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타임 3시간 25분 … 다음주는 어느 교회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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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타임 3시간 25분 … 다음주는 어느 교회로 가나?
  • 최창민 기자
  • 승인 2011.04.19 12: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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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은퇴 목사의 미국 예배 도전기
이계선 목사 <은퇴한 후 뉴욕에서 살고 있다>


“목회를 은퇴하셨으니 우리 교회로 나오세요. 원로 목사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원로 목사란 말에 눈이 번쩍! 수십억 원의 은퇴비(隱退費)에 매달 생활비가 나오고 섭정을 즐기면서 상왕대접을 받는 것이 원로 목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로 목사로 대접하겠다는 교회에 가보면 우선 원로 목사가 너무 많다. 몇 십 명이 모이는 개척 교회수준이라서 교인 늘리기 작전으로 은퇴 목사를 부르는 것이다.

부흥회를 인도하면 팬클럽처럼 후원자들이 생긴다. 근처에서 부흥회를 할 적마다 몰려와 응원을 해준다. 스타가 된 기분이다. 부산에서 목회하던 70년대였다. 감리교회의 이천 목사가 사명자 집회에서 이런 말을 했다. “부흥사들의 그런 짓거리는 영적 간음이요 양 도둑질입니다.”

# 목회하다 떠난 교회 방문하지 않는다
깜짝 놀란 나는 얼른 팬클럽을 해체(?)해 버렸다. 한걸음 더 나아가 목회하다가 떠난 교회는 다시 방문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이를 율법처럼 지금껏 지켜왔다. 그리고 은퇴하면 일반 교회에 나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은퇴한 초등학교 교사가 초등학생이 되어 다시 공부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은퇴 목사 예배처가 없으면 집에서 혼자 예배를 드릴 계획도 있었다. 옥한흠 목사가 은퇴 후 집에서 혼자 예배를 드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 고집에 힘을 얻었다.

돌섬(Far Rockaway)노인 아파트로 이사와 보니 한인 교회가 없다. 앞 동의 이 집사는 한 시간을 운전하여 후러싱으로 나간다. 차가 없는 심 권사, 김 집사는 다니던 한인 교회를 찾아가는데 2시간 반이 걸린단다. 우리 부부는 아파트 앞에 있는 흑인 교회를 찾았다.
 
“영어도 배울 겸 미국 교회로 갑시다. 아파트 사람들이 많이 나가니 그래야 흑인들과 더 어울리고 지역사회와 가까워질 게 아니오?”

오순절 계통의 교회였다. 비둘기가 하늘로 비상하려는 자세로 서있는 건축미가 돋보였다. 천정과 벽을 온통 목재로 꾸민 교회 안은 목선(木船)의 내부를 연상케 했다.

노아의 방주 안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대리석과 돈으로 처발라 지은 맨해튼의 리버사이드처치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4백 석인데 2백 명이 출석하고 있었다.

90%가 흑인이었다. 주보도 없고 성가대도 없었다. 사도신경, 주기도문, 교독문은 물론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하는 축도도 없었다. 강단 벽면에 영상(映像)이 예배를 안내하고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복음성가를 부르고 있었다. 1년 동안 참석해 봤지만 찬송가는 단 한번 불렀을 뿐. 그것도 성탄절 날 재즈 풍으로 부른 캐럴찬송 ‘동방박사 세 사람’이 전부였다. 목사가 안수기도를 하면 모든 회중이 손바닥을 펴서 화살표로 응원하는 게 이채로웠다. 흑인 교회 치고는 퍽 현대적이고 은혜로웠다.

# 한 시간을 넘기는 설교

잘 훈련된 한인 교회처럼 기계적이고 예술적(?)이지 않아 좋았다. 헌금 강요도 없다. 고향의 어린 시절에 다녔던 시골 교회처럼 순수해 보였다.

그런데 예배 시간이 너무 길어서 답답함도 있었다. 10시에 시작한 찬양이 11시에 끝나면 설교는 항상 한 시간을 넘겼다. 기도순서, 간증순서, 생일 축하순서까지 있어서 두 시간을 넘어야 끝났다.

영어 히어링이 잘 안 되는 우리 부부에게는 여간 지루한 게 아니다.

“여보, 다음 주일에는 한 시간짜리 교회로 가봅시다. 미국 교회도 장로교 감리교 같은 정통 교회는 한 시간에 끝낸 데요.”

차를 타고 5분을 운전하니 길가에 침례교회가 보였다. 건물은 구식이지만 2백 명이 모였다. 주보도 있고 찬송도 불러서 반가웠다. 교독문이 이채롭다. 성경 구절로 시작하다가 이집트사태나 천재지변을 집어넣어 역사의식을 일깨우게 했다.

열 명의 보컬이 나와서 부르는 특송도 좋았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회중이 복음성가를 부르면서 광란의 춤판을 벌였기 때문이다. 일어나서 손을 흔들더니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다.

널 춤을 추면서 예배당 안을 뛰어다니며 한 시간 동안 난장판을 벌였다. 지칠 만 하자 담임 목사가 설교 마이크를 잡았다.

“여보, 이제는 살았소. 담임 목사는 흑인이지만 나이도 지긋하고, 주보에 보니 박사라 했으니 지성인답게 설교하겠지?”

우리 부부는 서로 쿡쿡 찌르면서 웃었다. 그런데 웬걸!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더니! 흑인 목사는 한수 두수 몇 수를 넘어 길길이 뛰기 시작했다. 입술을 마이크에 바싹 붙이고 악을 써대는데 스피커도 귀청도 찢겨 나갈 것 같았다.

# 3시간을 참다가 뛰쳐나오라
이보다 더 민망한 모습은, 설교자 옆 강단에 앉아 있는 부목사였다. 몸으로 설교를 돕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교자가 악을 쓰면 몸을 비틀었다. 예수 그리스도! 하고 외치면 벌떡 일어나 두 손을 들고 펄쩍 뛰었다. 설교에 따라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춤을 추면서 발을 쾅쾅 구르고 빙빙 돌았다. 그러면 교인들은 뛰기도 하고 날기도 하다가 벌렁 들어 누어 방성대곡을 하는 것이었다.

러닝타임 3시간 25분!,~ 헉!

내친김에 다음 주일에 또 다른 교회를 찾아봤다. 150여 명이 모이는 침례교회였다. 여기도 비슷했다. 설교와 헌금이 끝났는데도 계속하고 있었다. 3시간을 참다가 나와 버렸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그래도 아파트 앞 오순절교회가 제일 낫소.” 우리 부부는 더 이상 교회 순례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 후, 버지니아 미국 감리교회에서 목회하는 문형일 목사가 잠시 쉬러 왔다. 서울 음대를 나온 유명한 바리톤 출신인데 백인 교회 목회에 지쳐있었다.

돌섬의 흑인 교회 얘기를 했더니 놀라기는커녕 부러워했다.

“백인들이 모이는 감리교회, 장로교회는 딱 한 시간 예배입니다. 그 대신 꼬치꼬치 따지면서 얼마나 목사를 들볶아 대는지 몰라요. 저희 교회만 해도 150년 된 500석 예배당 안에 100 명 남짓 모이는데, 때로는 무시무시한 공동묘지 같은 적막이 흘러요. 교인들 표정이 무섭게 보여요. 펄펄 뛰는 흑인 교회 교인들은 그래도 목사를 하나님처럼 받든답니다.”

그렇다면 다음 주에는 어느 교회를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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