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제어 박사가 말하는 ‘회복적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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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제어 박사가 말하는 ‘회복적 정의’
  • 표성중 기자
  • 승인 2011.08.1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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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 정의에 대한 새로운 접근 … 성경에 기초한 인간관계 회복 위한 새로운 모델

▲ 회복적 정의 운동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는 하워드 제어 박사가 동북아평화교육원 주최로 진행되고 있는 '동북아 평화교육 훈련'에 강사로 초청돼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지난 10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회복적 정의에 대한 개념을 설명했다.
사법적 정의 - 응보와 처벌 VS 회복적 정의 - 용서와 사랑
존중과 책임, 관계라는 3가지 가치로 사회적 변화까지 가능

그리스도인들도 인간관계 속에서 크고 작은 많은 분쟁과 갈등을 겪는다. 그리고 이러한 분쟁과 갈등의 해결을 위한 방법으로 사법기관을 찾게 된다. 하지만 가해자와 피해자로만 구분시키고, 특정 범죄를 비롯해 타인에게 행하는 잘못된 행위에 대한 사법기관의 응보와 처벌이 과연 인간관계의 올바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또한 그러한 응보와 처벌이 과연 성경적일까.

현재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회복적 정의(사법)’ 운동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공로를 인정받아 ‘회복적 정의의 아버지’라고 불리고 있는 하워드 제어(Howard Zehr) 박사(미국 이스턴 메노나이트대학 갈등전환학 대학원장)는 분쟁과 갈등 해결을 위한 진정한 정의는 응보와 처벌이 아닌 용서와 사랑에 기초한 ‘회복’에 있다고 강조했다.

동북아 평화교육원(Northeast Asia Regional Peacebuilding Istitute, NARPI) 주최로 지난 16일부터 2주간의 일정으로 진행되고 있는 ‘동북아 평화교육 훈련’에 강사로 참여하기 위해 방한한 제어 박사는 중국, 홍콩, 일본, 몽골, 파키스탄, 대만, 인도, 미국 등지에서 방문한 평화주의자들을 비롯해 한국 교회를 향해 ‘회복적 정의’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했다.

▲ 하워드 제어 박사는 ‘회복적 정의’는 현행 사법제도가 갖고 있는 한계와 문제점을 보완하는 의미에서 점차 확대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13일 오후 2시 한국기독교회관에서 회복적 정의 시민사회 네트워크 주최로 진행된 ‘회복적 정의 포럼’에서 회복적 정의 운동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강의하며, 한국사회 안에서 회복적 정의 운동이 다양한 영역의 시민사회 운동으로까지 확산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와 같이 범죄와 정의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는 ‘회복적 정의’에 대해 자세히 듣기 위해 지난 10일 한국 아나뱁티스트센터에서 제어 박사를 만났다.

그는 “회복적 정의는 범죄와 그와 관련된 잘못된 행위들에 대해 응답하는 사법적 처벌 방식을 변화시키는데 목적이 있다”며 “단순히 응보와 처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진정한 사과와 화해가 가능하게 도와줌으로써 인간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즉, 회복적 정의가 추구하는 목표는 법의 어김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치유와 연결을 통한 인간관계의 회복과 공동체로의 재복귀에 있는 것이다.

제어 박사는 “회복적 정의는 성서에 기초하고 있다. 원수를 용서하고 자비를 베푸는 하나님의 사랑이 기본 원칙”이라며 “회복적 정의의 실현은 사법적 영역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일상생활 전반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강조했다.

결국 ‘회복적 정의’는 사법의 응보 및 처벌적 정의를 뛰어넘는 새로운 용서와 화해, 회복을 강조하는 새로운 가치라고 볼 수 있다.

제어 박사의 저서인 ‘회복적 정의란 무엇인가’에 따르면 응보적 정의에서의 범죄는 법 위반과 유죄로 정의되는 국가에 대한 침해다. 따라서 사법은 체계적 규칙에 의해 지도되는 범죄 가해자와 국가의 경쟁을 통해 비난을 결정하고 고통을 부과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회복적 정의에서의 범죄는 사람과 관계에 대한 침해이며, 범죄는 잘못을 바로잡을 의무를 창출할 것을 강조한다. 특히 사법은 피해자와 가해자, 공동체가 잘못을 시정할 수 있도록 하고, 화해와 안전을 촉진하는 해결책을 제시할 것을 강조한다.

제어 박사는 “회복적 정의는 범죄와 그에 따르는 사법 절차를 거치는 전체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그 범죄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모든 사람의 상처를 아물게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많은 나라의 사법기관은 응보와 처벌만을 중심으로 한 재판제도를 활용하고 있다”며 “응보와 처벌을 중시하다 보면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진정한 의미의 화해와 정신적 치유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게 될 수 밖에 없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사실 우리 사회는 엄중한 처벌에도 불구하고 범죄와 재범률 증가 등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범죄 해결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의견과 감정은 무시되면서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는 더욱 극한 대립으로 치닫게 되고 있으며,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의는 성립되지 않고 있다.

이에 반해 회복적 정의는 현행 재판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고, 쌍방이 보다 만족스러운 정의를 이루기 위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직접 대면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제어 박사는 “회복적 정의는 회복, 책임, 참여라는 세 가지 원칙을 갖고 있다”며 “회복은 잘못된 행위에 의해 발생한 피해를 회복하는 것이며, 책임은 피해를 회복하고 발생된 필요에 대응하기 위해 적절한 책임을 지도록 권장하는 것이다. 또한 참여는 결론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지역공동체를 포함한 당사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회복적 정의 안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과 그의 가족, 피해를 입힌 사람과 그의 가족, 영향을 받는 지역공동체 구성원 등 세 가지 주요 주체들은 존중과 책임, 관계라고 하는 세 가지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용서와 사랑의 힘으로 한 인간을 변화시키고 사회와 역사를 바꿔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 많은 나라들은 현재 이러한 회복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피해자-가해자 조정/화해 프로그램 △가족집단 회합 △공동체 양형 △진실과 화해 위원회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제어 박사는 “회복적 정의는 현행 사법제도가 갖고 있는 한계와 문제점을 보완하는 의미에서 점차 확대되고 있다”며 “앞으로 사법시스템의 처벌 사고를 회복 사고로 바꾸는 것이 관건이다. 지금도 회복적 정의를 정부와 제도권이 어떻게 수용하고 지원할 것인가가 현재 가장 큰 고민이며 논쟁이 되고 있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회복적 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처벌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시각부터 바뀌어야 한다. 어떤 것이 성서적이고, 교회적인지, 응보와 처벌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며 “하나님의 의도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하나님과 인간 등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유지하는 것이다. 때문에 교회 및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회복적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하워드 제어 박사는 지난 1979년부터 1996년까지 메노나이트 중앙위원회(MCC) 미국본부의 형법부서 소장으로 활동했다. 특히 법원에서 교정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만나 화해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회복적 정의의 가능성을 경험한 후 회복적 정의의 필요성을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키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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