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대 이후 이단종파 활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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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이후 이단종파 활개
  • 승인 2002.08.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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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이단사이비 신앙경계활동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활발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한국 천부교전도관 부흥협회’로 1955년 박태선씨에 의해 창립, 주도됐다. 남대문교회 집사로 봉사하던 때 이성봉목사의 부흥집회에서 은혜를 받아 전도관을 창립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혼음행위로 세간을 흔들었던 박태선과 그 단체는 공갈 상해 위증등의 혐의로 당국의 조사를 받았고, 1955년 한국기독교연합회(NCC)로부터 사이비종교운동으로 규정됐으며 1956년 서울 새문안교회에서 열린 장로교 41회 총회에서 “박태선 나운몽 엄애경 노광공 등을 비성경적인 교훈을 가르치는 교회질서를 문란케하는 자들로 집회참석을 불허하고 동조 내지 참석자들에 대해 처리할 것”을 결의했다.

또 성결교회도 1956년 4월17일부터 열린 총회에서 ‘이단사교로 규정하고 참가자는 처벌한다’고 결의했으며 1965년 4월 예성총회도 11회 총회에서 이를 재확인했다. 가장 최근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켰던 ‘시한부종말사상’에 대해서도 한국교회는 총회에서 이 문제를 긴급히 다루고 이단으로 규정, 혼란한 사회질서를 바로 잡는데 노력을 보였다.

다미선교회를 이끌던 이장림씨가 ‘92년 10월28일 휴거설’을 주장한데 이어 ‘소년 선지자’로 자칭하던 하방익군, 그리고 성화교회를 이끌었던 권미나양, 샬롬선교회의 최병권목사, 인천 온누리교회 장연준, 지구촌선교회 임원순 등 90년대 초는 이같은 시한부종말사상이 극에 달해 교단의 지도가 절실했다.

1991년 75회 총회에서 예장 통합총회는 이장림씨를 비롯한 시한부종말론자들을 이단으로 규정하며 미혹하지 말 것을 당부했으며, 합동총회, 고신총회등도 잇달아 이단으로 결의했다. 사회적으로 혼란이 야기될 때 사회질서를 부여하는 기능이 총회에 있음을 증명한 셈이다.

이밖에도 한국교회 총회는 1989년 4월28일 보수권 연합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창립하게 되는데, 이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함께 분열된 한국교회에 일치·협력분위기를 고조하는데 역할을 했다. 교단총회는 결국 ‘사회정화 기능’과 ‘교회일치 기능’ 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자리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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