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67강) 인생의 올바른 출발점은 주님을 바로 아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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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67강) 인생의 올바른 출발점은 주님을 바로 아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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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3.14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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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베대의 아들들의 허황한 간청 (1)

주님이 누구시고, 무엇을 하셨는지 바로 이해할 때
자신이 누구이고,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바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 수난예언(막 10:32~34) 이후 주님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형제와 대면하게 되었다(막 10:35-45).

본문의 배경은 지상 사역의 마지막 무렵에 예루살렘으로의 여행 중 주님이 예루살렘 입성(入城) 직전에 발생한 사건이다. 주님의 예루살렘 여행의 목적은 메시야로서 인류의 대속(代贖)을 위해 죽으시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메시야로서의 주님의 수난과 죽음은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기대와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따라서 베드로는, 주님의 수난예언을 듣고 이를 겸손하게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이것이 유대인의 기본적인 메시야관에 배치됨으로 거칠게 거절하였다. 그리하여 주님은 제자들의 그릇된 메시야관, 다시 말하면 주님의 신분과 사명에 대한 오해(誤解)를 교정하기 위해 세 번에 걸쳐서 그들에게 특별 교육을 실시하셨다(막 8:31; 9:31; 10:32~33).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여전히 이를 무시하였는데, 그 증거를 우리는 본문에서 다시금 발견하게 된다. 마가복음 10장 33~34절은 주님의 제자들에 대한 특별 교육의 마지막 대목이다. 그런데 세 번에 걸쳐 주님의 수난과 죽음에 대한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은 주님의 고난의 말씀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자신들의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욕망만을 관철시키려 하고 있음을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이제 사건의 전말을 들쳐보면, 주님의 특별 제자들이었던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다른 열 제자 몰래, 심지어 베드로마저 따돌린 채 주님께 찾아와 개인적인 간청을 구하기에 이르렀다(35절). 간청의 내용은, “주의 영광중에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37절), 즉 ‘주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시어 왕권을 차지하게 되면 임금의 좌, 우편 자리, 즉 우리말로 쉽게 표현하자면 좌의정, 우의정에 해당하는 높은 관직을 자신들에게 하사(下賜)하여 달라는 것이었다.

주님은 지금 자신이 세 번에 걸쳐 예언한 바대로 예루살렘에 죽으러 가시는데, 제자들은, 아니 그 중에서도 주님의 특별 교육을 받은 세 제자 중 두 사람은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간청을 주님께 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38절에서 주님은 여전히 무지몽매한 제자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면서, 야고보와 요한에게 그들이 진정 구하는 바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그 때 두 형제는 인간적 욕심에 눈이 어두워, 주님의 수난예언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무조건 할 수 있다고 장담(壯談)하였다(39절).

두 형제의 이런 서원(誓願) 같은 장담이 사도행전 12장 1절~3절에 기록된 헤롯왕에 의한 야고보의 순교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여하튼 오늘 본문에서 ‘주님의 잔과 세례’를 받을 수 있다고 고백한 야고보는 주님처럼 순교를 당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사실 야고보는 안타깝게도 열 두 제자 중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사도로서 제대로 일해보기도 전에, 그만 너무도 일찌감치 이 세상을 뜨고 말았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적인 욕심에 이끌려 무심결에 고백한 서원일지라도 반드시 지켜진다고 하는 것을 오늘 말씀 속에서 발견하면서, 무분별한 서원의 위험을 경고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제자들은 자신들이 따르고 있는 예수님이 과연 누구신지, 무엇 때문에 이 땅에 오셨는지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다. 반복되는 교육과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보통 유대인들의 일반적 메시야관(다윗 같은 왕)만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예언에서 드러난 것처럼, 메시야로서의 주님의 사명은 대속(代贖)의 고난을 거친 이후에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것이다. 하지만 제자들은 고난 없이 영광만을 나눠가지려는 욕망만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진리를 간결하게 표현한 영어 격언이 있다; no cross, no crown. 즉 십자가가 없으면 면류관도 없다는 말인데, 달리 표현하면, 고난이 없으면 영광도 없다는 뜻이다.

자신들이 뒤따르는 주님의 신분과 사명을 제대로 알지 못하므로, 그들은 제자로서의 자신들의 신분과 사명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제자들의 실패를 통하여, 오늘 우리는 소중한 교훈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주님을 바로 알 때에 비로소 나를 바로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주님이 누구시고, 무엇을 하셨는지를 바로 이해할 때에, 내가 누구이고, 또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를 바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를 친히 지으시고 또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신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우리 인생의 올바른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해 무지할 때 결국 우리는 자신에 대해 무지할 수밖에 없고,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인생은 결국 실패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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