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자녀는 주께서 주신 기업, 제게 마지막 목회지였습니다”
상태바
“세 자녀는 주께서 주신 기업, 제게 마지막 목회지였습니다”
  • 이덕형 기자
  • 승인 2012.03.21 17: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너진 16년 목회 후 찾아온 또 다른 사역의 길, 자녀교육세미나 강사 황 경 애 사모

외조부로부터 이어진 ‘신앙 교육’ 자식에게 이어져
예배드리는 심정으로 세 자녀 이름에 성경적 이름 담아

“저는 최고도 아니고 똑똑한 사람도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제 아이를 키울 때 출세보다는 삶 속에서 하나님이 나타나도록 훈련시켜왔습니다.”

황경애 사모는 자녀교육세미나 섭외 1순위로 유명한 강사다. 지금까지 매년 500회 이상의 세미나를 4년간 계속해왔다. 큰딸 최은혜 양은 미국 보스턴대학을 나와 백악관 인터십을 거쳐 미국 10대 로펌에서 2년간 근무 했고 현재 다시 청운의 꿈을 품고 공부하고 있다.

아들 최성찬 군은 보스턴대학을 전액장학생으로 졸업한 후 미 외교관 특별프로그램 대상자에 선정되어 현재 터키에서 훈련 중이다. 그리고 막내딸 최은희 양은 하버드대 전액 장학생이자 빌게이츠 장학재단로부터 백만 달러 장학금을 받은 수재다. 이들이 장학금으로 받은 금액만 총 300만 달러 한화로 환산하면 27억 원에 해당된다.

그런데 자녀들의 이런 성공 뒤를 받쳐온 어머니 황 사모는 이 모두가 자신의 노력보다는 윗대로부터 이어져온 신앙과 눈물의 기도 덕분이라고 말한다.

# 어머니의 신앙양육
황 사모의 외증조부는 대구제일교회 이만직 목사다. 외증조부는 3.1운동과 독립운동 참여로 그 시절 박해 때문에 2년간 옥살이를 할 만큼 신앙과 국가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사람이었다. 그 신앙의 핏줄이 그대로 어머니께 내려왔고 황 사모와 그의 세 자녀에게까지 이어졌다.

예전 어린시절 황 사모의 어머니는 끝이 타들어간 부지깽이로 울퉁불퉁한 부엌 흙바닥에 글씨를 써 내려갔다. 딸을 위해 부엌 바닥에 ‘ㄱ, ㄴ, ㄷ, ㄹ’ 한글을 써 내려간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보면 연기가 피어오르는 부지깽이는 언제나 연필이 돼주었고 아궁이 옆 부엌 바닥은 칠판이 돼주었다. 어머니가 암송한 많은 성경구절은 그을린 부지깽이 끝에서부터 그렇게 어린 황 사모의 기억 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드리는 새벽예배와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 황 사모는 1966년 5살의 나이에 초등학교 입학허가를 받았다. 이후 받은 아이큐 검사에서도 학교 최고 점수가 나왔다.

“어린시절 매일 오전 5시에 새벽예배를 드렸고 부모님은 제가 날마다 성경을 읽게 도와 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유대인이 말하는 ‘성경적 교육법’을 실천하셨습니다.”

당시 암송했던 성경구절로 신앙과 지혜를 키워왔다고 말하는 그는 ‘모든 지혜는 주님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는다고 고백했다.

그 때문인지 황 씨는 유난히 성경과 책을 많이 읽었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다 읽었을 정도였고 위인전에서부터 만화책까지 가리지 않고 다 읽어 내려가는 습관은 그 때 길러진 것이었다.

# 터닝포인트
“어릴 때 꿈은 전 세계를 돌며 말씀을 전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위인들 중에 슈바이처와 리빙스턴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의료로 복음을 전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경주 근화여고와 신일간호대학을 거쳐 서울대 병원에 들어갔다.

하지만 현실 앞에서 선교의 꿈을 버리고 평범하게 지내려고도 했었다. 한국심장재단을 통해 심장병 어린이를 데려와 치료받을 수 있게 도우며 미국 롱아일랜드 쥬이시메디컬센터에서 간호학을 공부했던 시절있었던 유혹이었다. 수술 전후 과정을 통해 심장병 어린이를 돌봤던 그는 어느날 자신의 손을 붙잡고 따라온 5살 소녀가 수술대 위에서 세상을 떠나는 것을 목격해야만 했다.

“제겐 충격이었습니다. 진정한 내 기쁨이 무엇인지, 인생이 이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됐고 하나님의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 이후 발길을 국내로 돌린 황 사모는 다시 선교를 꿈꾸며 아세아신학대학교에서 선교학을 공부했다. 의료선교를 꿈꾸며 사우디왕립병원에 간호사로 들어간 황 사모는 그 곳에서 일대일로 말씀을 전했다. 왕립병원 사람들을 대상으로 주일예배, 제자훈련, 일대일 전도를 계속했지만 결국 발각되어 추방됐다. 그렇게 젊은시절 막 피어난 선교의 꿈도 날아가 버린듯했다.

