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비 양극화 심화, 검은돈 쫓아 사는‘속물’ 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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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비 양극화 심화, 검은돈 쫓아 사는‘속물’ 양산
  • 최창민 기자
  • 승인 2011.03.02 14: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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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늪에 빠진 한국 교회 (3) - 목회자 적정 사례비 논의 시작돼야

▲ 목회자 사례비는 100% 교인들의 헌금에서 지급되지만 정작 자신이 섬기는 교회 목회자가 얼마를 받고 있는지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사진은 특정기사와 관련없음.

돈에 휩쓸려 ‘건강한 목회’포기하는 목사 증가
신앙적 양심에 근거한 보편적 기준 제시돼야

한국 교회가 연일 사회로부터 질타를 받고 있다. 대표적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대표회장 선거와 관련해 엄청난 금품이 오고 갔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일반인들은 물론 기독교인들조차 교계 지도자들에 대한 일말의 기대마저 접어야 했다.
성직자의 신앙적 양심이라는 것이 돈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번 금권선거 논란이 확산되자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이 나왔다는 점이다. 사건은 목회자들 간의 정치적 알력 다툼에서 불거졌지만, 이미 십 수 년 전부터 계속되어 온 관례라는 점에서 총체적 위기임을 절감하게 된다. 한국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추락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가운데 이 같은 문제가 생겨난 것은 목회자 사례비 책정에 대한 윤리적 기준, 보편적 기준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교회마다 사정이 다르고, 목회자마다 능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목회자들의 적정 사례비에 대한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왔다.

그러나 목회자들이 돈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적정한 사례비가 어느 정도여야 하느냐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 교회의 양극화된 사례비 실태
올해 초 분당의 모 교회에서는 담임목사가 수십억 원의 헌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사실이 뒤늦게 일반 언론에 알려져 큰 파문이 일었다.

교회 담임이었던 최 모 목사는 6억 원에 달하는 연봉 이외에도 목회비와 대외협력비 등의 명목으로 4억 원 정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 딸의 미국 유학비에 부인 차량 관리비까지 교회 예산으로 책정돼, 2억 원 이상을 더 받았다. 이 외에도 당회의 허락 없이 100억 원에 달하는 교회 예산으로 적립식 펀드에 가입한 사실도 알려졌다. 교회 성도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엄청난 금액을 ‘목회’를 이유로 받았다는 사실에 세간의 비판이 쏟아졌다. 결국 최 목사는 별다른 변명도 없이 사임했다.

비단 이 교회뿐만이 아니다. 수년 전에는 명설교가로 알려진 강남의 대형교회 원로목사가 3억 원에 달하는 스포츠카 벤틀리를 타고 다닌다는 사실이 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최근 소망교회에서 교구를 배정받지 못한 부목사가 담임목사를 폭행한 사건 이면에도 급여 외에 발생하는 수천만 원대 심방비가 원인이었다는 구설은 듣는 이들을 씁쓸하게 한다.

국내 최대 장로교회인 모 교회 담임목사는 지난 30년간 급여 외에 외부 강사료 등을 모은 60억 원을 장학금으로 기부해 화제가 됐다. 물론 기부는 칭찬받을 일이지만, 급여 외의 수당과 사례비 등으로 그만한 돈을 모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적잖은 사람들이 놀랐다.

반면에 한국 교회 대다수를 차지하는 개척교회, 작은 교회 목회자들은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급여를 받으며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성결신문이 지난 2005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교단 목회자 48.6%가 2천만 원 이하의 사례비를 받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천만 원 이하를 받는다는 응답자도 17.9%로 조사됐다.

