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공존(共生共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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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공존(共生共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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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6.29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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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웅 목사 (덕수교회)

21세기를 사는 길은 공생의 길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자신의 생존마저 위협받는 전례 없는 환경위기를 맞고 있다. ‘위기’라는 말은 ‘죽게 되었다’라는 뜻이다. 이러한 환경재앙은 인간들의 절제하지 못한 탐욕의 결과이다. 인류는 지금 무한경쟁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치열한 경쟁구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치며 살아가는 인류를 향해서 하나님은 때때로 천재지변을 통해서 인간의 발걸음에 제동을 거시고 파괴의 속도를 조절하신다.

이러한 환경재앙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가? 그것은 인간의 원죄 때문이다. 원죄가 무엇인가. 교만과 불순종이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이상적 선택을 하지 못한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이 행한 선택이 이상적인 것이 되지 못한 것을 알기 때문에 죄인이라고 고백한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생태계와 더불어 살아가도록(共生) 창조하셨는데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탐욕 때문에 모든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를 시작한 일이 인간의 첫 범죄이며, 근본적인 죄(原罪)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는 모든 생명체들이 한 가족이 되어 하나의 생명공동체를 이루어서 함께 살아가도록 공생공존의 복을 주셨다. 인류는 이러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거역하고 자신의 삶의 풍요를 위해서 다른 생명들을 무자비하게 침탈하는 죄를 범함으로써 공생공존의 꿈은 깨어지고 치열한 각축장으로 변하게 되었다. 이것은 자연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고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계에서도 일어나는 약육강식의 현상이다.

다윈은 ‘종의 기원’으로 유명하고 적자생존, 약육강식 이론을 주장해서 인류가 치열한 생존경쟁의 근거를 제공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다윈이 곤충들과 꽃피는 식물들이 공생하는 이론도 제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사실을 간과하였다. 생명체는 서로 주고받으며 가장 거대한 생명집단을 형성하여 번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류는 바로알고 깨달아야 한다. 들판에 피고 지던 밀보리와 벼 같은 곡류도 들판에 자라던 잡초에 불과했지만, 인간과 더불어 살아오면서 인류의 가장 사랑받는 식량이 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였고, 동양의 공자도 화이부동(和而不同)을 강조했다. 알면 사랑하고, 서로 깊이 이해하면 공존할 수 있다. 바울은 많은 사람의 유익(弘益人間)을 구하여서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도록 교훈하고 있다.

공생공존의 길을 가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베이콘(Bacon)의 ‘지식이 힘이다’라는 주장에 따라 인류는 계몽주의시대를 열어가면서 과학의 힘으로 지구개발에 몰두하여 오늘의 생태적 위기를 초래했다. 그래서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생태적 회심을 통해서 회복의 길을 걸어야만 할 것이다. 창조주의 온 생명 사랑의 뜻에 복종하면서 생명 살리기 운동을 집요하게 전개해야만 할 것이다.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피조물의 탄식소리를 귀담아 들어야만 할 것이다. 인류는 생태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도덕적 책임을 인식하고 현재의 삶을 재구성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만 할 것이다.

토인비 교수는 ‘지구는 인류의 어머니’라고 했다. 달라는 대로 무조건 주기만 하던 어머니가 늙고 병든 다음에야 비로소 그 자식이 철이 드는 것처럼, 언제까지고 무한한 자원을 줄줄 알았던 지구가 상처입고 병들어 죽음에 이를 수 있음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오직 하나뿐인 지구(Only one Earth)에 대한 각성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비록 늦었지만 아직은 포기할 단계가 아니라는 판단으로 새롭게 시작해야만 한다. 모든 생명은 연대되어 있는 하나의 생명공동체이므로 공생공빈(共生共貧)의 길로 다시 출발하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모든 재앙이 멈추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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