# 내게 남겨진 마지막 목회
사우디에서 돌아온 후 평생의 배필을 만났고 같이 선교의 꿈을 안고 미국 이민목회를 떠났다. 성공과 부흥이 함께 찾아왔던 이민목회 초기, 열심히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16년간 쉬지 않고 뛰었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비유에서처럼 우리는 마르다처럼 분주하게만 살았습니다. 청소와 봉사, 주위를 섬기며 돕고 뛰며 철야기도 등으로 열심을 냈지만 내 힘으로 이루려던 꿈 앞에는 감당하기 힘든 장애물이 찾아왔습니다.”

다시 한번의 도약을 앞둔 어느날, 16년간 분주히 뛰어 왔던 이민목회는 국제사기단을 만나며 순식간에 바닥까지 내려앉았다. 엎친데 덥친 격으로 교회 건축을 위해 일을 추진했던 남편은 쇼크로 기도원에 들어갔고 이후 소식이 완전히 끊겼다. 이민 목회의 꿈이 예배당과 함께 사라진 자리에는 그와 세 자녀 만이 남았다.

“건물이 사라진 자리에는 태어날 때부터 기도로 주님께 바쳤던 세 자녀만이 기업으로 남았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맡긴 세 자녀를 성경적으로 양육하는 것이 제게 남겨진 마지막 목회이자 사명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주의 기업으로 바친다는 의미에서 세 자녀의 이름은 성경적 의미를 담은 영어문장 앞글자만 따서 지었다.

첫째 딸 최은혜 양의 미국 이름은 그레이스(Grace)로 ‘예수님의 보혈로 산 자’란 영어 문장의 앞글자만 따서 지은 이름이다. 아들 최성찬 군은 존(Jone)으로 ‘주님께 순종하고 주안에서 정직과 겸손으로 항상 새롭게 거듭나는 자’란 뜻이고 막내 최은희 양은 조이(Joy)로 ‘내 삶에 주님을 제일로, 둘째는 이웃 그리고 내 자신은 제일 마지막에 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른 사람의 입술을 통해 세 자녀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주님께 예배를 드린다는 심정으로 지었던 이름이다. 그렇게 황 씨는 세 자녀를 신앙 안에서 부정적인 말은 하지 말고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두 가지 큰 원칙 아래서 양육했다.

# 고 백
“전 최고의 어머니는 아닙니다. 하지만 주님께 제사를 드린다는 심정으로 하나님이 맡기신 세 자녀가 언제나 최상이 되도록 노력해왔습니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있게 하는 최고가 아니라 가진 것을 다 드러낼 수 있는 최상을 가르쳐 왔습니다.”

비단 사무엘의 예가 아니더라도 세 자녀의 삶의 시작을 처음부터 주님께 맡긴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지금의 자리에 서있는 자녀를 만드신 분은 주님이라고 고백했다. 주춧돌마저 사라진 이민목회 현장을 뒤로하고 맡기신 세 자녀 양육을 위해 아틀란타 한인방송국에 들어간 그는 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다. 허드렛일에서부터 어려운 일까지 이민 온지 16년이 지났지만 지금 막 미국 땅을 밟은 초기 이민자가 겪었던 고달픈 타향살이를 홀로 시작해 나갔다.

살기 위한 몸부림의 시간이 그렇게 흘러가는 동안 그는 중간관리자에서 실무총책임자로 정착하게 되었다. 하지만 주님을 바라보던 모습은 현실과 신앙 사이에서 생각 같지만은 않았다.

“저도 베드로가 주님보다 파도를 바라봤을 때 왜 그랬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인생을 살다보면 내가 물위를 걷는 것 같고 때론 제 앞의 주님보다 그 곁의 세상에 눈길이 머물게 되죠. 그 때 어려움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의지하던 어머니가 2007년 교통사고로 떠난 것이었다. 정신적 지주가 무너지자 그는 그렇게 1년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숨 쉬는 힘조차도 내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을 때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같은 해 12월 첫째날 답을 찾기위해 특별기도에 들어갔다. 그리고 정확히 한 달 뒤 길을 열어주시는 체험을 하게 됐다. 2008년 아들 최성찬 군이 19세의 나이로 미국 외교관 훈련 과정에 뽑혔고 큰딸 최은혜 양이 미국 10대 로펌에 합격한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막내딸 최은희 양이 빌게이츠 재단으로부터 100만 달러 장학금을 받고 하버드에 들어가게 됐다.

“내가 욕심을 내려놓지 않으면, 어머니 다음에는 자식일 수 있다는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아픈 경험이었지만 제게는 어려움과 환란 중에 풍랑을 보지 않고 온전히 주님만을 바라보는 힘을 키워줬습니다.”

황경애 사모는 하나님과 함께한 마리아의 삶이 마르다 삶보다 주님이 원하셨던 것처럼 그 말씀을 따라 내가 죽고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주님께서 앞길을 열어주셨다고 고백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