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례적으로 주고받는 ‘사례비’ 눈덩이처럼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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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례적으로 주고받는 ‘사례비’ 눈덩이처럼 커졌다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1.02.23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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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늪에 빠진 한국 교회 (2) - 거마비로 포장된 검은돈을 뿌리쳐라

▲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돈으로 계산하기 어렵다. 값 없이 주는 재능의 기부가 절실하다.

회의비만 연간 억대 규모 … 교회를 위한 헌신에 은사 기부해야
목사 장로 안수에도 ‘돈’ 요구, 더 이상 돈으로 직분 팔아선 안돼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이 있다. 작은 잘못에 대해서 묵인하고 지나갈 경우 그것이 언젠가는 큰 죄로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한국 교회의 금권선거 문제가 그렇다. 처음, 그저 “밥이나 한 끼 하자”는 말 한 마디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밥도 먹여주고 차비도 얹어주고, 감사의 사례비까지 내놓는 형편이 됐다. 성도들의 피땀이 서린 헌금을 선거비용으로 아무 거리낌 없이 써댈 ‘간 큰 목사’들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한 번 인사한 것이 두 번이 되고, 그렇게 눈덩이처럼 부풀어 지금의 ‘돈선거’ 논란이 일어났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뿐이다.

선거 때 쓰는 선거비용은 ‘정(情)’으로 포장되어 있다. “밥 한 끼 대접한다”는 우리의 접대문화가 고스란히 담긴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일반 사회에서는 이런 정이 담긴 접대도 안 된다며 손사래를 치고 있는 반면, 교회에서는 아직도 ‘인지상정’이라는 말로 ‘검은 돈’이 오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그 색이 검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교회는 유혹의 늪에 깊이 빠져 있다.

교회 안에서 오가는 돈거래는 ‘거마비’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회의비’, ‘사례비’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거마비는 교단 안에 각종 위원회 등 회의에서 참석한 위원들에게 “당신의 소중한 시간을 제공한 대가”로 지불된다. 교회 안에서도 감사의 뜻을 담은 거마비가 오간다. 심방을 온 교역자에게 성도가 주머니에 넣어주는 감사금과 다른 교회 강단에 올라서 받는 ‘사례비’, 목사나 장로 안수 과정에서 오가는 ‘사례비’ 등 감사의 마음이 담긴 명목 없는 돈들이 교회 안에서 무수히 오가고 있다.

이 거마비는 ‘관례’라는 이름을 입고 있다. “관례적으로 지급해왔다”, “목사님께 회의비를 드리는 것은 관례적인 일이 아니냐”는 설명이 거마비에 대한 해명이다. 그러나 정말 관례적 회의비 수준에 머물고 있는지 교회와 교단, 그리고 단체 안에 오가는 돈의 본질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 교단 단체 회의비 지출 심각
교단 임원들이 모이거나 위원회가 열릴 때 회의비가 지급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는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단, 지난 2007년 예장 통합총회에서 임원들이 회의비를 반납하겠다고 결의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액수로 짐작해보면 연간 총회 임원회와 위원회에 지급되는 회의비는 약 4억 원 정도.

2007년 예장 통합 91차 총회 임원들은 회의비 반납을 의제로 상정해 실천한 바 있다. 임원들이 교단을 위해 헌신하는데 있어서 ‘사례’가 필요치 않다는 것이었다. 전 임원들의 동의를 얻은 이 결정은 수개월간 지속됐다. 그리고 먼 거리에서 회의에 참여하기 위해 시간을 쪼갠 임원들도 즐거운 마음으로 동참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결정이 다른 교단으로 파급되거나 장기적으로 실천되지는 않았다. 지급 관례가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과도한 예산 지출로 도마 위에 올랐던 한국찬송가공회도 회의비 사용액이 유난히 많다는 지적을 누차 받아왔었다.

지난 2004년에서 2005년 결산에 의하면 회의비가 6천6백만 원, 개발비가 2억4천만 원, 행사비가 5천8백만 원, 경상비가 1억1천만 원, 판공비가 7천2백만 원, 배당금 1억5천만 원이었다.

18명이 참석하는 총회 결산이 690만원, 매월 열리는 임원회가 4천1백여만 원. 10번으로 어림잡아도 임원회 1회당 3~4백만 원의 예산을 지출했다. 문제는, 작게는 2~3명에서 모두 참석해야 6명인 임원들에게 3~4백만 원의 예산지출은 어딘가 부적절해 보인다. 총회 역시 별도의 프로그램 없이 공회 사무실에서 진행됐고 회의 참석자에 대한 교통비와 식대만 7백만 원 가까이 지출된 것이다.