여교역자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 2002년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가 산하 교회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여교역자의 40.6%가 60만 원 이하의 사례비를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에게 일부 대형교회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사례는 ‘딴나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 목회자 급여는 생계 보장 차원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하루 빨리 목회자들의 적정 사례비에 대한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1999년 목회자들의 사례비 산정방안에 대한 포럼이 열렸다. 이날 발제를 맡은 세종대학교 황호찬 교수는 목회자 생활비 산정방안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황 교수는 “정직하고 합리적인 목회자 생활비 산정으로 대 사회에 긍정적인 이미지 제고가 필요하다”며 “도농 간, 대형 및 중소형 교회 간의 격차를 해소하고 적정 수준의 생활비 보조가 가능할 때 목회자가 목회에 전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목회자들의 적정 사례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함으로써 돈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 목회자로써 진리를 전파하는데 있어서 방해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이를 위해 투명성과 타당성, 합리성은 물론 교회 이외에서 받는 부수입에 대한 지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교회가 목회자의 생활비를 책임져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성경적 원리로도 그렇다. 그러나 목회를 부의 축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심각한 영적 타락이 아닐 수 없다.

산정현교회 김관선 목사는 ‘목회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글에서 “성직자는 물질, 생계 문제에 연연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원칙이며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며 “목회자는 어떤 경우라도 자신의 생계를 포함한 돈을 위해 살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교회 분란의 씨앗이 돈을 추구함에 있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그러나 돈이 없으면 사역이나 활동이 불가능하다. 돈의 기능까지 부인해서는 안 된다”며 “교회는 마땅히 목회자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며 목회자에게 지급되는 물질은 생활보장의 측면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목회자의 생활비, 즉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목회에 지장을 받지 않을 만큼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기초적인 생활과 사역을 위한 돈이 없어 쩔쩔매는 일은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도 결코 득이 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 적정 사례비 논의를 위한 전제
적정 사례비 논의에 있어서 도시와 농촌, 교회 규모에 따라 계산이 달라져야 한다. 사택을 제공하는 교회와 그렇지 않은 교회, 퇴직금이나 은급비를 계산하는 교회와 그렇지 않은 교회도 계산이 달라야함은 물론이다. 물론 급여 이외에 교회 내 목회 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무비용은 생활비와 별도로 책정돼야 한다. 또 목회자의 능력도 고려돼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황호찬 교수는 “그러나 교회 내 공식적인 급여 이외의 외부 강사비, 심방비, 교인들로부터 받는 비공식 사례비는 교회마다 그 정책을 정하고 가능하면 교회 전체 재정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목회자 적정 사례비 논의와 관련해 성서한국 사무총장 구교형 목사는 “교회의 사정을 무시한 채 획일화 할 수는 없지만 일부 개 교회의 과다한 사례비 지출을 막기 위해 교단 차원에서 목회자 급여의 상한선과 하한선을 정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벗어나지 않도록 강력히 권고하는 윤리강령을 발표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구 목사는 “하한선은 사회적으로 정해진 최저생계비에 준해서 설정해 교단과 대형교회들이 이를 보장하고, 상한선은 같은 연령대 같은 경력의 일반인들 평균임금에 준하는 정도로 해야 한다”며 “개인적으로는 목회자들이 일반인들 평균임금보다 더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바라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무엇보다 강조되는 것은 교회의 투명성이다. 기독교인들 중에 자신의 교회 목사님이 얼마의 사례비를 받고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다수 교회들은 투명하지 못한 회계처리 때문에 목회자들의 사례비가 감춰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백주년기념교회(이재철 목사)는 매월 결산보고서를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다. 이를 통해 성도들은 이달의 담임목사 급여는 물론, 기타 목회 활동비 명목으로 얼마가 사용됐는지 등을 1원 단위까지 상세히 알 수 있다. 헌금 내역은 물론, 선교 헌금 사용내역, 경조사비 지출 내역, 심지어 식당 세제 구입비까지 원하는 누구나 열람이 가능하다.

최근 한기총을 둘러싼 금권선거 논란의 중심이 서 있는 일부 교계 정치권 인사들이 목회를 할 수 있는 변변한 교회조차 없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교계 정치가 생계 수단으로 활용되는 순간 정당성이나 신학적 양심, 명분은 뒷전으로 밀린다. 이들은 더 이상 목회자가 아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음지에서 흐르는 교계의 검은돈을 쫓아 사는 속물이 되는 것이다.

목회자가 목회에 전념하기 위해서도, 한국 교회가 금권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도 적정 사례비 보장과 이를 위한 논의가 시급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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