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66강) 제자는 끝까지 먼저 된 자로서 남아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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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66강) 제자는 끝까지 먼저 된 자로서 남아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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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3.07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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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자 청년 기사 (5)

단지 먼저 된 자가 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온갖 박해와
핍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먼저 된 자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넷째로, 제자는 끝까지 먼저 된 자로 남아 있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왜 마가복음 10장 31절이 제자도와 재물 관계를 마감 짓는 결론처럼 이 대목의 말미에 기록되었는지를 고려함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과연 이 구절에서 먼저 된 자는 누구이고 또 나중 된 자는 누구일까? 그리고 이것이 앞의 내용과 무슨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까?

이 문제의 해석에 있어서 우리는 핍박을 직면하고 있는 마가 공동체의 사회적 배경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막 10.30). 알다시피, 마가 공동체는 네로 황제 때 발생한 로마의 대화재(주후 64년)의 범인으로 누명을 쓰고, 로마 관헌들에 의하여 무서운 박해를 당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내용은 영화 쿼바디스의 배경이 되었는데, 당시 방화범으로 몰린 그리스도인들은 로마군에 의해 체포되어, 십자가에 달려 산 채로 불에 타 죽는 고통을 당하기도 하였다.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이 파문을 일으키면서 주위를 어지럽히듯이, 로마의 마가 공동체에게 닥친 이러한 무서운 박해(迫害)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 공동체를 어지럽혔을 것이다. 마가의 공동체가 박해에 직면해 있다는 유력한 증거가 본문 30절에 등장한다.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이 구절에서 “핍박을 겸하여 받고”는 마태와 누가복음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내용이다. 즉 마가만의 강조인 것이고, 따라서 이것은 마가공동체가 박해에 놓여있다는 매우 소중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박해적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 핍박에 대한 반응일 터인데, 이 반응은 크게 둘로 나누어질 수 있을 것이다; 즉 핍박에 대항하여 순교로써 믿음의 절개를 지키는 이들이 있었는가 하면, 반대로 박해와 함께 자신의 모든 것을 잃는 것이 무서워 그 신앙을 포기하는 변절자들이 생겨났을 것이다. 물론 그 중간에서 완전히 변절은 않되 적당히 타협하는 자들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특별히 문제가 되는 것은 전자의 경우 즉 순교(殉敎)와 배교(背敎)의 양극적 반응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부자 청년의 기사를 다시금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계명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하는 이 부자 청년은 율법적 견지에서 볼 때 의인으로 인정될 정도의 신앙적 경륜을 지닌 자이며, 동시에 부자였기에 당시 사회나 공동체 내에서 먼저 된 자로서 간주될 수 있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이런 류(類)의 인물이 마가 교회 내에도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신앙의 경륜이 있어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먼저 된 자인 부자 청년은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자기 재산을 포기하라는 명령 앞에서 그 신앙의 절조를 지켜 이를 이행하기보다는 끝내 그 재물을 포기하지 못하였고, 따라서 주님의 제자가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으나, 첫 번째 어부 제자들처럼 모든 것을 버리지 못함으로써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다(참고,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막 10.28) 그러므로 먼저 된 자였던 이가 이제는 구원마저도 상실하여 버리는 나중 된 자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아마도 마가 교회의 구성원들 중에는 신앙적 이유로 인한 박해 때문에 사회적 지위와 재산을 포기할 것을 강요받았던 이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 중 일부는 본문의 부자 청년처럼 그 사회적 지위와 재산을 포기하지 못함으로써 실패하고 변절하였을 가능성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교회 내에서 발발하고 있는 이러한 현상을 목도하면서, 마가는 이런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교우들에게,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와 복음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한 이들에 대한 격려로써(막 10.29-30, “… 백배나 받되 …”), 또 다른 한편에서는 끝내 마지막 한 가지를 포기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가능성이 있는 자들에 대한 경고로써 이 기사를 기록하였던 것이다.

먼저 된 자가 된다는 것, 즉 지도자가 되어 남보다 앞서고 남보다 위에 있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볼 때 분명 기분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지 먼저 된 자가 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온갖 박해와 핍박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조건과 형편 가운데서도 끝까지 먼저 된 자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내용을 정리하면, 부과된 의무만을 지키며 만족해하는 소극적인 차원에서 탈피하여 적극적으로 나아가 의(義)와 선(善)을 찾아 행하는 적극적 신앙, 하나님만큼 눈에 보이는 가난한 이웃을 사랑하는 신앙, 주님 때문에 최후의 마지막 한 가지를 마침내 포기하면서 끝까지 먼저 된 자로서 남아 있는 신앙, 이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참 제자의 삶의 요건이다.

이런 제자의 삶을 사는 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위대한 역사를 이 땅에서 이루어 가고 계시는 것이다. 과연 당신은 그 위대한 역사에 동참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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