 그렇게 바뀌어 왔습니다.”

# 험난한 여정 길
그렇다고 지나온 여정이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도전을 계속하던 탓에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지나고 보면 모든 순간이 고비였어요. 어려서는 아파서, 중ㆍ고등학교 때는 신앙과 삶의 괴리 문제 때문에, 그리고 대학교 때는 새로운 인간관계와 진로 문제로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 씨는 어린 시절 뇌척수막염만 두 번 앓았다.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찾아왔던 병마는 그의 두 시력을 앗아갔다. 어머니 이상녀 씨는 아이를 품고 잃어버린 시력을 되찾아주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다.
하지만 별 차도 없이 지나는 시간 속에 우연치 않은 계기로 주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그의 신앙은 잃어버린 아들에게 빛을 찾아주기 위한 어머니 모성애로부터 시작했다.

이후로도 경남 진주에서 서울로 올라와 한빛맹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이 씨는 잔병치레를 많이 했다. 9살 때 다시 뇌척수막염이 찾아와 집으로 내려가야 했던 일은 아픈 기억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단호한 결정에 초등학교 시절부터 가족과 떨어져 스스로 강해지는 법을 배웠다.

낯설고 두려웠지만 그곳엔 차별이 없었다. 이창훈 씨는 한빛맹학교에서 꿈을 하나씩 펼쳐나갔다. 3ㆍ4학년 때는 트럼펫을 불기 시작했고 합창단원으로도 활동하며 ‘자신감’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피아노와 베이스기타를 배우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 ‘한빛앙상블’에서 활동했던 경험은 지금 은평침례교회 찬양인도 사역으로 연결될 만큼 값진 것이었다. 사춘기 시절에는 신앙과 삶의 괴리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보여주는 나’와 ‘내가 아는 나’에 대한 괴리감에 힘들었습니다. 내게 찾아오는 반항심을 감춘 채 신앙생활을 하던 마음이 쉼 없이 저를 괴롭히던 시기였습니다.”

사회복지사의 꿈을 안고 서울신학대학교와 숭실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시절에는 관계를 새롭게 배웠다.

“그동안의 인간관계가 같은 어려움을 안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였다면, 대학 시절에는 신체적 불편함이 없는 사람들과의 관계였기 때문에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고,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야 했습니다.”

아나운서로의 관심은 대학교 4학년 때 우연치 않게 찾아왔다. 한국시각장애 인터넷 방송에서 방송을 권했던 것이다.

“해보니까 재미있었습니다. 내 목소리를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것. 방송에서 내 말이 정리되고 정돈되는 느낌. 그 만들어져가는 느낌이 흥미롭고 재미있었습니다.”

일을 추진하는 원동력은 하나님이 주신 낙천적이고 긍적적인 성격에서 나왔다. 이 씨는 재능과 가능성은 그렇게 KBS 아나운서 시험으로까지 이어졌다.

# 빛과 소금
그는 삶이란 하나님과 동행하는 과정에서 신앙적으로 혹은 세상적으로 훈련받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빛과 소금’의 삶, 그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이라 믿고 있다.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세상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과정을 빛과 소금으로도 나타냈다.

“저는 빛을 본 적이 있어요. 어렸을 때였는데 밝고 눈부신 느낌, 이게 빛이구나 하는 느낌이 남아있습니다.”

누군가 따라가게 하는 것이 ‘빛’이라고 말하는 이 씨는 빛의 특성과 신앙에는 공통점이 많다고 전했다. 빛처럼 제대로 하나님을 따라가는 삶, 바라보게 하는 것이 신앙이라는 것이다. 소금 역시 짠맛을 가졌다는 사실보다 다른 재료가 제 맛을 내게 돕는 것이 소금의 본래 역할이라고 말했다.

“소금만으로는 쓸모가 없습니다. 소금은 음식에 들어갔을 때 의미가 있습니다. 어딘가에 들어가서 제 맛을 내는 것, 섞이면서 제 맛이 나게 하는 것, 음식이 부패하지 않게 만드는 것, 그게 신앙이 아닐까요?”

소금이 너무 짜도 쓸 수 없고, 너무 밝은 빛도 바라볼 수 없는 것처럼 신앙은 하나님을 따라가고 하나님을 제대로 바라보게 하는 삶이라는 생각을 전했다. 그는 이를 위해 “자신의 상황에 대한 공포와 근심에 매여 있기보다는 하나님과의 단단한 관계를 우선 설정하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 2011년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졸업 당시 어머니 이상녀 씨와 함께한 이창훈 아나운서, 그는 주님께서 열어주신 아나운서의 길이 아니었다면 사회복지사의 길을 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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