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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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그립니다"
  • 승인 2002.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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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의 절망은 없었다. 20세의 혈기왕성한 청년이 잠깐의 방심으로 다시는 걸을 수 없게 됐다. 전신마비의 상해를 입은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보고 듣고 먹고 말하고 그리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남은 인생을 아픔과 원망으로만은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언가 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 아니 꼭 해야한다는 삶의 책임감이 그를 강하게 만들었고 그는 결국 새로운 삶을 찾았다. 그리고 그에게는 든든한 동역자들이 생겼다. 좋으신 하나님, 사랑스런 아내, 그리고 소중한 가족들. 그는 이제 더 이상 장애우가 아니였다.

구족화가 황정언성도(38·온누리교회). 그리고 그의 아내 홍성숙성도(31·온누리교회). 두 사람은 정말 행복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고 있었다. 평범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변사람들의 동정어린 눈초리는 이제 부러움에 가득 차 그들을 축복한다.
황정언성도. 침대에서 휠체어로, 아내와의 결혼, 두 번의 수술 등 그의 인생은 절망과 아픔의 연속이었지만 모든 아픔을 이겨냈다. 그리고 우리 앞에 화가로 당당히 서 있다. 경추를 다쳐 누워 있어야만 했던 그가 이제는 휠체어에 앉아있다. 그리고 남들처럼 손은 아니지만 입으로 더 멋진 그림을 그려낸다. 물론 그에게 용기를 주신 하나님이 그의 모든 삶을 관여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93년. 조금 서둘러 귀가하려고 중앙선을 침범했던 그는 두 번다시 핸들을 잡을 수 없게 됐다. 그렇게 그의 평범하지 않은 삶이 시작된다. 전신마비의 선고를 받기전까지 그는 정말 열심히 하나님께 매달렸다.
성경도 보고 기도도 하고, 교회에서 심방이라도 오면 너무나 반갑고 행복했다. 그러나 두 번 다시 일어설 수 없다는 청천벽력같은 선고는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렸고 얼마동안 다시 하나님을 멀리했다.

하나님을 외면했던 것은 이 때뿐만이 아니지만.
황정언성도는 모태신앙으로 신앙안에서 착실하게 성장했다. 고등부시절에는 학생회장을 맡아 크고 작은 행사를 멋지게 치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사춘기 소년의 엉뚱한 발상이었을까? 그는 차츰 교회에 대한 불신이 싹트기 시작했다.

목사님의 설교도 거슬리고 장로님의 행동도 맘에 들지않고... ‘교회다녀봐야 별루 좋은 것도 없는데 뭐’라는 위험한 생각이 그와 하나님사이를 급속도로 멀어지기 했다. 그렇게 멀어진 하나님은 좀처럼 가까워질 수 없었다. 심지어 군복무시절 고참이던 그는 부하들의 종교행사를 트집을 잡고 기합을 줄 정도였으니..
결국 하나님은 큰 사고를 통해 그의 마음을 붙드셔야 했다. 혹자들은 ‘조금은 가혹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그는 행복한 사고로 기억하고 있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정도로 몸은 망가졌지만 정신적으로나 신앙적으로 그는 너무나 많은 것을 얻었기 때문이다.

얼마동안 좌절하던 그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았다. 사랑하는 동생을 위해 자식을 위해 가족들이 백방으로 찾아 나섰고 결국 제 2의 인생을 가능케했던 박우형장로를 만날 수 있었다. 교통사고로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박장로는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의 길을 제시했고 어떤 일라도 하고 싶었던 그는 미친 듯이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정말 새로운 세상이었다. 전신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먹고 자는 시간을 빼면 하루의 전부를 그림에 몰두했다. 성령체험을 갈급해하는 성도들의 심정으로 그는 그림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림도 그림이지만 박장로는 그에게 정말 새로운 삶의 의미를 의미를 부여했다. 어느날 박장로는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장애우모임이 있는데 나가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박장로의 헌신과 사랑에 감복한 그였기에 ‘한 번 나가주자’라는 심정으로 힘든 몸을 이끌고 모임에 나갔다.
그러나 그 모임이 그에게는 놀라운 성령님과의 만남이었다. 모든 것이 그만을 위해 준비된 것 같았다. 찬양도, 기도도, 목사님의 설교도, 그의 상채기 난 마음을 위로해주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그는 하나님께 폭 빠져들였고 달라지기 시작했다.

또 하나의 선물은 사랑하는 아내 홍성숙성도와의 만남이다.
당시 교회에서 일을 하던 그녀는 오래전부터 장애우와의 생활을 소원했고 남편을 처음만난 95년도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남편의 모습은 너무 초라했다. 휠체어에도 제대로 앉아있을 수가 없어 눕다시피하고 머리도 덥수룩하고..
그렇게 첫 대면은 지나갔지만 계속된 만남을 통해 그녀에게는 알 수 없는 사랑의 마음들이 싹트기 시작했다. 장애우와의 아름다운 삶을 꿈꾸던 그녀에게 하나님은 남편 황정언성도를 선물로 주셨다. 결혼을 하기까지 주위의 반대와 만류가 계속됐지만 그녀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를 정말 사랑했기 때문이다.

1998년 9월. 드디어 두사람은 행복의 보금자리를 마련했고 꿈같은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주위에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두사람을 위로하려 했지만 당사자들은 여느 부부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가끔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그림작업을 하는 남편을 아내가 돕기도 하고… 평범한 신혼부부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물론 힘든 때도 있었다. 서로가 병이 들었을 때에는 더욱 그랬다. 결혼후 남편이 욕창수술을 두 번이나 받게되자 ‘보필하는 마음과 정성이 부족한 것은 아니였는지’ 안타까운 마음에 그녀는 몇날며칠을 눈물로 지새웠다. 괴로워하는 아내를 보며 그 또한 미안해하며 마음속으로 한없이 울었다.

그러나 그들은 절망속에서 절대 무너지지 않았다. 하루를 가정예배로 마무리하며 아픈 곳을 싸매면서 서로를 도닥거렸다. 상한 감정을 마음에 품고 잠자리에 든적이 없다. 부부가 손을 잡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면서 얽힌 마음들을 다 풀었기 때문이다. 부부가 더 없이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기도의 힘이였던 것이다.
그렇게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황정언성도는 예수님께 폭 빠졌다.
그는 교회다니면서 몸이 더 좋아진 것 같지 않지만 마음은 더 없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너무도 선한 눈매를 선물 받았다는 부인의 칭찬처럼 황정언성도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너무나 행복해하며 장애우라는 표현이 어색할 정도로 밝고 씩씩한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안에서 한 없는 위로와 기쁨을 얻은 황정언성도는 이제 나눔의 삶을 꿈꾸고 있다. 자신의 일과 생각을 한권의 책으로 묶는 것이다. 헌신적인 가족, 박장로님을 비롯해 자신의 힘든 삶의 여정속에서 그때 그때마다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의 기억을 더듬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조심스레 꺼내 놓으려고 한다. 또한 그의 삶에 동행했던 하나님도 함께. 인생속에서 받은 아니 받고 있는 소중한사랑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은 소박한 마음에서 말이다.

김광오기자(kimko@uc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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