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 교계 정화 위해 필요한 두 종류의 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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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교계 정화 위해 필요한 두 종류의 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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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6.15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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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교계에는 정화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 보다 높으나 실제로 정화되지는 않고 있다. 정화의 방법을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하지 못하여 정화가 되지 않고 있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무엇을 정화해야 하는지 그 정화의 대상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지 못하여 정화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정화의 대상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참으로 정화되어야 하는 대상은 마음이고 자세이다.

우리의 교회가 정화되기 위해서는 두 종류의 사역자가 필요하다. 중세의 교회를 개혁했던 말틴 루터(Martin Luther)와 같은 사역자와 또 하나는 요한 캘빈(John Calvin)과 같은 사역자이다. 말틴 루터 같은 사역자라고 하면 기도에 열중하는 사역자이고, 요한 캘빈과 같은 사역자라고 하면 몸에 가시(아픈 데)가 많아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사역자이다. 필자는 신학교 강단에서 학우들에게 말틴 루터처럼 기도를 많이 하든지 아니면 캘빈처럼 몸이 아픈 데가 많던지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좀 이상한 외침 같지만 학우들에게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루에 두 세 시간씩 기도를 하든지 아니면 캘빈처럼 아픈 데가 아주 많아 걸어 다니는 병원이라는 소리를 듣든지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캘빈은 몸에 아픈 데가 너무 많아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주님의 일을 했다. 그의 몸에는 바울 사도에게 박혔던 가시(고후 12:7)가 박혀 있었다.  

20년 전 쯤까지만 해도 우리 교계는 오늘처럼 혼탁하지는 않았다. 그 때는 기도하는 종들이 있었고 또 폐결핵을 앓는 종들이 사역을 하고 있었다. 기도하던 종들은 교회 성장이라는 것을 목표 하지 않고 그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했고 가르쳤다. 그리고 폐결핵을 앓던 종들은 피를 토하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목회를 했기에 교회는 살아 있었다.

그러나 한국 교회들이 크게 복을 받아 성장한 후에는 기도의 열심이 약화되어 사역자들이 기도를 하긴 하나 목숨을 걸지는 않는 모습이다. 그리고 폐결핵을 앓던 종들이 별세하거나 은퇴한 후에는 우리 교회들이 많이 약화되고 말았다. 1세 사역자들이 별세하거나 혹은 은퇴한 후 2세 후임자들은 신학적으로는 더 완숙해졌으며 설교는 더욱 논리적으로 잘하지만 강단의 생명력은 떨어진다는 것이 공통적인 견해이다.
말틴 루터(1483년-1546년)는 원어에 능통한 사람인데다가 기도에 열중하는 사람으로 하루 세 시간씩 기도를 한 사람이었다. 그는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쓰임을 받아 성경에 밝은 사람이 되었고 부패한 교계를 개혁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기도가 아니었다면 놀라운 개혁자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요한 캘빈(1509-1564년)도 역시 원어에 능통한데다가 많은 병을 앓으면서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했다. 그의 몸에 있었던 많은 병은 그로 하여금 하나님만 의지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그는 결국 하나님 주권신학을 수립했으며 많은 성경주석을 집필해서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바울 사도에게 박혔던 가시가 캘빈에게 박혔기에 그는 놀라운 사역자가 되었다. 그의 몸에 박혔던 가시는 재앙이 아니라 고난이었는데 그는 그 고난으로 말미암아 당시의 부패한 교회를 개혁해서 장로교를 세우는 큰일을 할 수 있었다. 
 
오늘날은 중세 시대보다 윤리적으로는 더 어두운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두 개혁자는 당시의 잘못된 교리를 개혁했다면 오늘 우리는 윤리를 개혁해야 할 것이다. 오늘의 시대는 어느 선교사가 말한 것처럼 벼락 맞기에 안성맞춤인 시대이다. 대단한 중독 시대를 만났다. 마약 중독, 술 중독, 도박중독, 인터넷 중독, 부정과 비리 시대를 맞아 망하기만을 기다리는 시대를 맞았다. 여성들의 옷은 점점 짧아지다가 이제는 아예 하의(下衣)실종 시대를 맞았다.

지금 강단은 중세 개혁시대보다 더 강해야 교회정화가 가능할 것이다. 아무리 강단이 강해도 강단 아래서 말씀을 받는 성도들이 옛날보다 더 부패하여 이제 주의 종들은 말틴 루터보다 더 많은 기도를 드려야 할 것이고 캘빈보다 몸이 더 많이 아파야 할 것 같이 보인다. 우리는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기도하며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이 교회 사회를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하루 두 세 시간씩 기도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고난의 눈물을 흘리며 목회하지 않는 사역자는 개혁자라고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유는 교회 개혁은 말씀전파와 기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행 6:4).
김수흥<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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