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하게 보낸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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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하게 보낸 8월
  • 승인 2002.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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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이 지나고 9월이 다가왔다. 8월 하면 우선 8.15 광복절이 떠오른다. 그만큼 우리민족에게 있어서 8월은 유별나게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뜻을 지닌 계절이다. 8.15를 생각하면 두 마음이 교차한다. 하나는 광복절의 기쁨이다. 광복이 그렇게 빨리 오리라고 누구도 생각지 못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이 땅에 광복이 주어졌다.

그런데 8.15하면 어찌 기쁨만 생각되겠는가. 그래서 또 한가지 생각나는 것은 착잡한 심정이다. 우리 조상들이 나라를 얼마나 엉성하게 관리하였길래 내 나라도 지키지 못하고 나라를 뺏기고 지배를 당하고 살았는가 하는 자괴감이 앞서게 된다. 엄밀히 말해서 그때 우리 조상들이 나라만 빼았겼던 것이 아니다. 역사를 보면 우리처럼 말도, 이름도 뺏기고 지배받고 살아간 나라와 민족이 또 어디있단 말인가.

우리는 8월만 되면 그래서 일본을 규탄하고 지배한 역사를 회상시켜 그때의 만행을 말해보지만 도적을 맞도록 어수룩하게 지킨 사람도 도적에게 기회를 주었다는 점에서 결코 책임이 없지 않다고 하겠다.
역사를 보면 힘을 자랑하던 시대가 있었다. 군주나 독재자 그리고 힘있는 나라들은 그 힘을 힘없는 나라들을 지배하고 착취하는데 아무런 죄의식 없이 사용했다. 그런데 그 힘을 자랑했던 사람들은 어느 순간 모두 허물어지는 것을 보았다. 물론 하늘의 심판에 의해서다. 그것이 8월만 되면 우리 민족이 생각하고 되뇌어야만 하는 지나간 역사의 뼈아픈 경험이고 우리 민족의 어두운 과거다.

그랬으면 오늘 우리 민족은 어느 나라 민족 보다 우둔한 민족도 아닐진대 이 8월이면 정쟁을 하다가도 좀 앉아서 생각을 하고 상대방을 끌어내리는 일에 몰두 하다가도 좀 진정하고 과거의 그 불행한 역사를 한번쯤이라도 되돌아보면서 오늘을 생각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래야 또 다시 이 나라의 문을 지키고 관리하는데 헛점이 없을 것이고 그렇게 점검하는 것이 역사가 주는 교훈일 것인데 이 나라는 오늘에 와서도 여전히 그때처럼 지금 여야가 허구한날 이 병역문제로 이전투구하고 8월의 그 뼈아픈 역사도 아랑곳 하지 않고 무의미하게 그냥 보내고 있으니 과연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라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싸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란 말인가.

여기서 생각되는 것은 야당 대통령후보인 이회창 총재의 입장이다. 우연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두 아들 중 하나만이라도 병역을 필했더라면 오늘 개인적으로는 이같은 수모는 없었을 것이고 국가적으로도 이같은 소모전이 없었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인격이나 살아온 철학으로 보아 돈을 주고 아들의 병역 면제를 받은 것은 아닐 것이라고 일단 믿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낱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은 그때의 정황이다. 추리해 보건대 지금 한창 문제가 되는 아들의 당시 몸무게가 병역면제 기준에서 아주 가까운 몸무게였을 것이다. 사실 부모의 심정은 누구나 다 같은 마음이다.
몸은 허약하고 기왕에 면제받으면 더 좋고, 당시는 조금 힘있는 사람이면 거의 다 그런 식으로 뺏으니까. 그래서 기왕에 조금 몸무게를 더 줄여보라 했을 것이다. 지금 호재를 만난 것 같이 떠드는 사람들 누구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이 대목에서 아쉬워하는 것이 한가지 있다. 그것은 그 당시 몸무게를 조금만 더 줄여서 면제를 받으라는 주위의 말들을 받았을 때 “아니다 밥을 조금 더 먹어서라도 몸무게를 늘려보고 대장부답게 그리고 국민의 한사람으로 군에 갔다 오라”고 왜 강하게 말하지 못했는가 하는 점이다.

그 뜻깊은 8월이 가고 9월이 다가오는 시간의 변화는 어김이 없는데 도무지 우리 나라는 먼 미래나 10년 후는 고사하고 한 달 앞도 보지 못하게 하는 이런 정치도 정치란 말인가. 그러다가 또 다시 이 땅이 문단속 잘못하여 침로당하고 수모당하는 일이 없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오늘 이 시대가 어쩌면 57년 전 그 때의 세상과 사정이 이렇게도 똑같단 말인가.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한숨만 절로 새어나온다.

이정익목사(신촌성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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