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69강) 직분은 신앙의 성장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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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69강) 직분은 신앙의 성장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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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3.28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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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베대 아들들의 허황한 간청 (3)

직분은 기회이지 결코 벼슬이 아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기회이고, 따라서 축복의 기회요 감사의 기회이다.

세베대의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3년간의 교육을 받은 후 주님께 황당한 간청을 한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직분이 신앙 성장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열 두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많은 무리들 중 철야 기도한 후 특별히 선택한 인물들로서(눅 6:12~13) 혹은 사도(使徒)라 불리는, 예수님 다음의 신앙 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님 승천 이후 예수님의 사역을 대신 감당한 대리자들이었다. 그런 까닭에 3년여 동안 특별 합숙(合宿) 훈련을 받았고, 전도를 위하여 파송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부재(不在) 시대를 대비토록 교육을 받았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얼마나 중요시하였는지를 우리는 제자들을 전도를 위해 파송하시면서 하신 다음의 말씀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 10:40~42).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과 제자들을 동일시하셨다.

그리하여 자신의 권위와 능력을 제자들에게 양도(讓渡)하심으로써 주님은 그들을 특별하게 대우하셨다. 또한 주님의 제자라는 그 이름에 걸맞도록 교육시키며 훈련을 시키셨다. 공관복음의 기록을 근거로 할 때, 예수님의 공생애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의 여론 조사를 기준으로 하여 크게 둘로 구분된다. 그 이전에 예수님은 주로 무리들과 군중들을 대상으로 교육하고, 전도하며, 치유를 베푸셨다.

그러나 무리와 관원들로부터 오해와 반대를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전략을 수정하여서 가이사랴 빌립보 사건 이후부터는 무리와 군중이 아니라, 주로 제자들을 교육하고 훈련시키는데 전념하셨다. 짧은 지상생애 동안 예수님이 그 소중한 시간의 대부분을 제자들 교육에 투자한 까닭은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로부터 이런 특별한 교육과 훈련을 받은 제자들 곧 사도들은 실패와 무지, 그리고 잘못으로부터 면제(免除)되지 않았다. 한 마디로, 그들이 제자요 사도이기 때문에 신앙이 자동적으로 성장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선택한 제자요 사도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잘못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오늘 본문의 야고보와 요한이 그러하고, 또한 가룟 유다와 베드로가 바로 그런 본보기들이다.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추방하며, 많은 권능(기적)을 행하는 것은 분명 대단한 직분이요, 신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높은 직분과 신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불법을 행하는 자들’로서 주님으로부터 저주받을 수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선지자 사무엘 시대 때, 엘리 제사장의 아들이면서 또한 제사장이었던 홉니와 비느하스가 그러했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은 사사(師士) 삼손이 그러했으며,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 역시 스승이신 예수님을 부인하였고, 또한 엘리사의 수석 부관 게하시가 바로 그런 인물이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런 성경 인물의 예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교회 직분이 결코 우리의 구원과 신앙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 전도회 임원, 교사, 성가대원 등의 직분(職分)은 기회이지 결코 벼슬이 아니다. 어떤 기회인가?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기회이고, 따라서 축복의 기회요 감사의 기회이다. 그러나 절대로 그 자체가 우리의 구원이나 신앙의 발전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 이런 직분과 신분이 우리의 신앙 발전의 계기가 될 수는 있으나, 발전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우리가 목사이기 때문에 천국 가는 것이 아니다. 목사이기에 상급은 받을 수 있겠으나, 우리가 전도사 혹은 목사로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신자(信者)로서 천국에 가는 것이다. 따라서 직분 이전의 나의 모습, 즉 목사, 장로, 권사, 집사이기 전에 신자로서의 나의 모습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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