당시 21세기찬송가 개발비용이라고 보고한 2억4천만 원도 작업비와 홍보비, 공청회, 연구개발비 등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이 또한 모두 회의 참석자들의 교통비와 식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기관의 회의비 지급은 교단 안에서 파송 우선순위를 결정하는데 활용되기도 한다. “찬송가공회와 같이 회의비가 많은 연합기관은 인기 1순위로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곳”이라고 교단 관계자들은 귀띔한 바 있다. 공회 안에서 임원을 맡을 경우 매월 50에서 100만원씩 회의비 이외에 별도의 판공비가 제공됐기 때문에 교단 인사들로서는 매력적인 자리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방만한 운영은 문제로 지적됐고, 지나친 회의비 사용은 결국 찬송가 보급과 개발, 선교 등에 지장을 준다는 우려가 있었다. 이후 찬송가공회는 재단법인으로 전환하면서 회의비 등 일체의 예-결산을 외부에 비공개로 처리하고 있다.

# 설교 비용도 천차만별
회의비뿐만이 아니다. 목회자들이 설교 강단에 서면서 받는 사례비도 엄청나다. 작은 교회 목회자들에게는 아예 기회조차 흔치 않은 강단교류는 유명 목회자나 부흥사, 교단장이나 단체장들에게는 수시로 있는 일이다.
최근 모 대형교회를 맡고 있던 목회자가 교단장이 된 후 몇몇 교단과 강단교류 과정에서 오간 사례비가 천만원대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설교 사례비로는 너무 많은 금액이 지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모 교단 대표의 경우 초청비용이 최하 400만원이라는 소문과 대형교회 목사들을 부를 경우 작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까지 설교에 대한 사례비가 나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설교강단에 지급되는 지나친 사례비는 연합기관 부정선거에도 한 몫을 담당한다. 선거 비용으로 수억원을 쓰고도 대표직 1년만 하면 충분히 본전을 뽑을 수 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교단과 단체 대표들은 1년 동안 수십여 차례 교회와 단체 등 각종 행사에서 예배 순서를 맡으며 그에 대한 사례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농담처럼 “1년 동안 모은 거마비가 1억이 넘는다”는 교단장도 있었다. 더 이상 소문으로 치부할 수 없는 문제다.

# 목사-장로 안수에도 오가는 돈
헌금은 강제로 내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즐겨하는 대로 내라고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 헌금을 강요받는 일도 있다. 교회에서 장로나 권사 임직을 받기 위해서는 교회에 적정한 금액을 헌금해야 한다. 경기도 부천의 한 교회에서는 안수집사가 되기 위해 300만원의 감사헌금을 해야 하는 것이 관례적으로 적용된다. 한 성도는 “목사님께서 이번에 안수집사가 되어 교회를 위해 봉사해달라고 당부했지만 내 형편에 300만원을 마련하기 빠듯하다”며 고민을 털어 놓았다.

잠실의 한 안수집사는 장로가 되기 위해 돈을 얼마나 낼 수 있느냐는 노회 심사위원들의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그는 “마음과 달리 정해진 액수를 내고 장로가 되어야 한다면 그 직분을 받지 않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당시 장로직을 거부한 박모 집사(67세)는 “지금 생각해도 돈으로 장로직을 사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인 것 같다”며 “헌금은 내 마음과 감사함만큼 하는 것이지 노회가 장로 안수를 놓고 종용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고 회상했다.

목사 안수에서도 후보생들은 안수식을 위해 금품을 요구받거나 관례적으로 사례비를 지불한다.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교회 안에서라면 ‘돈’이 아닌 다른 것으로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모두들 눈에 보이는 ‘돈’으로 감사의 크기를 가늠한다. 이처럼 미안해서 혹은 고마워서 주기 시작한 ‘거마비’는 검은돈으로 커져 있었고, 교회 안에 만연한 부패의 원인이 되고 있다.

# 재능기부, 거마비 거부운동 절실
물론 거마비를 거부하거나 각종 사례비를 모아 장학후원회를 만들거나 소외된 이웃을 돕는데 사용하는 목사들도 있다. 통합측의 이모 목사의 경우 어떠한 집회에 초청을 받아도 사례비는 받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덕분에 가난한 신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감리교의 모 감독은 받은 사례비를 모아 이웃돕기에 사용한 것이 알려지기도 했다. 2007년도 통합측 임원들도 회의비를 모아 이웃돕기에 사용한다고 밝혔었다.

감리교의 한 목사는 “설교는 주님이 주신 재능이고 은사인데 이것을 돈을 받고 행할 수는 없다”며 교회에서 나오는 급여 이외에 성도의 혼사나 장례, 심방 등 일체의 행사에서 사례비를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흥사로 유명한 침례교의 윤모 목사 역시 사례비를 받지 않는 목회자로 “값없이 받은 복음을 값없이 나누어 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살고 있다.

먼 길 오가며 총회와 노회,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목사나 장로에게 적정한 금액의 교통비를 주는 것을 ‘죄’로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일 가운데 이권이 따르고 과도한 금액이 사례비로 책정되고, 거마비나 사례비라는 이름으로 검은 돈이 포장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 한국 교회는 거마비를 경계하고 자신의 은사와 재능을 값없이 베푸는 선행의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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