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전 중요 신앙자료 복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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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전 중요 신앙자료 복원한다"
  • 현승미 기자
  • 승인 2011.02.16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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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지일 목사 기념사업회 '장대현교회 주보'와 '게자씨' 영인본 출간


80년 전 한국 교회의 일상과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생활을 엿볼 수 있는 자료집이 나왔다.

(사)방지일목사기념사업회(이사장:김삼환 목사)가 홍성사 출판사의 도움을 받아 1930년대의 장대현교회 주보와 게자씨 영인본을 출간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산화돼 가고, 손만 대도 부스러지는 것을 보존하기 위해 영인본으로 제작한 것이다.

장대현교회 주보 영인본에는 1934년부터 1935년까지 2년간의 주보 전부와 교회 전체 일람표 등이 포함된 125쪽 분량에 담겼다. 이는 한국 기독교계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방지일 목사가 1934년부터 장대현교회 전도사로 시무하면서 손수 만든 주보이기도 하며 한국 기독교 역사를 연구할 귀한 사료다.

한국 교회 주보의 원형이라 할 장대현교회 주보에는 예배 순서, 기도내용, 소식, 예배인원, 주일헌금 등이 기록됐다. 이 주보를 통해 당시 한구 교회의 여러 정황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으며, 특히 교회 직분자들의 이름과 주소 등 현대의 권찰록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기록도 찾아볼 수 있다.

방지일 목사는 “원래 주보는 예배 순서와는 개별된다. 주보에 예배순서를 넣을 수는 있지만, 주부는 2~3쪽짜리 위클리 기능으로 예배 순서보다는 다양한 소식을 많이 내볼려고 노력했다”며, “담임 목사 얼굴과 이름을 모르는 교인들은 없을 테니 그걸 아예 빼고 1쪽부터 예배 순서를 넣고 군대간 사람이나 여러 통계를 내서 게재하기도 하며 주보답게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한 알의 작은 밀알을 뜻하는 ‘게자씨’는 방지일 목사가 고 김진홍 목사와 평양 숭실대학 기숙사에서 아침마다 말씀을 읽고 나누던 것을 동인들과 함께 하기 위해 등사로 시작된 창간호 부분부터 2년간의 기록이 영인본으로 제작됐다.

방 목사는 “기숙사에서 김진홍 형제와 한 방을 쓰고 있었기에 함께 아침 예배를 드리자고 제안했고, 아침에 읽고 나누는 말씀이 너무 좋아 둘이서만 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자는 의미의 ‘종적회’를 만들고 회비 20전씩을 내어 등사로 ‘게자씨’라는 이름의 월간지를 발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렇게 20부, 30부 등사기로 밀었던 것이 200부까지 등사하게 됐고, 활판 인쇄를 하게 되면서 비용이 많이 들게 되자 방지일 목사는 중국선교사로 떠나기 전가지 집 한 채를 팔아 대며 재정난을 감당하기도 했다. 일제 하에서는 주기철 목사의 ‘일사를 각오하라’라는 원고 때문에 인쇄한 2천부 전량을 압수 폐기 당하고 방지일 목사가 고등계에 불려 다니기도 했다.

당시 게자씨에는 남궁혁 박형룡 채필근 등과 사회 저명인사들의 원고가 포함돼 있고, 김화식 주기철 방효정 윤응팔 마두원 백응수 방효원 등의 교역자들의 글이 담겼다. 또한, 김홍전 김진홍 김예진 김석구 박윤선 박손혁 방지일 등 다양한 신앙동인들의 글이 실렸다.

방지일 모사는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 달콤하고 맛있는 말씀을 나눴던 것을 이렇게 영인본으로 내게 돼 감격이 대단하다”며, “특히 게자씨는 한국 교회 신앙생활잡지의 시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이를 후대에 남기고 또한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게 돼서 감사하다”며 소회를 밝혔다.

사회적 혼란 가운데 방지일 목사는 중국 산동 선교사로, 김진홍 박윤선 목사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며 안용한 김화식 목사가 맡아 일제 말엽까지 계속하다가 일본이 모든 출판물에 대해 전시체제라면 중단시킴으로 결국 ‘게자씨’는 폐간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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