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서(96강) 여호와의 계명을 지켜 형통의 축복을 받은 히스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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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서(96강) 여호와의 계명을 지켜 형통의 축복을 받은 히스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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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3.14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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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리아 대신 이집트와 동맹 관계

히스기야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한 왕으로서 산상의 주상을 깨뜨리고
아세라 목상, 그리고 모세가 만든 놋뱀을 부숴버렸다.

그러나 메렉이라는 이름이 아이를 희생제물로 바쳤던 몰록을 연상하게 만든다. 따라서 아드람멜렉과 아남멜렉에게도 자녀를 불살라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들은 이처럼 다양한 자신들의 신을 경외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를 같이 섬겼다. 33절에서는 이들이 여호와를 경외하였다고 하면서도 열왕기하 17장 34절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 두 구절의 차이에 대하여 33절에서는 종교적으로 여호와에게 제사를 드렸지만 그러나 34절에서는 자신들의 풍습을 따랐지 여호와의 풍습과 계명대로 살지는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사마리아에 이주한 아시리아 사람들의 종교적 삶을 통하여 아시리아와 바벨론으로 이주해 간 유다 백성들의 종교적 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유다 백성들도 아시리아나 바벨론으로 강제 이주 당한 후 여호와뿐만 아니라 그 땅의 신들을 함께 섬겼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아시리아나 바벨론의 관습에 익숙해지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35~39절에서 여호와의 언약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야곱의 자손들에게 여호와가 한 명령은 다른 신을 경외하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을 구원한 여호와만을 예배하며 제사하라고 명령하였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계명을 준수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사마리아에 거주하는 민족들이 여호와를 경외하면서도 우상을 섬기고, 여호와의 계명을 준수하지 않고 자신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대로 행하였다(41절). 35~39절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신학적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열왕기하 17:24~41은 사마리아 사람들(Samaritans)이 생겨난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마리아 사람들이 유대 사람들로부터 경멸당하며, 유다 공동체에서 쫓겨나게 된 종교적,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이들은 여러 민족이 혼합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계명을 그대로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눅 9:51~56, 10:29~37, 요 4:9, 22).

열왕기하 18장은 유다 왕 히스기야의 통치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열왕기하 18:1~12절은 히스기야 통치 개관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18:13 이하는 히스기야 때 산헤립의 침략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열왕기하 18:1~2절에 의하면 히스기야가 즉위한 해가 호세아 제3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29년간 통치하였으며, 그의 어머니 이름은 아비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 구절은 성서 밖의 기록과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열왕기하 18장의 산헤립 침략의 때를 주전 701년이며, 이때가 히스기야 왕 통치 14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왕하 18:13). 여기서부터 역산하면 히스기야의 통치 시작은 주전 715년이 된다. 그렇다면 히스기야가 즉위한 해가 호세아 3년이된다. 그런데 주전 715년에는 이미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때이다. 북왕국은 주전 722~721년에 패망하였기 때문이다.

3~6절에 의하면 히스기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한 왕으로서 산상의 주상을 깨뜨리고 아세라 목상, 그리고 모세가 만든 놋뱀을 부셔버리고 이것을 느후스단 즉, 놋조각이라고 불렀다. 특히 5절에 의하면 그는 여호와를 의지하는 왕이었는데 유다 여러 왕 가운데 히스기와 같은 자가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6절에 의하면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계명을 지켰고, 그 결과 형통의 축복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7절 하반절에는 국제정치에 있어서 히스기야는 아시리아의 왕을 배반하고 섬기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배반했다는 말의 의미는 군사적인 배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기적인 조공을 바치는 것과 다른 나라와 협정을 맺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아시리아 왕을 배반하였다는 것은 정기적인 조공을 아시리아 왕에게 드리지 않은 것이며, 또한 아시리아 대신 이집트와 동맹관계를 맺은 것이었다(왕하 18:21).

8절에 의하면 히스기야는 가사(Gaza)를 공격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특히 히스기야가 당시 아시리아의 무역항 역할을 한 가사를 공격한 것은 아시리아의 입장에서 대단한 반란이 아닐 수 없었다.

9절에 의하면 히스기야 왕 제4년, 호세아 왕 제7년에 아시리아의 살만에셀 5세가 사마리아를 공격하였다. 3년 동안의 포위 끝에 히스기야 제6년, 호세아 왕 제9년에 사마리아가 함락되었다. 그 결과 아시리아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고산 강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 그리고 메데 사람의 여러 성읍으로 옮겼다고 기록하고 있다(왕하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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